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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얼굴 없는 전쟁속의 상춘(賞春)

얼굴 없는 전쟁속의 상춘(賞春)

 

인류역사의 한 축은 전쟁사라지만 실체 없는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과의 전쟁은 미증유의 싸움이다. 지구상에 매일 듣보잡(코로나19)과의 전쟁으로 몇 천 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병원과 의사가 태부족이란 아우성이 매스컴을 도배질한다. 치료약이 없단 불안은 언제쯤 전쟁이 끝날지도 모르는 공포분위기까지 더해진다.

목련

얼굴 없는 코로나19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의 발길까지 묶어 사회적 격리니 자가격리니 하며 육해공운송수단까지 마비 시키려들고 있다. 자고로 어떤 싸움이든 뭉쳐야 승산이 있는 법인데 코로나19팬데믹은 1미터 이상 거리두기와 3인 이상 모임을 기피해야 듣보잡을 이길 수 있단다. 격리와 고립주의에 승산이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드는 주술적 공황 속에서도 봄기운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막 싹 틔운 연둣잎차일 친 귀룽나무

춘래불사춘의 봄은 정녕 우울한 우리들에게 희망의 싹을 돋우려나?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산야를 찾아 고적한 발길속에 봄맞이 새싹 응시하며 위안하나 싶다. 산수유가 우중충한 산야에 노오란 점을 찍더니 어느새 개나리가 노란파도를 일궈 산등성일 향하고 있다. 연분홍진달래가 연지곤지 찍은 얼굴로 환하게 인살 하고, 산자락밭뙈기 돌담의 매화꽃이 봉오리를 터뜨렸다.

목련, 매화, 산수유로 치장한 산사

남향받이 담벼락 너머로 목련이 만개하여 상춘객을 유혹하는가 하면 발부리엔 괴불주머니, 노랑제비꽃, 노루발풀이 여린 봄 햇살을 탐하고 있다. 지금 이 때가 꽃 피워 열매 맺을 수 있을 유일한 찬스란 걸 귀신 같이 알고 있음이라. 앙증맞은 풀꽃들 위로 국수나무, 화살나무, 쥐똥나무, 명자나무, 회양목, 찔레나무가 연둣빛잎눈을 밀어내는 산고(産苦)의 진통을 앓고 있다.  코로나19팬데믹쯤은 안 중에도 없다는 듯! 

연분홍진달래 꽃띠를 두른 안산 바위벼랑, 위에 정상이 보인다

놈들은 키 큰 나무들이 햇살을 차단하기 전에 햇빛에 멱 감으면서 화려한 내일을 준비한다. 조춘(早春)의 전령사인 키 작은 식물들은 꽃은 작고 향은 짙다. 엷은 햇살에 꽃잎은 작을 수밖에 없고, 매파도 아직  수가 적으니 짙은 향기로 유혹의 바람기를 뿜어내야 함이다. 그렇게 자연에 적응하는 진화의 신비술로 무장했기에 코로나19에 스러지는(?) 사람들보다 종(種)의 기원이 유구한지도 모르겠다.

고깔제비꽃

근디 이른 봄에 키 크고 별난 귀룽나무가 있다. 키 큰놈치고 속없단 데 훤칠한 놈은 바지런하여 땅에 달 듯 늘어뜨린 가지에 벌써 연둣빛 잎 새를 무수히 펼치고 있다. 느티나무 못잖게 치렁치렁 늘어뜨린 가지로 연두색 차일치고 있는 놈은 흑갈색수피 무늬로 몸뚱일 단장했다. 그 무늴 새로로 갈라 흡사 구렁이들이 기어오르는 듯하여 구룡목(九龍木)이라 했단다. 귀룽나무는 놈의 변음이다. 옛 선조들은 구룡목이 새싹을 트면 농사를 시작하여 농사짓는 지표목으로 삼았다.

가는 가지 늘어드린 귀룽나무, 연두싹이 돋는다

연둣빛잎이 무성한 4월말쯤 아카시아처럼 흰 꽃이 피어 뒤덮은 우람한 모습은 장관이고, 알싸한 향기는 근처를 진동시킨다. 꿀벌들의 밀원이기도 한 귀룽나무는 안산을 비롯한 서울근교 산골짜기에서 우아한 자태와 향기로 산책의 행복에 빠져들게 한다. 또 하나 내가 뒤 늦게 놈의 매력을 안 건 어릴 적 변소 똥통에 냄새재거용으로 꺾어 넣은 나무가 귀룽나무였단 거다.

홍매

어린 가지의 기름끼 수액에서 고무 태우는 고약한 냄새가 파리 떼를 퇴치시켜서였다. 안산자락길가에 화살나무울타리가 많다. 지금 새순이 트는데 어린잎은 동면한 동물들의 맛깔난 영양식이라. 하여 화살나무는 코르크날개를 잎줄기에 달아 새싹보호에 나섰다. 동물들이 잎 달린 코르크날개를 씹을 수 없어서다. 식물들의 생존의 지혜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팬데믹은 어쩌면 사람들의 자연홀대에서 야기했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섭리를 벗어난 오만과 편견은 재앙이 따른다는 경고를 무시한 탓이다. 사회적 격리란 씁쓸함에서 일탈할 수 있는 근교산행은 자연의 오묘한 지혜의 섭리를 깨우쳐준다. 듣보잡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는 혜안을 근처 공원이나 산야 봄나들이에서 찾을 수 있음도 자명하다. 자연 속에 생존의 답이 있다.

2020. 0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