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만지러 간 산행 - 천마산

 

들머리서 본 천마산 원경

장맛비가 잠시 물렀거니 주말회색하늘이 맘을 촐싹대게 만든다. 코로나일상탈출이 빚은 경춘선열차는 만원이다. 서울서 반시간쯤 걸려 평내호평역사 앞에 첫발을 디뎠다. 등산객인 듯싶은 두 남정에게 수진사(修進寺)쪽 천마산들머리 길을 물었다. 버스가 뜸하니 택시를 타란다. ‘걸어서 얼마나 걸리느냐?’는 나의 물음에 이십 여분쯤  걸릴 거란다.

수진사 연화세계를 오르는 108계단

이십 여분은 호평시가지를 엿볼 수 있는 찬스다.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인근의 신흥주거도시 같이 깔끔하다. 초록물결 일렁일 천마산자락은 도시를 한결 정화시키는 듯하다. 문득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천가의 자귀나무들이 팔색조 깃털을 흔들어 댄다. 천마산들머리에서 수진사는 왼쪽으로 비켜 있었다. 수진사 경내에 무단침입 한다. 조그만 암자일거니 여겼던 절의 규모가 상당한데 도통 인기척이 없다.

수진사9층석탑

원통문을 통과하여 연화세계에 오르는 108계단은 아슬아슬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계단을 오르며 조망하는 풍경이 한 폭의 산수화다. 연화세계엔 키가18m인 부처가 팔상도와 나한상병풍 앞에 누워있다. 저만치 비껴선 9층탑의 위용도 볼만하다. 1984년 남정스님이 창건 했다는 수진사는 대한불교총화종 본산이란다. 일취월장한 청년사찰인 셈이다. 와신불 뒤 잘 다듬은 사찰뒷뜰을 거닌다.

수진사 후원

소풍 나온 아주머니들이 사진 찍어 달래면서 내모습도 한 컷 찍어준단다. 그렇게하여 모처럼 내 상판때기를 사진에 담았다. 연화세계 뒤뜰을 어슬렁거리며 비밀스럽게(?) 이어진 천마산들머리를 찾았다. 숲길을 한 참이나 헤친 뒤였다. 은행나무군락이 골짝을 메꿨다. 산님들 행렬이 음습한 골짝으로 사라진다. 하산하는 산님들도 많다. 장맛비세례 받은 골짝 푸나무들의 초록옷은 반들반들 하고 바윗길 뛰어넘는 물살에 이끼는 생글생글하다.

마치고개를 향하는 천마골짝

온 몸을 바위돌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며 부르는 물살의 노래는 골짝을 더듬는 산님들한테 선사하는 오케스트라이다. 게다가 생뚱맞게 튀어나와 애교 떨다 숨어버리는 다람쥐의 퍼포먼스는 내가 왜 산엘 오르는지를, 행복한 나들이게 하는지를 절감케 한다. 그 영롱한 신비에 미처 숲을 더듬는 헐떡거림이 목젖까지 차올라도 숲의 비밀스런 비경은 멈추질 않는다.

임꺽정바위를 오르는 전초 바위마실

그렇게 산은 은근히 나를 죽일 것 같으면서도 정상에 설 때 새롭게 태어나게 하나 싶은 거다. 천마산은 호락호락 속살을 비춰주는 산이 아니었다. 오르고 오르는 헐떡거림을 잠시라도 놔주질 않는다. 울창한 떡갈나무들이 바위마실로 안내한다. 심상치가 않다. 8부 능선쯤 됐을까? 커다란 바위는 어깃장으로 인(人)자문을 만들었다. 몸뚱일 오므려 포도시 통과했다.

임꺽정바위 人문

‘임꺽정바위’다. 굴을 통과하자 다른 바위가 장벽으로 다가서는데 하늘로 기어오르는 탈출구는 있었다. 도둑질 한 탕 한 임꺽정이 관군에 쫓겨 이곳에 잠시 몸을 피할 만했다. 천마산마치고개는 동북부에 사는 양반들이 한양에 보따리 메고 내왕하는 통로라 늘 도적떼가 들끓던 곳이었다. 험한 산세에 삼각원뿔형의 천마산은 양주 불곡산 기슭출신 임꺽정(林巨正)이 놀아나기 딱 좋은 아지트였다.

임꺽정바윌 통과하면 마주치는 바위벽

“삼년 피리 소리는 관산의 달/ 풀과 나무를 울리는 바람 앞에 9월의 병사처럼/ 서쪽으로 기우는 가지 위 단석에 의지하고/ 천자의 깃발이 눈 안에 있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한 소절이다. 해학풍자소설 임꺽정은 조선시대 양반가에선 전체금지소설 이였다.

천마산의 암송은 소나무들이 훨씬 잘 생겼다

임꺽정바위에서 헐떡거림을 진정시켰다. 다시 가파른 덱`계단이 하늘로 치솟고 또 치솟았다. 바위마실은 기똥찬 소나무들을 사랑하며 공생하느라 바위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망가졌다. 잘 생긴 소나무들이 바위와 살기엔 좀 억울할 것이다. 천마산정상은 그 소나무만 팔아먹어도 배부를 테다. 오늘 같이 잔뜩 시계가 뿌연 날엔 전망 좋은 산릉의 파도 대신 소나무는 한 폭의 묵화로 태어나니 말이다.

