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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호명산-호명호-큰골상천저수지

호명산-호명호-큰골상천저수지

 

신록 속으로 이따금 선 뵈는 청평호반

청평역사를 나와 안전유원지의 조종천다리를 건널 때가 10시반경이었다. 북한강을 살찌우는 물길이 시원찮은데 낚시를 들이운 강태공들이 수상쩍다. 산길입문은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되어 5월의 신록 속을 파고든다. 울창한 주목군락이 뿜는 피톤치드가 상쾌한데 경사 길은 이마의 땀을 쥐어짠다.

들머리 안전유원지

코로나마스크와 바람막이 점퍼를 벗었다. 한결 상쾌하다. 우울과 불안으로부터의 해방구는 십 여분도 채 안 걸리는 곳에 있다니! 근데도 저만치 뒤처진 노익장과 나 단 둘뿐이다. 사회격리일상이 대중교통여행의 발목을 잡은 탓일 거란 경각심에 움칠했다. 울창한 숲은 고요가 숨 쉬는 소리를 깨뜨릴까 싶어선지 풀벌레인기척소리도 없다. 

상천을 건너는 보행자용 기타다리

적막하다. 내 숨소리, 발자국소리, 스틱짚는 소리뿐이다. 상상가늠도 안 되는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작고 둥근 돌멩일 테고, 그 지구에서 나는 한갓 하루살이 같은 점 하나일 텐데, 하루살이 같은 내가 이 가늠할 수 없는 울울창창한 숲을 휘저으며 소란을 피우고 있다니! 내가 헤집는 손`발길 하나하나가 광대한 자연 파괴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성찰한다.

주목, 소나무,참나무,당단풍,신갈나무등이 울창한 호명산

코로나19도 우리들이 빚은 자연 파괴의 앙갚음일 거란다. 열대우림지역에서 단독 생활하는 천상갑은 약재와 식용으로 멸종위기동물이 됐다. 약용으로 쓰이는 두꺼운 비늘털에 미세한 바이러스가 기생한단다. 그 천상갑을 중국우한 화난시장에서 식`약용으로 유통되다 바이러스가 사람한테서 숙주코로나바이러스가 됐다는 것이다. 개미종류, 파리나 귀뚜라미, 애벌레 등을 먹는 야행성의 온순한 동물을 포획 멸종위기로 내 몰았으니 인간들이 벌 받을 만하다.

호명산전망대서 조망한 청평댐과 호수

전망대에 올랐다. 청평호수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울창한 숲이 아니라면 북한강과 청평호수를 심심찮게 조망하면서 빡센 된비알을 오를 텐데 하는 아쉬움이 줄곧 이어졌다. 정상을 향하다 하얗게 활짝 핀 큰꽃으아리 몇 송이를 조우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인살 나눴다. 나는 놈을 카메라에 담느라 모자를 떨어트리고 10분쯤 정상을 향하다 허겁지겁 되돌아와야 했다.

움트는 천남성과 큰꽃으아리

늙으면 깜박깜박 할 때가 잦다. 더워서 모자를 벗어 스틱손잡이에 걸쳤었는데 사진 찍으며 떨어뜨린 거였다. 늙어가면서 건망증은 필요악일는지 모른다. 그 많은 것들을 다 챙기며 기억 붙들고 어찌 편안하게 죽을 수가 있겠는가? 632m호명산정은 꽤 질펀한 마당을 만들었다. 겹겹 중첩한 산능이 파도를 일구며 연무하늘로 사라지고 있었다. 기차봉을 향한다.

생과사의 솔의 공존, 생의 솔가지앤 까마귀둥지가 있다

이젠 내리막이라서 헐떡대는 숨소린 자자해질 테다. 기차봉까지 1.7km산길은 갖가지나무들의 퍼레이드 쇼가 펼쳐졌다. 웃기는 건 거의가 세 네그루씩 일란성다쌍둥이 모둠태생이고, 많게는 예 일곱 그룹태생도 보이는데 참나무와 당단풍나무의 다생쌍둥이가 많았다. 그런 다쌍둥이 나무와 거목들은 바위능선을 타고 장자터고개까지 이어지는 데, 그런 울창한 숲이어서 조선중기 한시절은 호랑이들이 아지트로 삼았나 싶었다.

‘아갈바위봉(619m)’은 호랑이 아가리를 이름이고, 여기 골짝이름도 ‘범울이계곡’이며 그 아래에 ‘범울이’마을이 있다. 암튼 옛날 으르렁대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얼마나 잦았으면 산이름도 ‘호명산’이라 했을꼬~? 호환이 두려워 노심초사했던 범우리주민들을 상상해 봤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랑이등을 타자니 좀은 으스스하기도 했다. 바위길이 여간 신경 쓰인다. 여태 산님 한분도 조우하지 않은 산행이라 좀은 의아해하기도 했다.

