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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한여름 밤의 사랑의 묘약

한여름 밤의 사랑의 묘약

지난 주말에 친족아들이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가 서너 살 위인 연상의 여인이었다. 요즘 남성들은 연상의 여인을 선호한단다. 결혼하면 아내의 큰아들 되기 십상이라 어쩜 그쪽이 마음 편할 것도 같다. 근데 왜 하필 여름이냐?고 물었다. 가을엔 식장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데다 여름 끝자락인데 설마 일 못 치루겠어요? 라고 한 마디 더 보태 웃었다.

오베론과 티타니아

이윽고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뒤이어 입장했다. 은은하고 힘찬 ‘결혼행진곡’에 흥분을 가누면서다. 그 결혼행진곡을 들으며 난 뜬금없이 셰익스피어를, 그의 희곡<한여름 밤의 꿈>을 떠 올렸다. 한여름 밤의 무대인 고대 아테네의 군주 테세우스는 아마존을 정복하고 절세미녀 히폴리테를 포로(?)로 대려와 프로포즈 한다.

“히폴리테여, 나는 그대를 나의 칼로 구애했소. 그대의 사랑을 상처를 입히면서 얻었소(Hyppolyta, I have wooed thee with my sword. And won thy love by doing the injuries).” 그렇게 청혼하여 결혼식 날짜를 잡은 테세우스가 한껏 꿈에 부풀어 있던 차 느닷없이 귀족 이지어스가 찾아와 골치 아픈 청원을 하는 게 아닌가. 이지어스에겐 허미아란 딸이 있는데 귀족청년 드미트리어스와 결혼할 수 있도록 주선(압력)을 해달라는 거였다.

'한여름 밤의 꿈'포스터

테세우스와 히포리테의 결혼식 사흘 전의 일이었다. 드미트리어스도 자기 딸을 좋아하고 있는데 정작 허미아는 딴 남자 라이샌더를 맘에 두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더구나 드미트리어스는 허미아의 절친인 헬레나가 짝사랑하는 남자였다. 헬레나는 금발머리에다 키도 쌀랑한 미녀지만 허미아는 검정머리에 단신으로 미모에선 다소 떨어진다.

헬레나와 드미트리어스

근데도 두 남자는 허미아를 좋아한다. 조건도 서로 엇비슷한데 허미아를 딱히 좋아할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아테네에서 군주의 명령은 곧 국법이었다. 이지어스는 테세우스 앞에서 딸을 겁박한다. 드미트리어스와 결혼하던지 아님 죽던지 양자택일 하라고. 그게 테세우스의 명령이고 국법이라고. 그런 허미아가 안쓰러웠던지 테세우스가 옵션 하나를 더 보탠다.

결혼도 죽음도 아니면 여사제로 평생을 독신녀로 살라고. 하지만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허미아는 라이샌더와 사랑의 도주를 계획한다. 라이샌더와 밤중에 숲에서 만나 야반도주키로 한 계획을 허미아는 절친 헬레나에게만 귀띔해 줬다. 근디 드미트리어스에게 어떻게 해서든 잘 보여 그를 붙잡으려는 헬레나는 허미아의 야반도주계획을 고자질 했다.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숲속을 질주하며 사랑의 도피처를 구한다. 얼마나 뛰었을까? 그들이 닿은 숲은 떠들썩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정의 왕 오베론과 여왕 타타니아가 테세우스와 히폴리테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오는 길에 쉬던 참이었다. 오베론왕에겐 ‘사랑의 묘약’이란 신비한 액체가 있었다. 오베론은 우연히 헬레나와 드미트리어스가 설왕설래 다투는 소릴 듣게 된다.

헬레나

왕은 짝사랑하는 헬레나가 측은해 부하보텀을 시켜 드미트리어스의 눈에 묘약을 뿌리라고 명했다. 근디 멍청한 보텀이 드미트리어스가 아닌 라이샌더 눈에 약을 뿌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실수를 깨달은 보텀은 곧장 드미트리어스의 눈에도 묘약을 뿌렸다. 한참 후 잠에서 깬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어스의 눈에 처음 보이는 건 헬레나였다. 묘약은 잠에서 깬 후 처음 보는 사람이나 동물을 환장하게 좋도록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었다.

테세우스와 히폴리테

두 남자는 갑자기 허미아가 아닌 헬레나에게 반해버린다. 난처한 입장에 처한 테세우스가 명을 내려 사랑의 교통정리를 한다. 드미트리어스와 헬레나, 허미아와 라이샌더가 커플이 되어 결혼을 하되 자기가 히폴리테와의 결혼식을 거행하는 날에 하라고. 그렇게 세 쌍의 합동결혼식이 거행된다. 장중하고 은은한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얘기다.

허미아와 라이샌더

멘델스존이 희곡<한여름 밤의 꿈>에 붙인 관현악곡 ‘결혼 행진곡’이 드넓은 장내를 맥놀이 시키자 하객들도 따나갈 듯한 박수갈채를 보태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사랑의 어깃장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한여름 밤의 꿈>엔 ‘사랑의 묘약’이 있어 가능했다. 그 ‘사랑의 묘약’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티타니아

어떤 수단방법을 강구해서든 트럼프와 정은이와 아베를 청와대숲에 초청해서 파티를 벌리자. 글고 그들한테 ‘사랑의 묘약’을 어떻게 해서든 눈가에 닿게 해 깜박 졸다가 눈을 뜨게 한다. 그때 재인이가 그들 앞에 첫 대면자로 보이면 만사오케이다. 트럼프와 정은이와 아베가 침을 질질 흘리며 재인이 한태 미쳐 졸졸 따라다닐 것이다.

재인이가 우리 편이어서가 아니라 됨됨이가 젤 무던하고 진정해서다. 내 보기에 트럼프는 돈만 챙기려드는 장사꾼이고, 아베는 음흉한 꼴통이며, 정은이는 아직은 천방지축이라 신뢰가 안 가서 재인이가 앞장 서야한다. 세 사람은 청중 앞 무대에 올라서 사랑의 합창-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열창하면 평온한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다.

티타니아와 보텀

여름 끝자락 국치일이기도 한 오늘 나는 ‘한여름 밤의 꿈’을 꿔 봤다. 사랑의 묘약이 아니더라도 세상살이 인간에겐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따라서 영원한 우방도 적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편협한 지도자들의 순간적인 허망이 역사에 오물을 끼얹을 뿐이다. 그 역사는 극히 순간적이다. 나는 우선 재인이를 사랑한다. 재인아 힘내라. 2019. 09. 28

드미트리어스와 헬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