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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인왕산숲길의 석굴`천향암 비경

인왕산숲길의 석굴`천향암 비경

 

석굴암서 조망한 서울

경복궁역에서 독립문쪽으로 500m쯤 걸으면 사직단담장에서 시작되는 인왕스카이웨이와 병행하는 인왕산자락길에 들어서게 된다. 단군전과 화악정을 에둘러 오르면 군부대철문과 호랑이 한 마리를 마주치는데 거기서 좌측으로 쫌 오르면 석굴암푯말이 보인다. 초입부터 계단은 가파르다.

석굴암경내

인적이 없어 숲속 골짝을 흐르는 여린 물소리가 금세 일상탈출에 들게 한다. 이 물길이 청계천의 발원지며 유명한 약수터 물도 몸을 섞어 옥류동천(玉流洞川)을 형성한다. 인왕산밑자락 옥인동의 유래는 옥류와 인왕의 첫글자를 차용한 거다.  이 옥류천과 수성동계곡물이 합수하여 청계천을 낳아 옛 경성사람들의 생활수가 됐다.

석굴암,약수터 들머리

헐떡거리며 지그재그계단을 오르면 뜬금없는 육각형의 시멘트옥상과 뜰 그리고 그 아래 수저지(水貯池)가 나타난다. 암벽아랜 ‘군 유격훈련장소' 란 글귀가 남아 있는데 모두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꽤 넓다. 기왕 시민들을 위한 숲길조성을 위함이라면 산뜻한 쉼터로 조성했으면 싶었다. 된비알계단을 다시 오른다.

호랑이굴바위

서울시가지가 숲 사이로 몇 장의 사진으로 선뵌다. 멋지다. 인왕천약수터와 석굴암에 대한 궁금증은 한참을 욕 뵈고도 모자라 갈림길로 멈칫거리게 한다. 먼저 약수터를 찾아 해갈부터 할 요량이었다. 인왕바위를 에둘러 파고드는 길은 여간 난처하다. 물맛 기똥차게 하려함일까? 약수터자린 말쑥하게 단장했다. 물길이 약해선지 저수통에 물을 저장하여 수도꼭지를 이용케 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조망하는 시가지는 풍류객이 다름 아니라 하겠다.

약수암 된비알 길

근디 가파른 돌계단은 계속 산정을 향하고 있다. 궁금증이 빡센 비탈길의 끝장을 물고 늘어졌다. 급살 맞은 돌길은 인적 뜸하기 딱 일 것 같다.  멧돼지출연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괜한 엄포는 아님이란 생각이 들었다. 험한 길은 싱겁게도 범바위가 지척인 한양도성으로 이어졌다. 빠꾸한다. 석굴암 탐방길이 궁금증 탓에 잠시 어긋난 거라. 이때 내 뒤에 산님 한 분이 다가왔다. 하산하는 중 이었다.

인왕천약수터

이 호젓하고 빡센 등산길을 자주 이용한다는 산님께 나는 ‘복 받은 분’이라고 부러워했다. 이 아래 옥인동주민이라는 산님은 환하게 웃으며 공감한단다. 다시 약수터에 왔다. 펑퍼짐하게 앉아 등허릴 보이는 장년은 아깐 없었다. 개 한 마리를 동반한 채 페트병에 물 받고 있었다. 피톤치드로 몸 씻고 약수 들이키며 운동까지~!

폐쇄된 벙커

개까지 운동시키며 해발300M 인왕약수를 몇 곱으로 즐겨 음용하는 대단한 약수 꾼, 그 분 역시나 복 받은 분이었다. 아까 주춤댔던 석굴암갈림길에 닿았다. 석굴암방향의 길은 있는지 없는지를 종잡기 난하게 긴가민가한 흔적의 길이다. 석굴암 찾는 산님이 이리도 없단가?  의아했다. 석굴암에 당도하기 전까진~.

