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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콤모두스황제를 기억해야할 소이(所以)

 콤모두스황제를 기억해야할 소이(所以)

 

훤칠한 키에 회색눈동자, 금가루를 뿌린 듯한 금발머리에 건장하고 잘 생긴 얼굴의 19세 청년은 게르마니아와 대치한 도나우전선에서 황제에 오른다.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가 갑자기 진중에서 사망한 탓이었다. 율리어스 카이사르가 정복한 광대한 영토수호를 위해 최전선에 고군분투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는 아들 콤모두스를 불러들여 황태자자질수업을 시키던 참이었다. 사실 콤모두스는 세상물정 모르는 유약하고 무능한 샌님일 뿐이었다.

콤모두스와 루실라

어머니 파우스티나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딸이고, 매형이자 양숙부는 루키우스 베루스였으며, 큰누나 루실라는 폼페이야누스 퀸티아누스와 재혼한 혈통과 정통성을 부여받은 황태자였다. 그런 아들이 장성하도록 철 없고 의지와 신념이 약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는 게르만족과 대치중인 전선으로 불러냈던 것이다.  아버지의 계획을 못마땅해 한 콤모두스는 아버지가 느닷없이 죽자마자 서둘러 평화조약을 맺고 로마로 귀국하여 황제에 즉위한다(180년3월).

콤모두스 역의 요하킨 피닉스

아버지가 최전선에 머물고 어머니 파우스티나가 병사하자 야망이 대단한 여장부로 미인이기도 했던 루실라는 황후대신 로마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근디 갑자기 아버지가 죽고 콤모두스가 즉위하자 황후자리를 그의 아내 크리스피나에게 빼앗겨 분에 전전긍긍한 루실라는 동생을 재거할 음모를 획책한다. 182년, 루실라는 두 번째 남편의 조카, 내연관계였던 애인들, 콤모두스의 장인, 여동생들, 안토니누스 일가, 친인척, 근위대장, 원로원 등을 포섭 황제시해음모를 한다.

루실라 역의 코니 넬슨

조카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가 단도를 숨긴 채 콤모두스가 콜로세움경기장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려 죽이기로 했다. 마침내 황제가 경기장에 들어서 가까이 오자 그는 황제한테 단도를 휘두르며 "원로원이 너에게 이 칼을 보내노라!"라고 외치자 호위병이 잽싸게 달라 들어 칼을 빼앗아 버린다. 참 어리버리한 자객이었다. 콤모두스는 상처 하나 입지 안했지만 엄청 큰 충격을 받았다. 콤모두스는 사건연루자들은 물론 못마땅했던 친족들과 군단장, 원로원과 관리들까지 법적절차도 안 밟고 죽여 버렸다.

루실라는 164년 삼촌 루키우스 베루스와 결혼했으나 남편은 게르만족과의 전쟁 후 로마로 귀환하다가 갑자기 죽는다. 그들은 3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딸 한 명만 살고 모두 요절했다. 하여 콤모두스와 결혼하여 명실상부한 황후자릴 꿰찰 참이었다. 로마에선 근친결혼이 허용되고 황실은 형제자매끼리 결혼해야 순수혈통을 지킨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야망이 좌절 된 루실라는 시칠리섬에 유배된 후 처형됐지만, 더 큰 문제는 콤모두스가 암살사건 후 정사를 내팽겨 치고 측근들에게 나라 일을 맡긴 거였다.

콤모두스와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아우렐리우스 시절까지의 문민 통치는 페렌니스 근위대장으로 시작되는 군인통치로 끝나고, 이때부터 콤모두스측근 군인통치로 전환 로마제국의 사양길로 들게 했던 것이다. 방탕생활에 맛들린 콤모두스가 정치를 외면한 채 조강지처인 황후 크리스피나를 간통죄란 누명을 씌워 카프리 섬에 유배보낸다. 글곤  자객을 보내 암살시킨 것도 애첩과 놀아나기 위한 패륜행위였다. 185년, 유능한 근위대장 페렌니스가 피살되고 뒤를 이은 클레안드로스는 제국을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었다.

클레안드로스는 프리지아출신의 해방노예로 황실 내에서 승진하여 근위대장에 올랐다. 그는 집정관, 호민관, 원로원 자리를 공공연히 매관매직을 했는데 어느 해엔 25명을 집정관직에 임명하기도 했다. 그가 그런식으로 권력을 전횡하며 거둬들인 막대한 부는 일정부분 콤모두스에게 뇌물로 상납하여 황제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었다. 술과 3백 명의 첩과의 방탕에 빠진 황제는 3백 명의 미소년들을 돈 주고사서 하렘을 즐겼단 기록도 있다. 노예출신 애첩 마르키아도 황제의 타락에 어어 둥둥 맞장구를 쳤을 뿐이다.

