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폭의 그림

며칠 전에 나는 한국화로 열두 폭의 월력을 만든 멋진 선물을 받았다. 인보(仁甫)화백이 자신의 작품을 아담한 월력으로 만들어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전시회(‘20.1.1~1.7)를 개최키 앞서 선뵌 터라 기쁨이 말할 수 없다. 자못 내가 화백의 성심을 낼름 받아 챙길 자격이 있는지 자문하면서였다.

요즘이야 달력은 휴대폰과 각종 소형 전자기기에 기본적으로 장착돼 수요가 극감했지만 십여 년 전만해도 달력구하기에 혈안이 됐었다. 한정판의 특별한 달력은 돈 가지고도 살 수 없는 희소성으로 투기성달력도 등장 했었다.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그레고리오력은 농경산업시대에 ‘일할 때’를 알아채는 시간표역할을 한 문명의 혁신이었다.

하여 조선조 땐 한 해가 시작되는 동지 전에 관상감(觀象監)에서 만든 달력을 미리 배포했단다. 동지 전에 만든 달력은 왕에게 올려 인허를 받고 왕명으로 배포했는데, 오기(誤記)가 있으면 관상감원은 곤장으로 죽을 만치 맞았다. 달력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인보화백의 열두 폭 월력의 그림주제는 ‘그리움’과 ‘추억’그리고 ‘행복’이 주류다.

우리네의 삶이 행복을 추구하는 일상에서 각별했던 기억들은 오래도록 그리움으로 남고, 그것들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때론 행복의 순간에 들게 하는 탓일 테다. 인보님의 그런 그림이 나를 타임머신여행에 들어 아련한 추억 속으로 떠나 그리움을 되새김질 하게 했다. 그니까 반세기도 훨씬 지난 기억 가물가물한, 허나 결코 잊을 수 없는 풋풋한 학창시절의 어느 해 연말 초저녁 깨였다.

나는 일기장 한 권과 메모랜덤노트를 싸들고 산자락끄트머리 들녘의 동네 어느 집 싸리문에서 누군가 나오기만 기다리며 서성댔다. 얼굴도 잘 모르는 여학생에게 연말선물하기 위해 찾아 나선 길이었다. 한참 후 아주머니가 나오고, 나는 그 아주머니께 자취여학생면횔 부탁했다. 글고 또 한참 후 문제의 여학생을 싸리문밖에서 조우한다.

어설픈 나의 소개에 나를 알아봤을까 싶은 여학생은 당황한 듯 대뜸 화를 내며 집안으로 사라졌다. 난 또 싸리문밖에서 서성댔다. 엉뚱하리만큼 돌출한 나의 출현은 예상치 못한 면박을 받아 무안하고 착잡했지만 그냥 되돌아설 순 없었다. 얼마나한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나타난 여학생에게 사과하고 일기장과 메모랜덤을 던지다시피 안겨주곤 땅거미 짙게 깔린 들녘을 망연자실 걸었다.

나의 당돌한 행위가 잘못이긴 했지만 적어도 지난 3년간 나눈 사유의 정성치곤 허탈할 만큼 자조적 일수밖에 없었다. 그니까 우린 진학시험을 치루고 귀가길 버스에서 마주친 후 펜팔친구로 오매불망 그리던 재회였던 거였다. 그렇게 우린 뜸해졌고 세월은 각자의 편에서 흘러간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겨졌던 것이다. 사무치진 않더라도 연연한 그리움을 지니고 산다는 건 행복이다.

그때 여학생과의 펜팔교류가 나를 글쓰기와 독서에 눈뜨게해 어설프지만 작문이랍시고 오늘날 낙서를 하게 만든 은인이었다.  나보단 작문실력이 월등해서 내깐 열등감을 지우려 애썼던 결과였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그리움은 마음 한 구석에 반면교사로 웅크린 채 감정의 순화란 치유에너지를 가득 담고 있어서다.

인보화백의 달력을 한 장씩 넘기면서 그리움`추억이란 태마에 문득 까마득한 학창시절의 풋풋한 추억 하나를 떠올려 보게 됐다. 나도 근래에는 달력에 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수협에서 발행하는 숫자달력을 꼭 챙긴다. 바다물의 사리, 조금 등 물때를 표기해 어시장이나 바닷가나들이에 유용해서다.

인보님이 선물한 한국화첩달력은 내게 희귀한 소장품으로 오래오래 기억 될 것이다. 늘 건강한 모습으로 아름다운그림을 많이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길 기원한다.

2019. 11월 중순.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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