울창한 수목 속의 덩그러니 입상에 든 부처

여긴 더 음산하여 멧돼지출현 경고 보단 호랑이출현경고가 맞지 싶었다. 조선조 초기까지만 해도 여긴 호랑이 소굴이었을 테다. 아래 경성주민들이 호랑이 좀 퇴치해 달라고 신문고에 고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조정(인조  때)김자겸대감은 호랑이 서식지 없앤다고 나무를 남벌해 인왕산을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지금도 김자겸을 닮으려는 부끄러운 관료가 있어 우릴 슬프게 한다. 

약수터에선 이 바위를 통과해야 석굴암에 이른다

석굴암은 그냥 협소한 기도처석굴인데 거기서 우측으로 30m쯤의 천향암(天香庵)이 볼만했다. ‘하늘의 향기’가 바위가 짜 내는 물방울을 의미함인가! 꽤 넓은 석굴엔 바위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어 빚은 석정(石井)이 신비스런 천혜의 휴식처였다. 바위멍석에 앉아 천향수 떨어지는 소리를 선정에 드는 일념으로 가부좌할 만하겠다. 석정의 물도 옥류천의 또 하나의 원천이라.

천향암, 위에 글자가 보인다

나에게 천향암을 알려준 일단의 산책객들이 떠난 암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석굴암엔 상주하는 스님이나 보살님이 없다. 출퇴근 하나 싶다. 열쇠 걸어놓은 암자 뜰에 핀 꽃들이 5월의 여왕으로 뽐내면서 스님 대신 불침번 하고 있었다.  천향암, 석굴암, 약수터가 치마바위끝자락에 매달려 있음을 명료하게 볼수가 있기도 했다.

초파일 연등하느라 나무도 고역이다

이 험한 산길 헤치면서 석굴암에 올라와 자신의 홍치마를 치마바위에 널곤 했던 단경왕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렇게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으니 사랑의 힘이란 가늠키 어렵다. 쪼잔하고 욕심 많은 남자 탓에 오뉴월 서릿발 품는 여인도 많겠지만 요즘은 단경왕후 같은 순애파 여성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석굴암위 치마바위

석굴암행 본길은 근년에 만든 데크계단이 줄곧 이어져 하산하기 좋았다. 인왕산 주둔 군 시설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인왕숲길이 있다는 걸, 때 묻지 않고 자연스러운 석굴`천향암과 약수터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됐다는 게 반가웠다. 데크길 그만 깔고 자연석으로 단장했음 좋으련만~. 길 텄으니 자주 찾아 나도 ‘복 받은 놈’ 되리라.

2020. 05. 27

석굴암연등
벡호부대가 철수된 벙커터(상)와 샤워장(하)
샛길 패쇄. 멧돼지 출몰지역 경고판이 곳곳에 있다

 

약수터와 석굴암을 잇는 길은 거의 된비알돌길이다
석굴암 본길은 데크계단이 주류다
천향암 아랜 암반수저인데 낙엽이 어지러워 품위가 훼절됐다
천향암 약수가 떨어지면서 파인 석정, 물방울이 바윌 뚫는다는 실증
천향암동굴 안에서 본 삼각형입구
암벽에 새긴 호랑이를 거느린 도사가 여간 흥미로웠다
석굴암
석굴암 내부 불전
지팡이 든 도사를 수호하는 호랑이(좌)와 부처님(우)
▲혼례식(?) 올린 부부(우)와 사모관대 쓴 고관이 시종과 호랑이를 동반했다. 호랑이가 그만큼 많았다고 볼 수 있다(좌)▼
석굴암의 우측의 바위 뒤엔 정말 꾸꿈스런 곳에 석간수가 있다

 

석굴암서 조망한 서울중심부, 멀리 남산타워, 뒤로 관악산이 그림자 같다
석굴암마당의 연못, 올챙이천국이였다
치마바위
등산도, 빨간 점은 상행, 보라색점은 하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