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타이베이4박5일 – 타임머신비행속 반세기 전의 추석귀향
추석 전인 11일 오후4시KAL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 타이베이석양을 이고 그랜드하얏트호텔2235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둘째의 배려에 옳다구나 호응하여 명절을 외국에서 맞이하기 두 번째다. 부모님차례 상을 올리지 못해 찝집 했지만 가납해 주시리라 자위하며 아내와 눈 맞췄었다.
그러곤 닷새간을 잘도 놀고 15일 오후6시반에 타이베이를 출발 귀국비행에 올랐다. 5성급호텔 스위트룸에서 아쉬운 것 하나도 없는 풍요와 호사스런 날들을 보냈으니 어쩜 이 글을 쓴다는 자체마저 만용이란 생각이 든다. 타이베이에서 하늘로 치솟자마자 사위는 어둠에 함몰된다.
기내식(비빕밥을 주문했었다)을 먹고 영화<돈> 한 편을 보면 서울에 도착하겠거니 싶었는데, 영화는 건성으로 보는 활동사진일 뿐이고 정신은 옛날로의 타임머신여행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3학년 때였지 싶다. 추석 이틀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추석전날은 진종일 작달비가 내렸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고향(영광 불갑)에 가서 부모님 품에 안겨 추석을 쇠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안달하고 있었다. 비 퍼붓다 하늘이 가라앉아도 부모님한테 가야만 했다. 당시는 추석날 하루만 쉬는 때라 추석 전날은 오전수업만 했었다.
책가방을 하숙방에 던져놓고 우중 속에 광주여객차부(버스터미널)로 달렸다. 광주~영광간의 버스는 하루 몇 번뿐이라 두 시간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영광에 도착하면 다시 목포행버스를 타고 불갑으로 가야하는데 목포행버스막차를 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길 아닌 딴 길이 있긴 했다.
영광읍종점 전에 삼학간이정류장에서 내려 하천과 야산 하나를 넘는 산길 십 리를 걸어야 하는데 빗속길이 영판 내키질 안했다. 삼학고갯길은 평상시에도 인적이 뜸해 어른혼자 넘는 것도 망설이는 외진길인데다 하천은 물이 불어 건널 수 있을지 의아했다. 차부에서 버스시간표를 짜깁기해보며 궁리란 궁리를 다 해봤다.
광주에서-나주-학다리-영광행 버스를 갈아타면 훨씬 멀고 차비도 더 들지만 두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단 다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주행버스가 출발하자 망설일 것 없이 얼른 올라탔다. 비는 미친년 오줌보 터진 듯 쏟아지고, 흙탕물이 고랑을 넘어 들판을 휩쓴다. 어떤 땐 차장도 비에 두들겨 맞아 뿌옇게 됐다.
모새가 홍해를 가르듯 길가 웅덩이 물살을 가르기 한 시간여 만에 나주에 도착, 엎어지면 코 닿을 학다리까지 한 시간을 걸어서 갔다. 비 맞은 촌닭 된지 한참이나 됐다. 학다리에서 한 시간쯤 기다려 영광행버스를 탈수 있었다. 빗물에 쫄딱 헹군 촌닭신세로 또 한 시간여를 덜덜 떨다가 불갑소재지에 내렸다. 빗발은 좀 가늘어지고 있었다.
허나 흙탕길은 내가 몹시 아끼던 하얀 운동화를 황톳물로 짓뭉개 달뜬 기분을 잡쳤다. 그 속상함도 잠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어머니~’하고 부를 땐 멀쩡했다. 마루에 계시던 아버님이 토방으로 내려오시며 ‘어이, 대화 오네’ 라고 소리치자 부엌에서 어머님이 허겁지겁 달려 나오시던 정황이 선연하다.
내 생전 처음의 지난한 고행 길이었으며, 부모님께선 얼마나 애태운 기다림이셨던가! 그 많은 누나들 다 출가시키고 쉰 살 문턱에서 얻은 아들놈이 추석 쇠러 와야 할 텐데, 장대비는 진종일 퍼붓고 있으니 추석빔 하는 부모님심정과 손길이 온전했겠는가? 어머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흠뻑 젖은 나를 보듬고 놓아주질 안했다.
자식이 뭔가? 명절이 뭔 날이던가? 객지에 사는 자식이 부모님을 찾을 때 자식노릇 하는 거고, 그렇기 위해 명절은 있어야만 하는 길일(吉日)이 아닌가! 어머님은 가마솥에서 금방 쩌 낸 김 모락모락 피는 송편을 들고 와 막 옷 갈아입은 내 입에 하나를 물려줬다. “점심은 어쩧케 먹고 왔냐?”면서.
아니다 “배고픙게 우선 떡 하나 먹어봐라, 밥상 차려 올께”라고 숨 돌릴 참도 없이 서두르고 계셨다. 피붙이란 살 비벼대며 체온 확인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가족이고 그 울안이 가정이다. 부모님께 자식은 분신이고 곁에서 숨 쉬기를 공감해야 안심한 채 생존연장의 의지를 확신하며 시간을 불태운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란 걸 나는 나이 들어 장년쯤 해서 알아챘다. 이미 부모님은 살아계시지 않을 때였다. 부모님애간장만 태운 아들 아니었던가 하는 애석한 후회를 하며 그리움이 사무치는 추석을 맞곤 한다. 흠씬 젖은 빗물 뚝뚝 떨구며 대문을 들어서며 ‘어머니~’하고 불렀던 추석전날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오능가 못 오능가?’애간장 태우며 대문 여는 소리만 여쉈다는 부모님의 모습이 칠흑비행기 창에 어른댄다. 해외여행 핑계로 부모님 전에 차례도 안 올린 자식이 됐다. 저승에서 조감하고 계실까? 내가 죽어 어름어름 찾아가면 ‘대화 오냐?’하고 다시 한 번 불러 보듬어 주셨으면 하고 소망해 본다.
죽어 부모님 찾아뵐 땐 비 오지 않는 날 단정하게 차려입고 어머님 품에 안기고 싶다. 그래야 어머님 마음이 덜 짠하실 터다. 벌써 비행기가 인천상공에 들었는지 공항착륙안내방송을 한다. 부모님생전에 효도 한 번 못했지만 큰 고생 않고 건강하게 노년에 이름은 부모님께서 주신 축복과 기도일 테다.
10월엔 영광고향산소에 찾아가 늦은 인사라도 드리리라. 벌초도 안 해서 잡풀이 봉두난발 됐을 텐데 고정하셨는지요. 그나저나 저희부부도 노년에 이르고, 애들은 멀다는 핑계로 성묫길 잊으면 어찌해야 할는지 난감합니다. 천상천하 불효자식입니다. 즐거운 여행길 지켜봐 주심 감사드립니다. 201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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