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LP판과 책가도(冊架圖)?

 

 

지난 주말(6.30) `식구들이 오크벨리에서 보낸 마지막 날밤 늦도록 와인파티(?)를 즐기고 있었는데 티브이에선 EBS주말명화극장<옛날 옛적 서부에서>란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술판얘기꽃을 피우느라 영화제목도 내용도 모른 우리들은 요란한 총성(銃聲)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헨리 폰다, 찰스 브론슨, 크라우디아 카르디나레 등의 명배우들이 설치는 통에 짬짬이 곁눈질하게 됐다.

 

'빛의 소나타'

 

서부개척시대 두 아들을 둔 중년의 홀아비는 철도가 놓이고 역이 들어설 땅주인으로 거부가 될 꿈에 부푼 사내다. 그가 오아이오에서 어느 여인과 결혼을 약속했고, 오늘 그 약혼녀가 오는 날이었는데 불한당들의 침입으로 가족이 몰살당하는 참극이 발생한다. 영문도 모른 채 약혼자의 집에 도착한 여인은 기막힌 불행과 더불어 막대한 유산상속, 그리고 원혼을 달랠 복수의 길에 들어서는 줄거리였지 싶었다.

오크벨리 필드

 

그 영화가 우리의 술판화제를 바꾼 건 엔니오 모리꼬네식의 서부영화음악이었다. 그니까 40 전쯤, 딸애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울`집엔 전축을 구입하여 영화음악을 비롯한 세미클래식LP판을 사서 짬만 나면 틀곤 했었다. 스테레오LP판은 볼륨을 높여야 신명이 났고, 뜻도 모르면서도 아름답고 다이내믹한 선율의 매력에 자꾸 듣다보니 클래식음악이 귀에 익히게 됐다.

 

 

사실 음악엔 벽창호인 내가 당시(1970년대)엔 귀한 고급전축과 LP판을 구입했던 건 세 딸한테 정서적인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또한 촌놈이었던 내가 중학입학전형 때 풍금과 피아노소릴 분간 못해 낙방한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런 슬픈 전철을 딸애들도 밟게 하고 싶질 안했다. 암튼 주말 짬만 나면 우리는 전축음악소리가 방천정을 들썩들썩댈 정도였고, 그럼 아낸 옆방 새댁네한테 폐 끼친다고 볼륨 줄이라고 안절부절 하곤 했다.

 

 

그때 접하기 시작한 음악이 지들한텐 얼마나 지적`감성적으로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고 실토하며 감사해하는 술자리가 됐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행진곡들과 성장하면서 무시로 듣는 짧은 백뮤직 대부분이 클래식음악의 한 소절이었단 걸 알게 됐단다. 그렇게 유년시절에 들은 음악이 감성에 얼마나한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순 없지만 참신한 숙녀로 성장 엘리트여성이 되는 자양분이었단 걸 인정한단다.

 

글면서 음악이 흐르는 가정의 소중함과 많은 책속에 파묻혀 보낸 학창시절이 진정으로 행복했다고 까르르대고 있었다. 딸만 셋인 울`부부는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를 들여놓고 피아노레슨을 받게 했다. 둘째와 셋째도 자연스럽게 건반을 익히게 했는데, 그 방면에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지만 전혀 무의미하지도 않았단 걸 절감한 밤이었다.

 

 

딸애들은 또 울`집의 서가얘기로 한참을 가슴 뭉클케 했다. 다분히 장식용이기도 했던 한국`세계문학을 비롯한 시리즈물로 책장을 채운 책들이 딸애들한텐 문학과 글쓰기에 상당한 밑거름이 됐다고 고백했다. 밤새워 그 두꺼운 문학책에 빠져들었던 소녀시절이 어른이 된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입시위주의 학교수업 못잖은 양식이었다고 떠들어댔다.

책가도

 

그 실 울`부부는 가난한 농촌태생이라 음악과 책은 접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었다. 학교 다니면서 느낀 그런 갈증과 아쉬움을 애들한테는 좀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서재-책가도(冊架圖)를 흉내 내려 했었다. 책가도는 조선조 정조임금이 문예중흥을 이룩하고자 독서를 권장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그림이었다.

 

정조때의 초기 책가도

 

정조는 어좌 뒤의 임금의 상징인 일월오봉도를 내려놓고 책가도를 걸었다. 책장에 여러 종류의 서책을 위주로 문방사우,골동품,화훼,기물등을 그린 그림이 책가도이다. 책가도는 임금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정조는 어좌에서 책가도를 가리키며 신료들에게 하문하곤 했다.

 

어찌 경들이 진짜 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책이 아니라 그림일 뿐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사대부들의 책가도 장식에 일침을 가한 정조는 책가도가 곧 학문이 아니란 걸 말함이었다. 책을 가까이 함으로써 학문에 심취하여 선비의 인격을 갖추라는 심려였다. 밥술이나 먹고 방귀께나 뀌며 양반인척 하는 사람까지 책가도를 설치하자 궁중화원(宮中畵員)들은 칼퇴근 하며 책가도 그려주기 바빴고, 그래 엄청 돈도 벌었었다.

오크벨리 리조트 원경

 

무식쟁이도 집안에 책가도를 걸어놓으면 유식하단 소릴 들을까? 하는 허욕의 자기위안이 낳은 풍습으로 변질됐다.

근래에 들어 우리네의 졸부들도 피장파장이랄 것이다. 집안에 서가를 꾸미고 장서판도서로 병풍 치듯 진열하여 학문에의 열등감에서 벗어 난양 거들먹거린 얄팍한 보상심리 말이다. 나의 책가도 흉내도 그런 기대심리가 다분했음도 사실이다.

 

 

근데 그 책들이 딸애들한테 학문의 양식이 됐다니 책가도의 의의를 일정 해낸 셈이다. 딸애들이 고맙고 뿌듯했다. 맹모삼천지교가 새삼 기억 됐다. 가정이 따뜻하고 학문적인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술판자리에서 애들과 공감하는 행복한 밤이었다.

딸애들이 울`부부의 어설프고 마음만 앞선 가정환경 가꾸기를 기대이상으로 받아들여 마음의 양식화했음에 흐뭇해한 시간이기도 했다.

 

식구들은 한 밥상머리에 자주 앉아야 식구다. 밥상을 같이 할 때 소통의 행복을 공유하게 된다.

영화<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엔딩자막이 뜨고 있을 때도 우린 와인잔을 부딪쳤다. 나도 이젠 제법 술꾼(?)이 됐다고 식구들이 비아냥인지, 격려인지 입을 모으며 웃고 있었다. 자릴 마련한 애들이 고마웠고 참 행복한 밤이었다.

2019. 07. 01

 

리조트 내 레스토랑'가림'에서 먹은 모밀막국수는 일미가 있었다.

점심메뉴로만 제공 된다는 국수는 숯불구이 횡성한우(100g쯤)를 곁들어 주는데

불에 탄 그으름 같은 향에 부드러운 살코기식감도 별미였다.

막구수1인분이 16천원은 결코 비싸단 생각이 안 들만큼~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린다는 뜻의 '함포고복(含腹鼓腹)'식당은

리조트단지 외곽에 있는 횡성한우스테이크전문이었다

돛대기시장처럼 만원이었는데 식감과 분위기가 별로였다

부위별스테이크를 즐기려는 끼 있는 손님들은 눈쌀 찌뿌릴 만했다

요즘의 고급식당은 배 두드릴만큼 실컷 먹기보단

오붓한 분위기와 담소를 즐기는 트랜드를 선호하는 게 아닐까?  

Posted by peppuppy(깡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