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와 공유할 우주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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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과 친구 되어 풀잎 미끄럼을 타 볼까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야호 마음은 바쁘지만 느릿느릿 달팽이

어느새 비 그치고 해가 반짝

아직도 한 뼘을 못 갔구나”         <달팽이의 하루>에서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이맘때의 겨울은 올해 소망했던 것들이 미진했던 아쉬움 땜에라도 기분이 옴츠러들기 쉽다. 그래서 지인들과 한 잔 기우리는 망년모임자리가 많은지도 모른다. 그런 허허로움을 달래려 마련한 모임의 식탁엔 계절을 잊은 풋풋한 싱그러움이 푸짐해 울적함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사뭇 겨울철이 신선한 푸성귀들의 계절로 착각할 정도다. 특히 상치 같은 신선채소는 겨울채소가 됐다. 저녁식탁에서 쌈을 하려고 상치를 펴다가 은색줄무늬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 겨울에 겨울잠을 잊은 달팽이의 소풍길인가 싶어서였다. 달팽인 비오는 날이나 밤에 활동한다. 햇볕 없는 음지도 놈의 놀이터다. 달팽인 알몸 - 끈적끈적한 액체를 분비하며 맨살로 기는 게 활동이다. 골격 없는 맨살은 껍데기집을 등에 업고 수축을 반복하며 지난한 행군을 한다. 연체동물인 달팽인 나사모양의 석회질껍데기에서 머리,몸,발로 이뤄진 살덩일 내밀어 두 쌍의 더듬이로 먹일 찾고 풀잎이나 이끼 등을 먹는다. 놈의 굼뜬 행동은 천하태평으로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우리들에게 깨우친다. 그런 놈의 생태는 스피드와 패스트푸드생활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친환경식품과 느림속의 힐링이란 생활의 변화를 찾게 됐다.

우리가 먹는 푸성귀가 어쩌다 달팽일 발견 내지 놈이 기어간 흔적이나 뜯어 먹힌 잎이라면 무농약 친환경식품이라고 환영한다. 촉수로 살아가는 놈이 얼마나 예민하고 영리한 놈인지는 상상을 절한다. 내가 몇 년 전 상가주택에 살면서 3층마당에 세평쯤 된 화단 겸 텃밭을 만들어 20여년을 살았었다. 부엽토로 만든 텃밭엔 철철이 다른 채소를 심어 신선한 반찬을 끄니 때마다 제공했는데 상치는 거의 년 중 내내 가꿔 뜯어먹었다. 근디 봄상치를 파종하고 새싹이 움트는 5월 초순이었다. 새싹떡잎에서 새잎이 돋으면서 그 새잎이 날마다 뭉텅 잘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상치밭이 폐허가 될 지경이던 새벽3시경 잠에서 깬 나는 후래시를 들고 상치밭을 살폈다.

이럴 수가? 쬐그만 달팽이들이 상치 잎을 갉아먹느라 잔치를 벌이고 있잖은가! 한 놈씩 잡아 뭉개죽이면서 놈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하는 궁금증에 아침에 다시 상치 곁에 앉아 관찰을 했다. 밤에 학살당한 시체만 흙 범벅이 됐을 뿐 멀쩡했다. 부삽으로 상치 밭 흙을 뒤집자 껍데기에 숨은 달팽이가 하나 둘씩 정체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 놈들은 그렇게 은신생활을 하다 땅 속에 알을 낳아 후손을 이어가는 영민한 삶을 꾸리고 있었다. 느리기에 몇 뼘도 안 되는 공간을 우주로 만들어 지구탄생 때부터 지금까지 멸종되지 않고 종을 이어온 대단한 생존력에 감탄했었다. 흙이 있고, 그 흙이 오염되지 않으면 달팽이는 생명을 이어간다. 하여 달팽이가 건재한 땅의 식물 또한 청정할 테다.

오늘 날 달팽이는 무기질과 불포화지방이 풍부한 식용먹거리로 각광을 받아 농가의 소득원으로, 미래의 먹거리로 재탄생하고 있다. 아니 프랑스에선 ‘에스카르고(Escargot)’라는 달팽이 요리가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에 노화억제, 정력증강 등의 효과가 좋아 꼭 먹고 싶은 3대요리가 됐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울`부부는 상치쌈을 할 때마다 달팽이와 같이 할 우주(텃밭)가 없어 못내 아쉬움을 삭히곤 한다. 한 평의 텃밭, 커다란 화분에 채소를 가꾸는 재미는 그들의 우주를 공유하는 자아발견에 이르는 힐링로드라. 느림과 여유의 달팽이의 일생은 우리들의 삶에 반추되는 아주 영민한 동물이다. 놈들은 지금 나사형의 껍데기 속에 웅크린 채 겨울을 나느라 애쓰고 있을 테다.

2019. 12. 29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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