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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잔인한 4월에의 기도

잔인한 4월에의 기도

노오란 산수유가 흐물흐물 사그라질 때쯤엔 청순한 매화가 살포시 웃으며 그윽한 향을 뿜어낸다. 바야흐로 화창한 봄의 팡파레다. 매화향은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옛 선비들이 더더욱 사랑한 꽃이기도 하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심기를 일깨우는 화사함에 이어 얼핏 분방할 듯한 마음을 다잡아 평정심에 이르는 매화 향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었으랴.

난 매화꽃을 보면 어릴 적 텃밭에서 담장너머 고샅길로 쫓겨나듯 월담한 매화나무를 떠오른다.

선친께서 워낙 나무심기를 좋아하셔 우리 집의 텃밭은 온통 나무전시장 같았다. 감나무,밤나무를 비롯한 과실수와 목단, 작약 같은 꽃나무에 편백, 전나무까지 빼꼭히 식생하고 있었다. 상치나 부추 같은 푸성귀를 심어 반찬거릴 조달하고픈 어머니는 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많은 나무 중에 매화나무는 어머니에겐 천덕꾸러기 이상이었다. 밤나무와 감나무 사이 음지속의 매화나무는 언제 꽃이 피었던가 싶었고,  시디신 열매마저도 몇 개 안 열려 어머님의 눈 밖에 났었다.

가지는 넉살좋게 지 멋대로 잘도 뻗어 텃밭을 차지하는 통에 늘 전지(剪枝)당하여 월담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화의 깊은 은유를 모른 나 역시 어머니 편이라 텃밭은 탐하는 새싹은 모조리 뜯어버리곤 했다. 사실 관상용 매화나무가 매실주용으로 각광받아 번성한 건 근래다. 매실즙이 조미료의 대명사가 되고, 그리하여 생긴 매실농원은 섬진강변 구례`하동마을을 매화꽃관광지로 탈바꿈하기 이른다. 남녘 지리산자락 도랑밭뙈기의 매화꽃밭은 매파인 벌`나비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모여드는 유명관광지가 됨이라.

섬진강시인 김용택은 <봄 날>에서 읊는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가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근디 금년 봄 섬진강매화마을 풍정은 좀 다른 것 같다. 코로나19탓이다. 사회적 격리를 울부짖는 씁쓸한 세파 속에 매화꽃구경 차 멀리 경주에서 나들이한 세 분이 코로나19확진판정을 받았으니 말이다. 하여 금년 봄, 섬진강변 마을 텃밭에서 호미 놔두고 행불된 사내가 있걸랑 매화꽃밭에 있을 거다, 란 추측은 빗나간 상상일 것이다. 예쁜 여자 손목잡고 줄행랑 친 곳이 어딘지는 김용택 시인한테 묻기보단 호미 끝날 방향을 좇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윽한 매화꽃향기도 코로나19바이러스를 진정시키질 못한 3월이었다. 오늘 밤을 새워 날이 밝으면 4월이다.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회자한다. 매화꽃으로 움튼 봄날을 4월의 왕성한 생명력이 만화방창한데서다. 진홍의 4월 – 잔인한 4월의 생명력 앞에 코로나19도 더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잔인한 4월을 사랑한다. 귀빠진 날도, 결혼기념일이 있어서만도 아니다.

2020. 03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