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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춘천 오봉산과 청평사

춘천 오봉산과 청평사

암송 사이로 소양호와 청평사(우)가~!

“아! 나의 삶은 잠깐인데 산의 우뚝 솟음과 물의 흐름은 무궁하다. 잠깐의 삶으로 무궁한 사이에서 노니니, 어찌 하루살이가 태허(太虛)를 지나감과 다르겠는가?”                        <서종화의 청평산유기> 중에서

여객선을 타고 소양호를 미끄러져 부용골 선착장에 닿을 땐 정오를 훨씬 지나서였다. 오봉산초행이란 내게 오후5;30분에 떠나는 여객선이 마지막이라고 선장이 응원을 했다. 부용골짝 상가지대를 거슬러 주차장에서 부용2교를 건너자마자 빡센 등산로다. 작열하는 태양을 가리는 숲길이 반갑다.

염천은 초장부터 땀을 째내며 숨길마저 헐떡대게 한다. 반시간쯤 찜통골짝을 올라 능선에 이르자 바람 한 떼가 몰려왔다. 바람은 소리만으로도 청량하다. 그 소리를 나뭇잎들은 스킨십하면서 감미로운 선율로 살랑댄다.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소나무들이 그 바위 사이에 붙박여 멋진 분재를 연출하고 있다. 그 암송의 절벽을 동아줄을 잡고 죽을 둥 살 둥 오른다. 그렇게 암송절벽을 오르면 안도의 성취감보다 더 멋있는 풍광에 열락한다.

바위와 소나무가 연출하는 아슬아슬한 동거는 시각을 통해 나의 미적 감탄사를 죄다 짜낸다. 그 희열과 감탄에 바위절벽 오르는 위험과 고역은 까마득하게 잊혀 지곤 했다. 바위들이 붙잡고 동거하는 소나무들은 아름다운 괴송(怪松)이 됐다. 오봉산 바위 골의 소나무들은 괴송콘테스트라도 벌렸나 싶었다. 그 괴송시합이 얼마나 치열했으면 제 수명 다 하지도 못하고 백골이 됐을까?

백골송과 암반을 떠난 백골송밑둥

근디 그 백골송(白骨松)이 자못 더 아름답다. 하얀 바위에 우뚝 서서 파란하늘을 휘저으며 구름을 몰아가는 포퍼먼스는 산님들을 시인으로 만들기도 하려니! 싶었다. 오봉산은 잠시도 뜸들이지 많고 암송의 연애질로 바위절벽을 거뜬하게 오르게 한다. 멋지게 폼 잡은 괴송들을 마주하고 싶으면 오봉산을 오를 일이다. 초록능선으로 에워싼 바위등에 올라서 소양호반을 애무하고 온 청량한 바람맛과 소리에 취하다보면 절로 시인이 될 터이다.

오봉엔 이런 멋진 괴송이 정신을 빼았는다

눈 앞에 펼쳐지는 장대한 산수화에 감탄하다보면 끈질기게 막아서는 바위절벽을 거뜬히 넘어서게 된다. 소요대(逍遙臺)에 섰다. 서종화는 또 탄식한다.  “산기슭의 머리부가 잘라져 대(臺)가 된 것인데, 그 위에 4~5인이 앉을 만하다. 대 아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다”고. 근데 아무도 없다. 바위들이 올망졸망하게 우듬지를 이루고 괴송이 춤을 추는데 소요(逍遙)하는 사람 그림자도 없다.

소양호

무슨 연고가 있을까? 글고 보니 여태 뉘 한 분 만난 적이 없다. 뭣 땜일까?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폭염 탓이려니. 땀에 절은 티셔츠를 겨드랑까지 올리고, 허리띠를 풀어헤친 채 바람소리를 온 몸으로 느끼는 휴식에 들었다. 산정청량사우나에 든거다. 바위무더기 속의 배꼽바위가 내 배꼽을 보면서 실소할까? 움찔한다. 짙푸른 소양호가 그림으로 다가선다. 보우스님이 여기서 시인이 되어 읊는다.

 

 

 

“봄이 깊어 꽃이 땅에 무늬를 놓을 때

소요대를 찾으니 산허리 쪽으로 비틀어졌네 

 하늘이 푸르러 뜬 구름 걷히고

산이 개어 안개가 사라지네                                       

구천은 멀리 낮은 곳에 있고 

삼신산은 아득하여 부르기 어렵네                                                                           

한 번 삭막한 참선의 적적함을 달래니

유유히 흥이나 저절로 풍요로워지네.”

반시간을 소요대에서 시인행세 하다 시계를 보니 오후2;30이다. 아까 늦지말라는 여객선장 생각이 났다. 후딱 정상을 밟고 청평사를 찾아야 한다. 오봉정상( 777.9m)은 백치고개 너머로 부용산(882m)과 자웅을 겨루면서 봉화산·수리봉 등을 넘보고 있다. 글면서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의 다섯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어 오봉산으로 불린다. 오봉정상에 닿아도 산님은 없었다. 휑한 적요속에 고립을 즐긴다. 홀로산행의 해방구를 즐기는 고적은 청평사에 닿을 때까지 뉘 숨소리도 안 들렸던 것이다.

