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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검단산(黔丹山)의 유월

검단산(黔丹山)의 유월

검단산엔 기똥 찬 포퍼먼스로 눈길 붙드는 나무들이 많다

때 이른 폭염이 열대야까지 부르다가 어제 밤엔 소나기 한 떼를 퍼부은 건 상쾌한 오늘을 열기위한 수작이었을까? 하남시 에니메이션고교 뒤 검단산들머린 풋풋한 초하의 신록들이 아직 세숫물 끼얹은 채였다. 초록터널 속을 파고드는 촉촉한 산길은 휘파람 날듯하다. 나잇 살 먹은 듯싶은 나무들이 아랫도리에 걸친 이끼 옷도 한결 짙푸르다. 그 이끼 옷에 기상천외한 수(繡)를 놓느라 나무들은 숨죽이고 있다. 고요가 팽배하여 울창한 숲의 여백을 터뜨릴 것 같기도 하고.

들머리의 신록터널은 산뜻했다

놈들은 어디에 숨었다 떼거리로 나타났을까? 죽은 듯한 이끼 위의 놈들은 얼핏 같아보여도 제각각이고 종도 다르다. 꿈틀대는 놈, 기는 놈, 고개를 휘젓는 놈, 동료 등에 탄 놈들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놈들이 하늘로 치솟은 나무를 타고 죽음의 곡예를 펼치는 놈도 있다. 하늘까지 갔다가 용케 살아 거미줄 타고 낙하하는 놈도 어쩌다 한 놈씩 있다.

송충이들의 엑서더스가 산행 첨부터 끝까지 이어졌지만 난 영문을 모르는 멍충이었다

소나기내린 금단산의 아침은 놈들의 페르몬으로 더 후덥지근한지 모르겠다. 놈들은 살판이 났는지 모르지만 몸뚱이 간질거려 환장할 나무들과, 페르몬의 열기로 무더워진 숲 공기에 숨 막힐 것 같은 나는 놈들이 징그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였다. 놈들은 도대체 무얼 하는 짓들일까? 누군가는 송충일 뿐이라 했지만 무식한 나는 놈들의 굼뜬 삶이 여간 신기해 보였던 거였다.

송림의 열병도 받고~

그랬다.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 나무가 몸뚱일 비틀거리고, 그 파장이 번져 숲을 흔들어대는 어딘가로 부터 아우성이 들려왔다. 그렇게 일군 바람이 몰려왔다. 아! 시원 상쾌하다. 유길준묘역을 지나치고 빡센 오름길을 지치게 하지 않는 건 송충이들이 펼치는 퍼포먼스와 바람결이었다. 느닷없이 새 한 마리가 운다. 아니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문득 처음 오는 나를 보고 낯선 얼굴에 놀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몸뚱일 섞는 두물머리, 그 뒤섞임을 진정 시키는 팔당댐과 팔당호수

뭉텅뭉텅 잘린 햇살이 가파른 바위돌계단에 뒹굴면서 어지럽게 군다. 땀을 훔치려 모자를 벗었다. 한결 시원하다. 또 아까 그 새가 간담 서늘하게 울어댄다. 필시 새까만 얼굴의 내가 혹여 검단선사(黔丹禪師)의 재현인가? 싶게 헷갈린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놈들이 익히 알고 있을 전설도 여기 어디쯤에서 머물었던 검단선사가 나처럼 얼굴이 까맸다고 들었을 테다. 쉼터 전망바위에서 배낭을 벗었다.

바위너덜길


"이놈이 오늘은 왜 이리 늦노." 검단선사는 고개 마루 편편한 바위에 앉아 소년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늘 먼저 와서 기다리던 소년이 오늘은 안 보이는데다 하 늦어서였다. 근디 한 참 후에 나타난 소년이 한다는 말이 뜬금없기도 했다.

"할아버지 오늘은 시간도 늦었는데 바둑은 그만 둘까요?"

"네가 싫으면 할 수 없지 뭐냐."

"아니에요 할아버지, 싫어서가 아니라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 돼서 그래요." 소년의 어미가 아프다는 건 엊그제부터 들어 온 지라 그리 놀라 자빠질 일도 아니었다.

"그럼 너의 어머니 병환만 나으시면 나하고 매일 바둑을 둘 수 있겠니?" 선사는 부러 시치미를 떨며 소년의 효심을 살폈다. 바둑 보다는 자식처럼 느껴지는 속세의 연민을 굳이 억제하고 싶지도 안했다.

"동네의원 말씀이 어머니의 병은 대추하고 곶감 두 가지를 달여 먹으면 병이 낫는 다네요. 그래 내일은 그걸 구하러 길을 떠나려고요." 이제 소년은 열 세살이었다.

"그게 어디 있다던? 이 후덥한 유월 여름철에 말이다?" 선사는 난감했다. 어린아이가 무작정 길을 나선다는 게~?

남한강, 가운데 튀어 나온 반도 끝엔 다산유적지가 있다

"북쪽엔 가을이 빨리 오니까 그쪽으로 가볼까 해요. 오늘 당장 떠나려고요."

노인과 소년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검단선사가 말린다. 그는 도사이기도 했다.

