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ㄹ비 내리는 날 포시즌에서

 

‘19년11월의 마지막 일욜 오전, 회색하늘은 하늬바람에 솜털빗발을 얹어 겨울전령을 보내왔다. 아파트를 휘두른 단풍나무들이 뒤늦게 불붙어 하늬바람을 타고 춤을 춰도 울`식구들은 느긋했다. 며칠 전에 싱가포르에서 출장차 온 큰애`닉이 꾸무럭대는 탓도 있었지만, 오후1시에 예약한 런치타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입가심으로 아침을 때우는 꼼수나기여서였다.

메타세콰이아 숲의 가을

정오를 반시간이나 지나 울`부부와 닉은 아파틀 나섰다. 자디잘게 토막 난 실비가 흩날리는 스산한 거리를 걷는다. 약속장소인 광화문사거리의 호텔 포 시즌스(Hotels Four Seasons)까진 한갓진 걸음으로도 반시간이면 족해 저무는 만추의 거리를 어슬렁대자고 했다. 하늬바람이 빌딩사이를 빠질 땐 노란은행잎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며 떠나는 만추푸닥거린가 싶었고.

포 시즌스 호텔(좌)과 광화문대로. 뒤로 인왕산과 북악산 -호텔측 제공사진-
식탁위의 화분, 마른꽃의 분에 생화 몇 송이를 얹었는데 쉽게 구별할 수 없었다

덩달아 사람들도 종종걸음 질이다. 호텔로비에 먼저 도착한 율`조커플과 조우하여 12층 일식집에 들어섰다. 포 시즌스 호텔에 몇 번 왔었지만 총괄셰프 아키라 백(Akira back)이 마련한 런치타임은 첨이다. 한옥과 서양식을 조화시킨 단아하고 깔끔한 룸에 안내를 받아 좌정하자 아키라백이 등장  인사를 하며 오늘의 메뉴소갤 했다.

참치피자 & 버섯피자

그는 미식가들에겐 회자되는 유명한 셰프며, ‘아키라 백 레스토랑’을 세계 곳곳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조가 부연소개를 한다.  그가 직접 요리하는 ‘아키라 백 점심메뉴’를 주문했다. 늘 새로운 아시안 요리를 개발 선보인다는 그는 포 시즌스 호텔의 자랑이란다. 코스요리는 식단에 따라 와인도 달라지는 데 와인선별은 조와 율의 몫이다. 아낸 어설픈 감별사(?)노릇을 하고~.

 

참치타코 & 한우타코

아키라 백의 음식은 먹거리라기보단 눈으로 즐기고, 느낌으로 미감을 상상하는 음식꽃이고 예술품이란 생각을 해보게 했다. 저 예쁜 걸, 저렇게나 정성들여 빚은 소중한 걸, 한 입에 넣어 사라지게 한다는 게 어쩜 미안할 일이란 생각도 하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셰프 아키라 백의 심정을 상상속에 더듬어봤다.

시금치,호박셀러드
한우스트림로인 & 참치묵은지롤

음식은 그걸 먹는사람의 즐거움보단 만드는 셰프의 기쁨이 더 클 테다. 혼신을 다 해 빚는 과정의 일심(一心)은 선정(禪定) 비슷할 테고, 그렇게 빚은 예술품 같은 음식이 누군가를 입맛을 돋궈 심신을 살찌우게 한다는 뿌듯함은, 셰프만이 누릴 수 있는 열락(悅樂)이 아닌가. 비단 유명셰프가 아니더라도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빚는 아내의 심정도 같을 반열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어 새삼 맘 여미게 했다.

닭고기 & 메로구이
모둠초밥

율`조커플이 이따금씩 마련하는 고급레스토랑에서의 식도락에 울`부부는 뿌듯한 행복감에 도취되곤 하는데, 오늘같이 먼 곳에 사는 닉이 합석하여 가족애를 공유하니 각별함은 말할 수 없다. 코스별로 요리와 동반하는 와인을 네 병을 땄을까. 어느듯 시간은 오후5시가 됐지만 4시간의 식도락도 짧게만 느껴졌다. 자릴 털고 일어섰다.

후식으로 나온 카푸치노커피. & 초콜릿크림

근디 애주가인 율`조커플이 1층커피숍에서 입가심을 하잔다. 커피숍 차창밖 신문로에 가~ㄹ실비가 흩뿌린다. 노란은행잎들이 실비를 타고 방황대다 낙엽이 되고, 불빛과 물빛이 홍건한 도로에서 애잔하게 몸부림치며 마지막 생을 마무리하나 싶다. 창가 원탁티테이블에 찻잔 아닌 와인그라스가 놓였다. 조`율커플이 한 병만 더 따잔다. 서비스와인으로 입술을 축이고 있었다.