바위를 모아놓은 소요대

바람소리에 도토리 몇 알이 후두둑 떨어지며 타악기가 된다. 하루종일 나 홀로 즐기는 자연의 잔치라면 넘 아깝다. 아까 힘겹게 오른 암송절벽하강은 한결 수월했다. 게다가 소양강바람이 간지럽혀 밧줄 잡고 풍경 즐기는 여유로움까지다. 구멍바윌 통해 청평사를 향한다. 청평사에 들어서자 드뎌 소요객들이 나타났다. 한적한 산사에서 띄엄띄엄 몇 안 되는 산책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한 채다. 회전문을 돌아 대웅전경내를 훑고 극락전보초병인  500살의 주목을 쳐다본다.

암송의 연애질은 어디서 훑어봐도 감탄케 한다

 글고 사찰처마들이 쪼개놓은 파란하늘을 응시해봤다. 청평사는 1089년(고려선종 6)이자현(李資玄)이 이곳에 은거하자 도적과 호랑이가 자취를 감춰 산 이름을 청평(淸平)이라 하고 문수원(文殊院)이란 절을 세웠다. 그는 또 견성암(見性庵)·양신암(養神庵)·칠성암(七星庵)·등운암(騰雲庵)·복희암(福禧庵)·지장암(地藏庵)·식암(息庵)·선동암(仙洞庵) 등 8암자를 중창하였다. 특히 이자헌이 조성한 영지(影池)는 오봉산이 비치고 연못속의 세 개의 바위사이에 갈대가 있어 자연스런 웅덩이 같은 고려식 정원이란다.

청평사대웅전

그 영지에 취한 매월당김시습은 <청평산 세향원 남쪽 창에 쓰다>라는 시를 남겼다.

“ 네모 못엔 천 길 산봉우리 비치고(方塘倒揷千層岫)

절벽에선 만 길 물 내달리며 떨어지네(絶壁奔飛萬丈淙)               

이것이 바로 청평산 선경의 운치(此是淸平仙境趣)

어이하여 시끄럽게 지난 행적 묻는가?(何須喇喇問前蹤) ”

1367년 나옹(懶翁)선사가 복희암에서 2년 동안 좌정하고, 1555년 보우(普雨)스님이 청평사로 개칭하고 중창하며 청평사를 반석위에 올렸단다. 보다는 청평사에 얽힌 러브스토리가 재밌다. 당태종이 딸 평양공주를 짝사랑한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이 돼 공주의 몸에 붙어 기생한다. 궁중에선 뱀을 떼어내려 별 짓을 다했지만 허사, 공주는 궁궐을 나와 정처없이 걷다 청평사에 발길이 닿았다. 공주굴에서 밤을 새고 공주탕에서 목욕한 후 가사를 만들어 스님께 올렸다.

평양공주가 하룻밤 지샌 동굴과 공주상

상사뱀 넋을 쓴 스님이 공주의 정성에 감복하여 공주와의 인연을 끊고 해탈하자 당태종은 청평사를 중창했다. 그때 새운 탑이 공주탑, 목욕한 곳을 공주탕, 상사뱀이 해탈한 곳을 회전문이라 한다. 회전문을 나오면 공주탕, 영지, 이자헌부도, 3층공주탑, 구송폭포, 공주굴, 거북바위들이 계곡2km에 쫙 깔려 자연정원이 됐다. 이자현의 손길이 다듬은 고려식 공원은 청평사만이 품은 유일한 치유의 도량이 됐다. 고즈넉하고 맛깔스런 태곳적인 품격이 운치를 더한다.

구송폭포

시간이 빠듯해 구렁이 담 넘듯 서두른 게 아쉬웠다. 물소리가 그런 미진함을 세정시켜 줬다. 만수위 소양호를 가르는 물살이 시원하다. 낼은 태풍'바비'가 온다는데 서해 깊숙이 중국 쪽에 달라붙어 피해를 줄여주면 좋겠다. 소양호반을 빗살 치는 해넘이물빛이 아름답다. 아니 청평하다. 이 청평한 기운이 태풍'바비'을 밀어내고, '바비'는 코로나19를 휩쓸어 가면 좋겠다. 참 지난한 금년 여름의 끝자락이 보이나 싶다.  2020. 08. 25

부용골주차장쪽 오봉산들머리, 시작부터 급경사계단이다
부용계곡과 청평사와 오봉산 갈림길, 옆의 망가진 석굴 정체가 궁금했다
뒤엔 소양호, 앞 저만치엔 오봉정상 바위마실이 보인다
오봉산등산로는 암송을 헤치는 고난도길이기도 하다
벼락과의 일전에서 살아남은 거송일까?
소양호반을 연모하는 고사목은 지금은 시원하겠지만 겨울은 어찌 날까?
소양호를 잇는 춘천행가도
놈은 터를 잘 잡은 듯~! 바위속에 로얄제리라도 있능가? 튼실하다
소요대의 배꼽봉, 누가 명표 달아놓느라 용께나 썼다
구멍바위
초록바탕의 고사목판화
암석분재, 소나무 건사하느라 바위가 감당했을 역정은 상상 밖~!
촛대바위 바위마실 뒤로 소양호가~! 시간 없어 촛대바윌 먼 발치에서 봐야만 했다
회전문을 통과하면 대웅전, 뒤 바위산은 오봉산
500여 년 된 주목(우)
구송폭포
거북바위와 공주와 상사뱀 쉼터
공주상이 있는 둠벙골짝
영지,수초가 오봉산그림자를 덮고 푸른하늘만 비췄다
공주탕
부용골의 소양호, 왼편 부교가 선착장
▲소양댐과 수초섬▼ 지난 번 장마 땐 의암호참사는 수초섬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