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혔던 순간들~

“행복한 삶이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보다는 숨 막힐 정도로 가슴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에 달렸다”고 한 시인 마야 안젤루의 말이 생각난다. 짧은 생애에도 정녕 행복한 일생이었을 거다, 라고 말하면서 그 죽음을 애석해 하며 흠모하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다.

우린 흔히 짧고 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뭍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며 구질구질하게 장수한 삶이 결코 행복한 일생은 아니 터 여서다.

숨 막히게 사랑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숨 막힐 정도로 몰입하며 열정을 태운 일이 몇 번이었던가?

내가 하는 일에 누군가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그 즐거운 분위기에 자신마져 신명난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코로나19팬데믹(Pandemic)에 우울과 불안으로 지새는 일상에서 탈출하기라도 한 듯한 2월 마지막 날 밤의 유쾌한 순간은 정녕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후6시 우린 아파트단지 내 지인의 초청을 받아 그들 커플이 마련한 저녁식사에 참석했다. 모두 여섯 명이 자리한 식사는 파스타로 시작 됐다. 그 커플이 오후3시부터 준비했다는 식사자리는 와인을 곁들인 화기애애한 만찬파티(?)로 차환돼 밤11시까지 이어졌다.

우리 모두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했던 건 신선하고 맛깔 난 요리보단 다섯 시간을 즐겁게 지껄이며 레시핑에 신명난 그 커플과의 유쾌한 분위기의 공유였다. 그 커플은 오후 내내 재료들을 손질하여 준비해 놓고 코스요리를 그때 그때 만들어 내놓았는데, 그 시공간을 즐기는 흥겨운 퍼포먼스는 스페셜서비스(?)로 우리들을 달뜨게 했었다. 옛날에 애창했던 칸초네와 샹송, 팝송과 가요선율이 흐르는, 춤사위와 퍼포먼스를 퓨전 시킨 흥겨움을 공유하는 한 속이 돼버렸다.

누굴 위한 파티(?)였을까? 삐딱하게 굴자면 지네 커플이 즐기려는 파티에 우린 관객이 된 주객전도의 자리였지 싶게 말이다. 근디 그게 꼭 그렇지 않은 여섯 명 모두가 떠들고 즐긴, 코로나19펜데믹 불안에서의 엑서더스 시간이었다. 지인들을 위해 내가 하는 수고로운 즐거움이 그대로 지인들의 기쁨이 되는 행복한 자리를 얼마나 마련했던가? 행복한 순간이 꼭 거창한 일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 정성껏 마련한 집 밥 한 끼니로도 충분하다.

눈발 흩날리는 설원에 최초로 발자국남기는 낭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른다. 헐떡거리며 마침내 산정에 올라서 허파 터지도록 날숨 쉬는 그 순간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격이다. 벅찬 감격, 숨 박혔던 열정의 순간, 지인들과 눈물 날정도로 파안대소 했던 흥취의 시간이 인생을 살찌운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가슴 뛰는 순간들을 많이 추억 할 수 있는 일생이 행복한 삶일 터다.

코로나19의 숙주터였지 싶은 신천지교회는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강변하기 앞서 교회건물을 통째로 질본에 빌려줘, 모자라는 임시병상을 만들게 해 코로나19 확진자 치료센터로 하면 좋으련만.

그래 코로나19가 완전 소멸 됐을 때 신천지교회는 행복바이러스의 숙주처로 거듭나는, 복음의 전당으로 불명예를 벗을 수 있잖을까? 그때 '신천지'다운 교회로써의 사명을 행한 복음터가 될 것이다.

이 세상을 하직 하는 순간의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슴에 담겨진 짜릿한 추억뿐인 것이다.

2020. 02. 29

오랜만에 맑게 갠 서울의 북한산▲과 인왕산▼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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