사과하루마키 & 스텐드바

 느닺없이 조가 자릴 뜨더니 저만치가서 누군가와 악수를 한다. 덩달아 율도 뛰처나가 선 채로 한참을 속닥대다 그들을 울`부부에게 소개하는게 아닌가.  50대후반의 백`이커플은 율`조커플과 막역한 사이로 한때 백은 회사동료였단다. 그는 월급쟁이에서 창업하여 경영인이 되기까지 자수성공한 인재였다.  상당한 재력가가 되자 자신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 위해 사업에서 손 떼고 행복한 일상을 찾는 데 열심하고 있단다.

찰스 에치

가~ㄹ비 내리는 오늘 백`이커플은 막걸리와 빈대떡 생각에 외출, 한 잔 걸치고 커피생각에 포 시즌스를 찾아왔단다. 백`이커플은 부모따라 유럽에서 중등교육부터 시작한 유로파엘리트였다. 고교시절에 만나 결혼에 이른 커플은, 특히 부인의 지성과 조곤조곤한 언변은 나를 감동먹게 했다. 원탁에 일곱명이 빙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웠다. 그들고 율`조커플 못잖은 와인애호가였다.  

아키라 백

열심히, 바쁘게 살아온 그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 하나는 자기만의 시간을 찾아 유유자적하는 노년의 삶인가 보다.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온 삶에서 남은 건 밥 걱정 않게 됐다는 점 이외 허탈한 자조감이 들어 서글펐단다. 추적추적 실비 흩날리는 날 막걸리 한 잔  마신 커플이 빗속을 걷다가 특급호텔에서 커피타임이라! 자기애를 좇는 낭만파커플이 그리 근사해 보였다.

율`조커플과 백`이커플의 이십 년지기에 닉마져 M사에서 한때 같이 근무했으니 금새 우린 패밀리가 됐다. 또 자릴 옮겼다. 6시 반부터 오픈하는 분위기 좋은 찰스 에치(Charles H)숍이 호텔지하에 있다고 율`조커플이 울`부부를 꼬셔 예약을 해서다. 늙다리부모가 자식또래 틈에 끼어 늦도록 꼭 동행해야 할까로 울`부부는 설왕설래하다 두 손을 들어야 했다. 백`이커플이 넘 살갑기도 해서였다. 

아키라 백

와인애호가들은 줄곧 와인만 마신다. 율`조커플 못잖게 백`이커플도 와인마니아였다. 그 많은 종류의 와인을 음식과 분위기 따라 선택하고, 주문한 와인의 맛과 향이 좀 기대치가 아니다 싶으면 주저없이 교환을 요구하는 소믈리에경지까지 이르려면 얼마나 많이 실연했을까? 도대체 비싼 와인값이 아깝지 않을까? 술에 문외한인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낭비란 생각이 들고.    

6;30분이 되기 무섭게 지하로 내려 선 율과 존이 출입문이 없는 벽에 손을 대자 문이 스르르 열린다. 어둑한 조명불빛 속에 어름어름 식별되는 것들이 형태를 들어내자, 흡사 중세의 동굴왕국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종업원들이 바쁘게 서성댄다. 실내디자인과 집기와 조명기구들이 기이한 빈티지풍이다. 유럽 어느 숍을 옮긴 듯한 분위기다. 초저녁인데 우리 뒤를 이어 두 서너명씩 손님들이 줄곧 들어 선다. 

신문로 돈의문야경

올드 팝과 상송, 레게음악이 흐르는 흐릿한 조명 속의 손님들은 흡사 음흉한 밀담이라도 하는 성싶게 조용하다. 어두컴컴한 테이블에서 어느 젊은 외국인 커플이 간단한 식사를 하는 폼새가 멋있어 보인다. 술 대신 식살 하면서 반주인 듯 하는 애정표현이 밉질 않는 연인! 주윌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글면서도 예의 바른 매너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교패턴일까? 하는 생각이 아니 솔직히 부러웠다.   

밤8시, 찰스 에치를 나왔다. 얼마 남지 않은 단풍잎들이 밤바람에 몸살을 앓다 우수수 여행을 떠난다. 실비에 젖은 낙엽이 골목 후미진 곳을 찾느라 배회한다. 가~ㄹ비 내리는 휴일 우린 7시간을 포시즌에서 시간여행을 하다 성냥갑침실을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던간에 종내는 성냥갑쌓아놓은 시멘트블록의 침실 이외 갈곳이 없단 걸 복습해야만 한다.

그것이 행복이라고. 오늘도 무탈하게 밤을 맞았으니까. 참 단순하다. 삶이란 게~! 그렇게 죽는 날을 향해 하루도 걸르지 않고 매진한다. 죽음을 위해 사는 모양세다. 하긴 죽음복을 탄 삶이 가장 행복한 생애의 종언이란다. 잠 자다, 자는 듯 일어나질 않는 죽음이~.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2019. 11. 24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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