질리게 하는 덱`계단, 이성계는 하늘 만지러 가느라 죽을 똥 쌋을 테다

그나저나 사냥하러 천마산에 왔던 이성계(李成桂)가 여길 올랐을까? 홀(笏)든 손이 석자만 더 길었어도 하늘을 만질 것 같다(手長三尺可摩天)고 허세를 부렸으니 말이다. 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 - 천마산(天摩山)이름의 유래다. 정상, 소나무가 그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기갈을 때웠다. 오후1시반 이였다. 천마산역방향으로 하산한다.

3km쯤 되니 오지게 해찰해도 될 테다. 진홍의 산나리가 이따금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천마산은 야생화의 천국이라고도 했다. 보다는 잣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소나무 등 무성한 식물이 울창하다. 내리막길도 급살 맞다. 그 가파른 경사 길에서 한 여인을 뒤밟는다.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기묘한 산행 중인 여인은 나를 조마조마하게 했다.

이성계 보다 더 하늘 만지고 싶은 여인

왼손엔 문제집, 오른손엔 휴대폰을 든 여인은 문제지와 핸폰을 번갈아 보면서 목하 공부 중이었다. 행선(行禪)도 아닌 행공부(行工夫)라니? 그것도 가파른 산길에서? 무슨 시험을 보려고? 마흔 안팎일 여인이? 싱글 맘 오피스일까? 얼핏 등 뒤에서 곁눈질 훔쳐본 게 ‘민법’문제지였다. 방해 될까싶어 수없이 망설이다 입을 땠다.

고사목, 임 잃고 홀로 남을 바위의 설음은 어쩔까?

“방해하고 싶진 않은데 위험하지 않습니까?”

“익숙해져 괜찮아요.”

“아니 걷기 좋은 산책로라면 몰라도 까닥하면 큰 일 날 텐데요?”

“주말마다 시간 나면 이렇게 하는 게 맑은 정신이어선지 더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어 하고 있는데 괜찮아요.”

“저도 산 꽤나 즐겨 탑니다만 이건 아닙니다. 아주머니 같은 분 첨입니다. 호젓한 산책길에서 하시지요.”

여인이 핸폰으로 동영상을 볼 때나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잠시 떨어졌다 다시 동행하면서도 나는 수많은 궁금증을 참고 있었다. 언필칭 공부방해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조마조마 뒤좇았다. 문득 싱가포르 큰애 생각이 났다. 학구열이 대단했던 큰애는 40대 어느 해 느닷없이 관세사시험을 본다고 서울로 와서 반 년 동안 공부병 앓던 정황이 오버랩 됐다. 큰애 얘길 하자 그녀의 눈길이 나를 훔치는 거였다.

이 사진도 찍사 품싻으로 생겼다

“애들 있지요?”

“예, 둘이에요.”

“신랑도 있을 게 아닌가요?”

“예”

“아주머님 몸은 아주머님 홀몸이 아닌 애들의, 신랑의 몸이기도 한데 사고라도 나면 어쩌게요?”

“알지요. 2년 동안 이 길을 다녔어요. 눈 감고도 훤히 꿰뚫을 정도로 이골이 난 걸요.”

그녀의 전공은 건축계통이었다. 무슨 시험인지는 안 물었으나 전문직여성이 되려 열공하는 중이였다. 큰애도 그랬다. 전문직 아닌 여성이 좋은 직장에서 정년까지 버틸 수 있단 건 하늘의 별따기일 터서다. 한 시간여를 그녀를 뒤좇는 조바심 나는 하신 길은 편한 산책길로 이어졌다. 시내에 들어서고, 목을 축이자는 나의 제안을 바쁘다는 핑계로 그녀는 나에게 갈 방향을 알려주고 헤어졌다.

장맛비로 번들번들 해진 골짝, 흥겨운 노래할 만했다

그녀의 당찬 몸매에서 대단한 의지와 신념을 엿 본 나는 그녀가 열공만큼의 성취가 담보 될 거란 걸 의심치 안했다. 세상엔 별나게 사는 갖가지 삶의 얼굴들이 존재한다. 그런 독특하고 기이한 행적들이 세상을 살맛나게 하고 향기 뿜어내는 성싶다. 역성혁명을 한 이성계가, 의적이 된 도적떼거리 임꺽정이 그랬다.

시루바위

술도 좋아 한다는 그녀는 산행공부 후 갈증 해갈하려고 음주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니 공복상태가 산행 중에 익힌 지식을 더 오래 기억시킨다고도 했다. 그래 산행 후 두어 시간은 굶는단다. 불광불급이란 말이 있다. 그녀가 천마산정상에서 하늘을 만질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산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품는다. 아름다운 심신을 만들어준다. 산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2020. 06. 27

열공녀(몰래 뒤태 찍은 것 헤어질 무렵 양해 받았다)
수진사 입구에서 본 절 처마선이 멋있었다
절 후원
키18m에 무게가180톤인 와불은 우리나라에서 젤 크단다
원통문과 108계단

 

천마산엔 7쌍동이들이 간혹 눈길을 잡았다
장마입김일까 미새먼질까?
산정상에 태극기 휘날리는 거 드물다
이 가파른 계단에서부터 열공녀는 나를 노심초사케 한다
이 아줌마도 무단시 나를 불러 찍사를 만들곤 품싻으로 나를 디카에 잡아 넣고~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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