아갈바위연봉은 기차봉과 연대한다

정상에서 아갈바위봉까지의 3km남짓은 산행의 멋과 맛에 흠씬 빠져들 최상의 코스인데 산님이 없는 까닭이 궁금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보단 버스길이 끊긴 땜이란 걸 산행후에 알아챘다. 곳감도 아닌 코로나탓에 외면당한 호명산의 호랑이들이 자존감 상처받아 포효 몽니 부릴까 싶다. 바위에 걸터앉아 과일과 육포로 기갈을 때우는데 비로써 산님 세분(여2,남1)이 인살 하며 지나쳤다. 파시의 연분홍철쭉도 그들한테 인살 하고 낙화한다. 마치 마지막 산님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기차봉, 참나무가 표찰을 안 달았으면 그냥 지나쳤을뻔~

호명호수가 만개한 철쭉꽃다발을 월계수처럼 걸치고 있었다. 535m높이 호수가 한창 철쭉을 피우느라 수위가 낮아졌다. 연푸른 공원벤치에 배낭을 풀고 파란호수파장에 눈을 팔다 쪽잠에 들어 피로를 씻었다. 저만치 데크마당(?)엔 꼰대 두 분이 큰대자로 뻗었다. 세 아낙들이 풋나물 채취하느라 방정을 떠는 정경이 활동사진처럼 정겹고, 중년커플의 데이트모습도 추억 한 컷 꺼내보는냥 삼삼하다. 넓디넓은 공원이 한적해서 좋다.

호명호

호명호는 심야 전기로 하부저수지(청평수전댐)의 물을 호명산535m높이 상부저수지에 끌어올려 저장했다가 40만kW의 전기를 발전하는 청평양수발전소(淸平揚水發電所)용의 호수다. 간식으로 입질을 하면서 한참을 늘어졌다가 호수정문으로 발길을 옮겼다. 정문안내소도, 버스매표소도 휴무라 사람이 없다. 버스를 타고 상천역으로 하산할 요량이었는데 코로나가 봉쇄한 꼴이다. 초행길이긴 하지만 바쁠 것도 없는 나는 차도를 따라 상천역을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호명호 댐

신록터널을 이루다시피한 포도는 적당히 굽이친 리드미컬한 내리막이라 트레킹하기 딱 이였다. 게다가 철쭉무리로 시작한 차도는 애기똥풀과 쥐오줌풀이 노랑과 하얀 꽃들을 난삽하게 흩뿌려놔 신명이 났다. 거기에 흰갈퀴와 벌사상자가 무리지어 활짝 웃고, 이팝나무와 아카시나무가 짙은 향까지 뿜어내니 계절의 여왕5월의 잔치에 푹 빠져들었다. 산사나무와 노린재 꽃이 층층을 이루고 마가목이 보초마냥 나타나곤 한다.

5월의 여왕이 왕림한 호명호수공원

3km정도 내려오자 큰골의 관리실이 나타났다. 매표소 아줌마는 상천역까진 아직 4km쯤 남았는데 차편이 없어 어쩐다냐?고 동정을 선사한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호명호탑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는 큰골능선을 탔어야 했단 걸 이제야 깨달았다. 다소 힘이 빠졌지만 4km트레킹은 다시 시작된다. 어쩌다 자가용만 어슬렁거릴 뿐 쥐죽은 듯 고요한 큰골산자락 길엔 간혹 인적 없는 식당이 세월을 잊은 듯싶었다. 반기는 건 오직 야생화가 퍼레이드를 펼치는 5월의 여왕이라!

큰골을 향하는 신작로의 5월의 하늘

글다가 검푸른 상천저수지가 회색하늘과 신록의 산을 끌어와 담구고, 낚시꾼들이 그 수면에 입질을 던지는, 비로써 사람 사는 세상이 나타났다. 금낭화가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철 잃은 보랏빛제비꽃이 숨어 살짝 웃었다. 찔레꽃과 세로티나꽃향기가 가슴을 열어재키는 풋풋한 5월의 잔치가 장장16km상당의 홀로트레킹을 지치지 않게 함이었다. 코로나세상에서 탈출한 호명산의 하루는 호젓하고 거스를 게 없는 행복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강태공의 요람인 상천저수지, 비로써 인적이 나타났다

오후4시반에 상천역사에 들어섰다. 다시 코로나마스크를 썼다. 지금부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가면무도회세상을 향한다. 자연을 파괴한 주범들인 우리들이 민낯으론 떳떳하질 못해 자숙하는 삶을 살아야 함인가 싶은 게다. 서로서로 거리두길 하고, 악수도 포옹도 음성표찰 달아야 하는 불신의 세상으로 향한다. 자연을 훼손하는 죄악은 어젠가 악질 바이러스침입으로 참화를 입는 다는 부메랑의 법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 치곤 넘 가혹하다.

2020. 05. 14

큰골과 호명호를 잇는 차도는 신록터널을 이뤘는데 산책객이 가뭄에 콩 나듯~
육혈공의 소나무 뒤로 여섯쌍동이 상수리나무가 눈길을 붙잡았다
▲호명산정상에서 조망한 서북능선▼
쥐오줌풀
벌사상자

 

노린재
상천저수지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를 사람에게 전파했다는 천상갑
●점선이 산행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