"얘야, 네가 길 떠나 약을 구하려면 한 달 더는 두 달이 걸릴지 모르니 차라리 내가 갔다 오마. 너는 어머니 병간호를 해야 할 게 아니냐.” 소년은 눈가에 눈물을 지으며 선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부터 칠 일 후에 해가 네 머리위에 오거든 여기서 나를 기다려라. 내가 그 약 꼭 구해 오마"

검단선사는 축지법을 써서 묘향산 깊은 계곡에 들어가 대추와 곶감을 구해 약속된 날짜에 돌아왔으나 고개마루 바위에 소년이 보이지 않았다. 이틀 전 어머니를 여읜 소년은 이미 행적을 감춘 뒤였다. 검단선사는 자괴감과 무상한 생각에 잠긴 채 산굴로 돌아와 작은 암자에서 선정에 들어 두문불출했다. 선사의 얼굴이 새까매 이 산의 이름을 검단산이라 부르게 된 연유다.  <검단산의 전설(문화원형백과 한강 생활문화)>을 요약 발췌해 봤다.

검단선사

검단선사는 백제 위덕왕(威德王)때 선사로, 577년 선운사를 창건했었다. 선사가 도솔산에 보장한 자장보살상의 얘기도 인구에 회자 된다. 글고 고창군 심원면의 바닷가 마을 검단리(黔丹里)도 선사를 기리는 이름이다. 나는 검단선사의 전설을 상기하면서 빡센 검단산길을 헤쳤다. 드뎌 정상에 섰다. 넓고 편편한 정상은 검단선사가 소년을 기다렸던 편편한 마루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말이다. 정상은 장기판을 몇 군데 차려도 될 성싶었다.

아니다. 그 보단 더 멋있는 대자연의 풍광이 펼쳐지고 있었다. 발밑에 한강이 유유도도하고 그 위 팔당댐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둬 광대한 팔당호를 빚어 두물머리를 만들었다. 팔당댐과 양수교가 운하에 떠 있고, 예봉산과 운길산이 산릉파도를 일궈 금세 덮칠 듯 밀려오고 있다. 하남시가지 뒤론 미사리한강변을 아파트란 하얀 상자들 집하장이 됐고, 롯데타워로 하늘에 구멍을 내어 쏟아진 안개 뒤집어 쓴 강남일대가 한 폭의 묵화가 됐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몸 뒤석는 두물머리와 팔당댐

아! 헐떡거리며 오르던 산행 중에 감칠 맛 나던 풍경들이 정상에서 장엄하게 파노라마치기 위한 맛 뵈기였지 싶었다. 정상엔 장기 판 대신 허기 채우는 산님들이 나무그늘 밑에 웅크리고 있다. 호국사를 낀 골짝계곡으로 하산한다. 급살 맞은 경사로는 야자포대를 깔아 그나마 좋았다. 전나무일까? 편백 숲일까? 울창한 침엽수림이 골짝을 꽉 메꿨다. 비 온 뒤끝의 후덥지근한 날씬 침엽수림이 쏟아 붓는 피톤치드로도 감당이 안됐다.

직녀봉, 예봉산, 직갑산, 운길산이 파도를 일궜다

골돌약수터의 냉수로 얼굴과 창시까지 세수했다. 근디 이 건 또 뭔 쇼일까? 십 여 명의 송충이 퇴치소대가 분무기로 약제를 살포하며 북상 중이었다. 효과가 있을까? 내가 뻔한 질문을 하자 그들도 ‘글쎄올시다.’라고 동문서답하고 있었다. 등산로 갓길로 소풍 나온 놈들 중에 억세게 재수 나쁜 놈, 실타고 공중낙하하다 죽은 놈보다 더 재수 옴 붙은 놈만 목숨 잃는 게다. 차라리 드론살포 하는 게 효율적일 테지만?  지자체 곶간이 빈 탓일까? 헛지껄이도 잘 하드만~.

하남시가지

누가 송충이 천지라는 민원이라도 넣어 땜질 전시효과를 위한 행정이라면 이해할 만했다. 이 후덥지근한 날씨에 고생하는 그들을 송충이는 안쓰럽다는 듯 고소하는지도 모르겠다. 송충이들은 위험지역을 페르몬으로 알려 비웃 듯 살아남을 테니 말이다. 저놈들은 인간보다 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을 게 틀림없다. 놈들의 DNA가 인류문명 발달사에 일말의 기여도 했을지 모른다. 송충이와의 싸움이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송충이 방재중, 나름 일자리 해결까지 일거양득인가? 딱할 노릇이라. 지자체는 예산타령할까?

검단산은 하남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산세였다. 높지 않으면서도 결코 얕잡아 볼 수 없고, 근경을 보여줄 듯 말 듯 하면서 우듬지에 섰을 때 장엄한 대자연을 파노라마 시켜 환호성 치게 한다. 가파른 등산로도 잘 정비됐다. 더 이상 데크길 안 만들면 좋겠다. 하산길 골짝에서 따 먹은 야생딸기 맛은 달달했다. 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추억 따먹기냐! 자연보호?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안던가? 2020. 06. 11

상쾌한 전나무 숲 통과는 한참 걸렸다
멀리 서울강남일대, 롯데타워가 보인다
멍멍이 바위
북한강, 양수대교와 중앙선철교가 가로지른다
팔당호수
하남시가지와 미사리일대
쉼터 정자
이렇게 멋진 침엽수림속을 오리쯤 걸었나?
너덜지대
쉼터의 연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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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병풍처럼 휘두른 산마루금, 관악,청계,북학연봉들일까?
유길준가족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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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대교에서 조망한 한강
빨강점이 등산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