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방콕에서 설맞이4박5일 - 씨얌 파라곤 & 룸피니공원
섣달그믐이 밝았다. 이젠 무지랭이가 됐음직한 내가 낯선 이국땅에서 설날을 맞는다는 것도 세 번짼가 싶다. 8시 반쯤 라운지에서 연어횟감과 야채샐러드, 닭 꼬치 하나와 각종과일로 아침을 들었다. 점심을 이태리식당에 예약해뒀으니 간단히 먹자고 둘째가 보채지 않아도 아낸 아직 입맛이 없단다.
엊그제부터 몸살기에 끙끙 앓던 아내가 몹시 걱정됐는데 다행스럽게 생기가 돌고 있어, 아니 이것저것 입에 풀칠을 하는 통에 내심 반가웠다. 오전엔 무리하지 말고 쇼`윈도우를 곁눈질하며 거북이가 되고, 오후엔 근교 룸피니 파크(Lumpini Park)산책을 하잔다.
휴식 겸 놀러왔지 욕심 부려 관광지 찾아다니며 고생하려고 나선 여행이 아니라는 아내와 둘째한테, 꽥 소리 안 하는 게 현명하다는 걸 체험으로 터득한 나다. 전 같으면 설빔하느라 손발이 몇 개 더 달렸어도 모자랄 아낸 세상 만난 거다. 긍께로 몸살기에 비실대면서도 장거리여행에 두말 않고 나선 게다.
여행은 바쁜 일상에서 탈출해 재충전하려는 워킹`족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허접한 내면을 보충하려는 나 같은 룸펜`족으로 나눌 수가 있겠다. 어떻든지 여행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경자년 새해를 흰쥐처럼 바지런 떨며 살기위한 발 돋음을 방꼭 아닌 방콕에서 하는 품새라 기분 좋다.
숙소인 하얏트호텔은 메인스트리트 빌딩숲 속에 있어 쇼핑하기 좋을 듯싶다. 5성급호텔답게 9곳의 식당과 와인바, 유명브랜드 쇼 윈도우와 야외수영장, 스파, 헬스장과 스쿼시코트가 부대시설로 유혹하고 있었다. 수영`스파`헬스는 공짜로 이용할 수 있으니 굳이 무더위 속 외출을 할 필요가 없다고 둘째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열대기후인 타이는 건기인 지금이 젤 견딜만하단다. 상온의 기온에 풍부한 강수량은 쌀과 과일의 천국을 만들었다. 게다가 옛날 라마왕국은 이웃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근세 열강(영국과 프랑스)국에 등거리외교로 독립을 지켜온 동남아 유일의 국가다. 그렇게 살기 좋은 나라가 후진국이 된 건 군부의 연속된 구테타정권의 부패 탓일 것이다.
하얏트호텔입구 우측에 에라완사원이 있는데 인파로 북새통이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궁금했는데 향을 피우며 새해의 축복을 기원하는 품새란 걸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에라완사원을 중심으로 즐비한 고층건물들이 방콕의 대형쇼핑몰 밀집지역이라. 방콕의 유행을 선도하는 씨얌 파라곤(Siam Paragon)지역이다.
씨암 센터, 디스커버리 센터, 마분콩 센터 등이 스카이`브리지로 연결돼 한참 눈요길 하다보면 어디가 어딘지 헷갈린다. 세계의 유명브랜드전시장이라 상품은 비싼 편이나, 당도가 높은 신선과일과 실크제품 등 타이농수산1차상품은 그래도 싼 편이다.
둘째의 우격다짐으로 아낸 실크스카프 두 개, 나는 팀`버랜드 반바지를 챙겼는데 반바지는 넘 비싸 둘째와 실랑이 좀 했다. 자식들의 선물도 편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어야 꿩 좋고 매도 좋은 법이다. 설맞는 쇼핑몰은 화려한 상품과 이색적인 이벤트볼거리들로 인파는 넘쳤다.
그것들을 훔치는 눈 호강으로 오전이 훌쩍 지나버렸다. 부러 늦은 시각(13;30)을 예약한 이태리식당(THE DINING ROOM)에서의 몇 가지 코스요리는 조식포만감 탓인지 감칠맛나질 않았다. 나는 환장하게 좋아했던 국수나 빵 종류 음식을 어찌 됐는지 위암수술 후엔 거부감을 느껴 잘 먹지 않는다.
더구나 메운 맛의 카레는 더더욱 그렇다. 인도음식과 이태리음식은 나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편이다. 오후엔 반시간쯤 걸어 룸피니공원(Lumpini Park)을 찾았다. 약57.6ha의 광대한 평지에 보트놀이를 할 수 있는 호수와 열대식물이 도심의 유토피아처럼 펼쳐졌다. 1920년 라마6세가 자기 땅에 불타의 공덕을 기리고자 공원을 조성 기부했다니 꼭 100살이다.
공원엔 2.5km의 산책길이 있어 조킹과 바이클, 글고 각종운동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행복해 보였다. 특히 방콕의 도서관효시라는 수안 룸피니 공원도서관(Suan Lumpini BMA Public Library)은 참으로 정갈하고 평안했다. 나는 화장실을 찾다가 숙연한 분위기에 당황했었다. 공원 숲속의 아담한 도서관이라니~! 그 분위기가 넘 좋았다.
'룸피니'는 불타의 탄생지명 '룸비니'에서 차용했단다. 다양한 열대수목 속에 30여종의 조류가 서식하는데 길이1.5m의 대형도마뱀이 어슬렁대어 놀랬다. 특히 울`부부를 감동 먹게 한 장면은 남생이와 비들기의 진한 사랑놀이였다. 우기가 다가오기 전인 지금이 종의 번식을 위한 섹스의 적기일까?
호수 뗏목위에 남생이커플의 섹스신이 한참이다. 굼뜨기 한량없는 놈들의 섹스시간은 그래서 부러움의 대상인지 모르겠다. 그 섹스를 즐겨보는 남생이와 도마뱀의 진지한 관망은 얼른 추측이 안 됐다. 짝이 없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야하나? 근디 더 노골적인 섹스장면을 수많은 동료들 앞에서 놀아나는 비둘기 한 쌍이 있었다.
깃털을 곤두세워 몸통을 부풀린 수컷비둘기가 끙끙대며 암컷과 스킨십을 하다 맘이 통했던지 서로 주둥이를 비벼대길 반복 한다. 앓는 소릴 하는 수컷 앞에 암컷이 엉거주춤하자 수컷이 암컷꽁무니 등에 올라타 비틀거리다, 꼬리를 꼬아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듯했다. 그 찰나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수컷을 쫓자 혼비백산 비상해버렸다.
놈들은 간통이었을까? 아님 벨이 꼬여 훼방 놓은 걸까? 암튼 나는 처음으로 비둘기의 섹스신을 관전하는 행운을 누렸다. 무릇 생명은 신성하고 사랑은 위대하다. 그 위대한 섹스가 지구촌을 역동적으로 새롭게 역사를 일구어 왔음이다. 그 신성한 사랑의 순간을 지켜보는 수많은 비둘기와 남생이와 도마뱀도 우기가 닥치기 전 반려를 찾을 테다. 그들의 사랑을 축복한다.
2020.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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