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만발한 연두치마의 도봉산
(우이남능선-원통사-우이암-보문능선-무수골-정의공주묘)
5월의 산천은 싱그럽다. 코로나19가 짓궂게 앙탈부려도 연둣빛생명한텐 속수무책인가 싶다. 우이령길 입구에 들기 무섭게 풋풋한 연초록숲 터널은 연둣빛이 홍건하다. 몇 잎 따 쥐어짜면 연두물기가 배어나올 듯싶다. 돌계단 된비알길이 코로나마스크를 벗게 한다. 숲 향이 상큼하다. 연분홍철쭉이 배시시 웃으며 영접을 한다. 박새무리도 부산떨면서 길안내를 자청하고 있다.
도심의 답답함과 코로나19의 불안이 까맣게 사라졌다. 진홍의 병꽃이 막 봉오릴 터뜨릴 찰나다. 일단의 직장산악인들이 해방구를 찾은 듯 시끌벅적댄다. 참 오랜만에 맛보는 엑서더스의 쾌재일 테다. 벌써 푸른 5월인 것을! 봄이 이렇게 낭창 익은 것을! 삶이란 것은 살아 낼만 하다는 걸! 우이능선 숲길은 알려주는 거였다. 온 몸으로 숨 쉬며 느끼게 하고 있었다.
원통사(圓通寺) 골짝의 연분홍철쭉은 우이암이 걸친 연두치마자락에 황홀하게 지피고 있었다. 연분홍치마폭 속에서 서성대는 뿌듯함은 오늘산행의 백미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아름답다. 연두치마에 수놓은 연분홍철쭉! 나를 빙 휘두른 연분홍치마자락이라! 한나절을 여기서 쉬고 싶었다.
빡센 바위 길을 오른다. 원통사는 호락호락 절 마당을 내놓질 않는다. 석간수도 말라 커다란 주전자물 보시를 하는 보살님이 참 친절하다. 태조이성계가 기도를 드렸다는 바위굴에 올랐다. 마침 묘령의 여인이 예배드리고 나오는 중이었다. 다시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정승)이 되어 옥항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는 바위 ‘상공암(相公岩)에 내려섰다. 약사전(藥師殿)마당바위다.
원통사는 (좌)수락산과 (우)삼각산 사이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명당으로 숱한 선지식과 제현들이 수도한 관음기도처다. 무학대사, 만공, 동산, 춘성 등 선지식께서 선정에 들었단다. 나는 춘성(春城)스님께서 1928년 초여름에 원통사주지 비구니 자현(慈賢)의 초빙으로 절의 중창을 발원한 천일관음기도를 했다는 점에 귀가 솔깃했다. 육두문자설법으로 일세를 풍미한 스님은 저만치 포대능선의 망월사를 중건반석에 놓은 주지이기도 하다.
1960년대 서울 근교 어느 비구니 사찰 중창불사를 위한 법회에 스님이 설법을 했다. 그 절엔 정`재계의 상류층 귀부인신도들이 많기로 소문났었다. 법문을 마치고 당부말씀 한 마디 뱉는다.
"시집 장가가는 데는 자지와 보지가 제일이듯. 중창불사 하는 데는 돈이 제일이니 오늘 이 법회에 온 인간들아 돈 많이 시주하고 가거라!" 라고.
춘성스님을 잘 아는 노보살한테 소견머리 좁고 혼기마저 놓쳐 히스테리가 심한 손녀가 있었다. 그 보살이 손녀를 춘성스님께 보내 법문을 듣고 평정심에 들게 하고팠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노처녀가 스님거처에 들어와 인살 올리고 앉자마자 스님이 대뜸
“네 작은 그것에 어찌 내 큰 것이 들어가겠느냐”고 일갈한다.
얼굴 빨개진 노처녀가 기절초풍 문을 박차고 집으로 달려가서 할머니에게 “쌍것도 상쌍놈이 중이라고요?”라며 분을 못이긴 채 자초지종을 실토했다. 그러자 노보살은 “그러면 그렇지. 바늘구멍도 못 들어갈 네 소견머리에 어찌 바다 같은 큰스님의 큰 법문이 들어가겠느냐”며 혀를 찼단다. 허를 찌르는 육두문자설법은 스님의 전매특허(?)
욕쟁이 스님, 무애도인, 무소유의 생불춘성스님을 나는 참으로 흠모한다. 스님은 원통사중창법문에 어떤 육두문자를 설했을까? 우이암은 원통사 뒤에 있다. 가파른 바위틈새를 한참 헉헉대며 기어올라야 한다. 귀룽나무 두 그루가 능수버들보다 더 멋들어지게 꽃가지를 늘어뜨리고 산님들을 받는다. 하마터면 불온한 시국 탓에 일년동안 가꾼 화사한 자태를 산님들에게 자랑도 못 할 번한 귀룽나무였다.
조팝꽃 같은 하얀 꽃술은 짙은 향을 우이골짝에 지펴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향기를 마시며 쑥떡과 과일로 점심을 때웠다. 얼마 만에 만끽하는 고산숲속의 오찬인가! 엉덩이 걸칠만한 바위는 죄다 산님들이 차지 연두치마폭의 낭만에 취하고 있었다. 얼마만의 외출이며 숲속의 밀어들인가! 연두치마를 뚫고 솟은 우이암이 코앞에 다가선다. 근처의 자운,신선,만장,선인봉을 비롯한 모든 바위들도 연두치마폭 밖에 얼굴 내민 채 우이암을 향하고 있다.
귀때기바위라기 보단 관음암이라 칭함이 옮다. 자운주봉을 비롯한 바위마실들이 연무까지 휘두르고 있어 연두치마자락의 유혹은 은근슬쩍 의뭉스럽기까지 한다. 보문능선을 탄다. 바위틈새에 핀 병꽃도 하얀 놈이 대세다. 보문능선 중턱 바위에 걸터앉아 조망하는, 우이능선의 바위들이 걸친 연두치마자락의 오색만등이 볼만하다. 어째 초파일꼬까옷 걸친 원통사 속내도 의뭉스러워진다.
바위마실을 벗어난 보문능선 숲길걷기가 상쾌하다. 연두이파리 사이로 숨바꼭질하던 자운연봉이 아련해진다. 도봉옛길에 들자 무수골로 방향을 틀었다. 코로나19엑서더스인파가 엄청 덤벙댄다. 얼마나 기다린 시간이었던가! 그룹 아닌 가족소풍 말이다. 코로나19가 선물한 ‘가족이란 뭔가?’에 대한 해답의 연장선이지 싶었다. 바가지약수터에서 약수를 채워 넣고 숲속을 헤집는다. 정의공주와 연산묘를 훑고 우이령길입구로 회귀할 요량에서다.
장장12km남짓한 트레킹이지 싶다. 북한산둘레길18~20구간은 트레킹하기 참으로 멋진 길이다. 미풍에 살랑대는 연두이파리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나는 박새무리의 지저귐까지 자연 모두는 산책의 열락에 빠져들게 한다. 도봉산연두치마폭에서 6시간동안 행복에 취한 하루였다. 피곤이 밀려오긴 했지만 실로 모처럼의 콧노래트레킹 이였다. 5월이 선물한 연둣빛 세상에~! 2020.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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