호랑이와 대적하는 막시무스 역의 러셀 크로우

서기 190년, 대화재 발생으로 엉망인 로마시내는 페스트전염병과 곡물부족까지 더해 시민들은 기근으로 술렁대고 유언비어가 횡횡했다. 클레안드로스가 모든 곡식을 매점매석하여 막대한 이윤을 남기려 한다는 내용의 유언비어가 드뎌 로마 시민들의 봉기를 야기케 했다. 대전차경기장에 모인 성난 군중들이 아피아 가도를 질러 6km 떨어진 퀸틸리 빌라에 머물고 있는 콤모두스에게 달려왔다. 클레안드로스의 처형을 요구했다. 성난 시민들에게 클리안드로스를 참수한 수급을 던져주자 장대에 매달아 든 군중들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부황 아우렐리우스흉상을 어루만지는 콤모두스

콤모두스는 로마로 돌아와서 환호하는 민중들의 환대를 받으며 봉기를 가라앉히려 애쓴다. 타락한 폭군 앞에 지방 관리들이 부패해도 감시하고 황제에게 진언해줄 충신은 없었다. 로마제국이 가장 번성했을 때 즉위한 콤모두스는 위대한 제국을 곪아 터져 무너지게 했다. 그것도 급전직하로 폐망의 수레바퀴에 올라태웠던 것이다. 역사는 네로, 칼리굴라, 엘라가발루스, 카라칼라황제를 묶어 무능한 폭군으로 묘사하지만 그중 젤 망난이는 단연 콤모두스다. 그래도 기독교도들 한텐 암암리에 인기가 있었다.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 역의 리차드 해리스

선황 아우렐리우스황제 땐 엄청 탄압을 받은 기독교가 콤모두스 시절엔 탄압 내지 박해받지 않아서였다. 그가 신앙의 자유를 베푼 게 아니라 음탕생활에 빠져 딴 일엔 방관 내지 무시한 탓이었다. 기독교도들은 살판이 나서 성군이라 칭찬했지 싶다. 로마제국 후기엔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들에게 혹평당하며 동상도 박살났으니 말이다. 콤모두스는 자신이 헤라클레스의 환생이라고 여겼다. 사자가죽옷의 헤라클레스복장을 입고 검을 휘두르며 직접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과 싸웠다. 그런 황제에게 관중은 열광하여 콤모두스는 검투사시합의 마력에 취한다.

콜로세움경기장에서 맞붙는 콤모두스와 막시무스

경기에선 승승장구하는데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검투사는 모두 노예들이었으니 황제와 대결하는 것만으로도 주눅 들었을 테다.

“1층 황제의 자리에서 투기장바닥으로 내려와 다가오는 가축들을 모두 베어버렸으며---(중략)---이어 호랑이, 하마, 코끼리도 제압을 했다. 그러고는 잠시 물러났다가 점심식사 후에는 검투사와 격투를 벌였다. 그의 격투 방법과 입은 갑옷은 '세쿠토레'의 것이였다”라고 디오 카시우스는 콤모두스의 검투사경기를 묘사했다.

헤라클레스를 흉낸 콤모두스흉상

주색과 과대망상에 빠진 콤모두스는 결국 첩 마르키아와 근위대장 라이투스의 사주를 받은 검투사 나르키수스에 의해 자신의 목욕탕 안에서 살해된다. 192년 12월 31일이었다. 나르키수스는 콤모두스의 검투사스파링 파트너였다. 황제부친의 후광으로 재위에 오른 콤모두스가 측근정치로 실정(失政)한 걸 보면서 우리의 전 대통령P가 생각났다. 측근정치로 국정을 파탄 내어 감옥살이 하는 무능한 자질 말이다.

루실라

무능한 자를 옹립하고 앵무새간신 짓으로 일신의 영달을 꿈꾼 측근정치인들이 얼굴들 수 없는 나라여야 한다. ‘대통령의 7시간’이란 의미심장한 말은 1800여 년 전에 콤모두스로 종언했어야 했다.         

"도미티아누스보다 더 야만적이고 네로보다 더 악랄했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한대로 그도 당하게 하라"                      2020. 01. 14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 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