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이베이4박5일 - 국립고궁박물관과 통화야시장
"나라가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문물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장개석(장제스蔣介石)의 유명한 갈파는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1948년, 장개석은 베이징자금성에 있던 중국의 역사적인 유물 대부분을 타이완으로 옮겨와 국립고궁박물관(故宮博物院)을 짓고 진열전시 함으로써 넓은 의미의 중국박물관이라 할 것이다.
장개석이 모택동과의 국공내전 중에 가져온 보물들을 1965.11.12.일 타이베이박물관을 짓고 전시 개관했다. 당, 송, 원, 명, 청대의 서화, 동기, 자기, 칠기, 조각, 선본서적, 문헌등 예술적이고 역사`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은 수십만 보물들이다. 또한 중국어,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 7개국 언어로 안내를 한다.
타이완이 세계에 자랑하는 세계4대박물관인 것이다. 나는 혼자 짧은 시간을 내어 주마간산 식으로 훑었다. 아니 고고학까진 아니더라도 뭔 지식이 있어야 차근차근 관람하며 재미를 느낄 게 아닌가. ‘알아야 비로써 보인다’는 통설은 박물관에 들어설 때면 통감한다. 더구나 외국의 박물관에선 인구에 회자된 것 말고는 코끼리가 장님 핥기 더도 덜도 아니다. 암튼 그렇게 전시한 보물들의 다양함에 놀랐다.
난 어렸을 때 장개석을 존경했었다. 1927년 모택동의 공산군을 소탕하는 북벌로 통일중국을 세우나 싶었는데 1949년 공산당에 패배하고 쫓기다시피 타이완에서 임정을 세우고, 승자 모택동의 공산당은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두 개의 중국이 탄생한다. 천신만고 끝에 모택동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중국인민의 마음을 사로잡아서였다.
국민위에 군립하면서 민심을 등진 위정자의 독선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장개석이 또 한 번 입증한 셈이다. 이전의 타이완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여 서구문명을 일찍 접한 타이완은 민주주의 신봉자인 장개석정부의가 들어서며 장족의 발전을 한다.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은 문명선진국이 되어 우리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선지 타이베이는 일본색이 짙게 느껴진다. 특히 일제로고를 붙인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배알이 꼬여 현대`기아차를 발견하려 눈을 부릅떴지만 허사였다. 아쉬웠다. 근디 관광객들은 한국 사람이 많아보였다. 작금의 한일무역마찰이 빚은 일본행관광객의 타이완행 땜일 테지만 우리네 자동차 한 대도 안 사주는 타이베이시민들이 어째 곱지만은 안했다.
그렇더라도 타이베이시민들은 북경시민들보단 어딘가 한 수 더 해 보였다. 단정하고 친절하며 깨끗하고 특히 교통질서문화수준이 월등했다. 타이완에 오면 관광필수코스가 야시장이란다. 하긴 어느 나라 또는 도시에서 그곳 사람들의 삶의 일상을 엿보려면 재래시장을 찾는 게 정석이다. 통화야시장(Tunghua Night Market 通化夜市場)은 숙소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륭로(基隆路)를 도보로 어슬렁대며 반시간쯤 걸렸다.
휴일에 오후6시 개장 탓일까 시장입구는 인산인해 돛대기시장이라. 볶으고 지지고 삶는 음식요리냄새가 진동하는데 후끈 달아오른 지열에다가 땀에 절린 사람냄새까지 폐(肺)속을 후비니 진입하기 망설여졌다. 손바닥으로 코앞을 휘젓는다고 냄새가 달아날까? 아낸 연신 그 짓을 하면서 인파속을 헤집어 든다. 시장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둘째가 딤섬가게 앞 줄서기 꽁무니를 잇는다.
두 평쯤 될 가게에서 장정 넷이 만두를 빚어 삶고 지져내는 모습은 무아지경일 것 같았다. 커다란 가스불판의 열기쯤은 그들의 행선(行禪?)에 훈풍일까? 이마에 송골송골 맺은 땀은 의식 저 편의 부적인듯 싶다. 만두 한 개를 입안에 넣었는데 맛이 별로였다. 배부른 탓일 터다. 둘째와 아낸 괜찮다고, 값싼 편치곤 먹을만하다고 인파를 헤치며 두 개를 후딱 씹는다.
먹거리가 주류이긴 하지만 야시장은 만물시장이다. 없는 것 빼곤 일상에 필요한 있음직한 건 죄다 있는 성싶다. 게다가 값이 싸서 항상 북새통이란다. 어쨌거나 이 기이한 난장판은 도무지 끝이 안 보인다. 쫌 깨끗하다싶은 우면탕(牛麵蕩)가게가 보였던지 둘째가 돌진한다. 사실 우린 이걸 먹으려고 호텔뷔페도 외면하며 야시장에 왔었다.
검튀튀한 소고기국물에 탱글탱글한 우동국수는 먹을 만했지만 나는 고기 몇 점과 면발 몇 개만 건져먹었다. 집밥에 길들여진 나는 외식은 썩 내키지 않은 편인데 외식쟁이 둘짼 다양한 식성이라 웬만한 건 잘 소화시킨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모질지를 안 해 상대가 좋고 편한 데로 자기를 적응시키는 처세의 달인(?)같다. 다시 난장판에 끼어들었다.
어떤 음식점 앞은 역겨운 냄새가 진동 숨쉬기를 멈춘다. 얼마 안 남은 죽는 연습이다. 으리비까 막 개업한 듯한 빙수가게로 둘째가 들어선다. 망고빙수를 맛봐야 된다나? 실로 얼마 만에 맛보는 얼음꽃과일이냐? 빙수제조과정을 살짝 엿봉께로 과일색소와 향이 밴 얼음덩일 갈아서 그릇에 담아 주문한 레시피를 얹혀주는 빙수는 내가 학창시절에 먹었던 그 시원 달콤한 옛 맛은 아니었다.
분명 더 맛있어야 함인데 실망했다. 세월은 입맛도 변하게 할 테다. 분명한 건 오늘의 빙수가 더 고급품일 것이다. 야시장이 북새통에 엉망진창인듯 보이는 건 우리 같은 구경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몇 푼어치 푼돈 터는 원초적인 삶의 현장이어서다. 그렇게 달뜬 난장은 향수를 자극하는 과거로의 회귀본능을 일깨운다.
진열된 상품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의 모습, 문득 몬도가네 영화가 떠올랐다. 행복은 어디에서나 자기가 챙겨야하는 보물찾기 같은 걸 거다. 난장판시장 속에도 널려있는 게 행복일 테고, 사람들은 그걸 붙들어 파안대소 한다. 북새통속에서 나를 잊고 깜박했던 나를 되찾는 순간은 행선(行禪)같은 희열일 것이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나를 찾는 여정이다. 2019.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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