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을 맞는 그리움

꽃의 왕 목련

오늘이 식목일이다. 내 학창시절엔 헐벗은 야산에 나무심기로 오전수업만 하여 식목일은 즐거운 휴일인 셈이었다. 허나 지금은 지구 온난화로 3월중순경부터 나무을 심고, 정작 식목일엔 신록완상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푸른 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 한단다. 4월5일쯤이면 온 산야는 연둣빛새싹으로 물들고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만개한다.

설렘과 희망의 풋풋한 봄으로의 행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4월을 기다리는 여심(女心)이 지하세계에도 있다. 하데스의 지하왕국에서 지상나들이를 꿈꾼 페르세포네는 지상에서의 일정이 몸뚱이가 수천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긴 하지만 사람세상이 좋다. 온갖 씨앗을 뿌리고 꽃 피우며 열매를 맺게 하는 작업에 몸은 녹초가 될 판이지만 말이다.

프랑수와 부세 그림 <페르세포네의 납치>

사람들이 자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단 걸 생각하면 수고로움은 열락이 되는 거였다. 페르세포네는 절세미모 탓에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당했지만, 제우시신의 배려로 지상에서 머무는 반년동안의 그녀의 아름다운 행동은 뭍 생명에 구원의 천사다. 근디 페르세포네에게 겁 없이 도전(?)하려던 여걸이 있었다. 당 태종의 후궁 무미(武媚)다.

석류를 먹은 탓에 지하에서 반 년을 살아야 한 페르세포네

그녀는 태종이 죽고 아들이 고종에 등극하자 황후가 되고, 결국엔 두 아들까지 살해하고 황제자리를 꿰찬 무측천(武則天·624∼705)이다. 무소불위 무측천이 눈 내린 한 겨울 정원 산책을 하다 설경(雪景)이 단조로웠던지 만화방창한 정원을 보고 싶다, 고 뇌까렸다. 따르던 신하가 얼른 간사를 아뢴다.

“내일 아침 모든 꽃이 만발하도록 폐하께서 성지를 내리시지요.”라고 아첨을 떨었던 것이다.

무측천은 초자연인 인척 거드름을 피우고 싶었던지 얼토당토 않는 오언시(五言詩)로 된 조서를 내린다.

무측천

"明朝遊上苑 (내일 아침 정원으로 산책 갈 테니)

火急報春知 (서둘러 봄에게 알리도록 하라)

花須連夜發 (꽃들은 밤새워서라도 다 피어 있으라)

莫待曉風吹 (새벽바람 불어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중국 유일 여황제 무측천

무측천의 조서를 본 꽃의 요정들은 화들짝 놀라 밤새워 꽃망울을 터뜨려 피웠다. 아침에 정원에 나온 황제는 기분이 좋아 입이 째질 듯 미소를 지으며 기고만장한다. 오만에 취한 황제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커다란 꽃송이가 싸가지 없게 피우질 않고 있어서였다. 모란[목단牧丹]이었다. 경애해 맞는 페르세포네였담 모르되 무측천 말에 꽃망울 터뜨리기엔 자존감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명계(冥界)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당하는 포르세포네

뿔따구가 난 황제가 모란을 뽑아 불태우라고 명하고도 분이 안 풀려 장안의 모란은 모조리 뽑아 낙양(洛陽)에 내다버리라고 했다. 그렇게 하여 낙양에서 번성하여 낙양홍(洛陽紅)이라 일컫는 모란은 부귀의 상징이며 약용으로 애지중지 사랑 받는 꽃이 된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사흘간 불태워 만든 설총(薛聰)도 모란을 꽃들의 왕이라고 화왕계(花王戒)에 기록한 꽃 중의 꽃이다.

고귀한 모란꽃잎으로 빚은 모란주[ 牡丹酒]를 귀한 손님접대에 사용했는데 나는 나의 결혼식 때 처음 마주했었다. 처가에서 약용으로 텃밭에 심은 모란을 화주(花酒)로 빚어 결혼식상각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모란주는 연자주빛깔이 엄청 고와 눈으로 맛보는 시감주(視感酒)라 할 것이다.

술은 빛깔과 향과 맛을 음미하는 기호음료일 테다. 애주가들은 투명한 그라스에 부은 첫 잔의 술을 색감으로 눈을 호사시키고, 다음에 코로 향기를 들이마시다 이윽고 혀에 몇 방울 떨어뜨려 미감을 살려내는 오감으로 마시는 술이다. 모란주는 빛깔의 술이다.   

얼레지

결혼식엔 정읍누님부부가 결혼식 상각으로 동반하셨는데, 매형님은 그날 접대 받은 상각상의 화주를 오랫동안 자랑삼아 얘기하시곤 했었다. 그 매형님도, 그 화주를 빚어주신 장인장모님도 이젠 세상에 안 계신다. 며칠 후면 결혼기념일(4월11일)인데 모란주로 울`부부의 행복을 축원해 주신 어르신들이 그립다. 탐스럽고 화사한 모란은 어디에서나 볼 수가 있지만, 투명한 선홍색의 모란주와 그리운 어르신들은 어디서 마주할 수 있을까? 장인장모님 안 계신 지금 상각상의 모란주는 추억속에서만 존재해 애석하다. 며칠 후면 모란도 눈부시게 만개할 텐데~!

2020. 04. 05

바람꽃
복수,바람,문주란

#위 봄꽃들 중 몇 컷의 사진은 '하늘바람님'이 보내준 사진임.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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