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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에서 이틀간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에서

봉평상시 간이장터

울`식구들이 주말1박2일 여행지를 평창`봉평으로 택한 건 오리엔트리조트의 숙박할인권이 있어서였다. 게다가 봉평오지의 자연 속에서의 먹거리와 메밀꽃축제를 즐기자는 속셈이 주효했다. 토욜`아침(28일), 1주일 전에 잠시 귀국한 막내가 운전대를 잡고 울 다섯 식구는 평창을 향했다. 화창한 가을 날씨가 짙푸른 녹음을 꾸역꾸역 차창으로 밀어 넣어주어도 싱그럽기만 하다. 대관령IC를 통과할 때까지 고속도로도 별 체증 없이 시원하게 뚫려 좋았다.

오리엔트리조트, 외양과는 달리 실내시설은 실망할 정도였다. 다만 침구는 깨끗한 편?

대관령 의야지바람마을골짝을 드라이브하곤 대관령축협한우마을 다ㄹ식당에 들어섰다. 순전히 웹상에서 뒤진 맛집 찾아 나선 행차였는데 등심스테이크는 확실히(?) 맛깔스러웠다. 그실 남해안을 휩쓰는 태풍만 아니었으면 이 시각 울`식구들은 부산에 있을 텐데 태풍이 스테이크의 진 맛을 선사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였다. 메밀막국수의 시원하고 오똘오똘한 식감도 별미였다. 우린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되짚어 평창을 향한다.

등심스테이크는 두툼하고 육즙이 풍부해 맛깔스럽고 부드러운식감이 먼 길을 달려올 만했다

웹상에서의 맛집 찾아 왕복 한 시간여를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게 나는 미친 짓거리(?)같아 마땅찮기도 했다. 허나 40대의딸애들한테 잔소리하기 뭣해 입 꾹 닫았다.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패턴이 낭비적으로 보일 때가 많아 나는 입맛을 다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젊은이들 삶이 더 멋있고(?), 더는 별 탈 없이 잘 살아가고 있어 내가 쪼잔한 건가? 자문하기도 한다. 막내가 글피(월요)면 떠난다.

휘닉스파크 스키장곤돌라 & 골프코스 원경↑↓
골프필더와 스키곤돌라

은이의 피부트러블치료차 귀국했지만 병원에서 치료할 것 없이 자연치료 된다는 피부과의사의 진단으로 끝났다. 과민한 탓에 1주일간 실 컨 놀아난 해프닝여정이 된 셈이다. 지나친 자식사랑이 낳은 낭비의 단면이라. 오후4시쯤 오리엔트리조트에 체크인 하자마자 휘닉스파크산책에 나섰다. 스키시즌이 아닌 휘닉스파크는 한산했다. 몇 년 전 눈 쌓인 겨울에 우리가족모두 여기서 2박3일을 즐긴 추억얘기를 하다 싱가포르 첫째의 섬뜩했던 불상사를 떠올렸다.

골프장 입구

그해 관세사수험을 보러 귀국한 첫째도 동행한 마지막 날 아침, 돌출한 참상에 안절부절 했던 트라우마를 되새김질 했다. 승합차문짝 틈에 첫째의 오른손검지가 끼어 으스러진 부상으로 휘닉스의료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서울로 내달렸던 황망한 아픔의 시간은 평생 우리가족의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됐다. 그렇게 깁스한 손으로 한 달간 수험공부 하여 합격한 관세사자격증은 아픈 추억 속에 간직한 채 문갑 속에 잠 자고 있다.

휘닉스파크

첫째얘길 하며 우린 석양의 휘닉스파크를 산책했다. 눈 펄펄 쏟아지는 그해 겨울날 리조트베란다에서 온가족이 삼겹살구이파티를 즐기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언제 다시 한 번 눈발 휘날리는 겨울에 울`식구 모두 모여 삼겹살파티를 하자고 입을 모았다. 식구란 밥상머릴 같이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가족애와 역사는 밥상머리에서 꽃피운다. 그땐 식구전체를 담은 가족사진을 찍자고도 약속했다.

휘니스파크의 아침은 짙은 안개에 뒤덮여 새벽트레킹을 포기하여야 해 아쉬웠다. 곱창전골로 이른 아침을 때우고 봉평을 향했다.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는 지금도 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였을까? 하지만 아직 9월인데 기대치와는 달리 산촌의 메밀밭은 파시의 눅눅한 잔상만 남아있었다. 울`식구들이 하얗게 펼쳐진 메밀꽃을 못 봐 아쉽듯이 허생원도 늘 봉평장에선 큰 재미를 못보곤 했었다. <메밀꽃 필 무렵>은 주인공 허생원이 봉평장 파시 장봇짐을 싸면서부터 시작된다.

아침을 곱창전골로 때웠는데 모두 다 맛있다고~ 나만 별로였던가?

<<여름장이란 애시당초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사람들은 거의 반 돌아간 뒤요,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치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낚아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일 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아야 될걸?”                                                                                                         “달이 뜨렸다?” ----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장날저녁은 정해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장터에 있는 현대막국수집의 메밀막구수는 별미였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____충줏집 말야.”                                                                                           계집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소설<메밀꽃 필 무렵>의 서두에서.

허생원은 장돌뱅이로 장이 서는 곳마다 찾아다니는 떠돌이 장돌뱅이인데 봉평장날 전후엔 주막집 충주댁에서 묶곤 했다.

허생원이 봉평장날에 묶는 충주집터, 주모=성서방네처녀=동이엄마라면 허생원한텐~!

오늘도 충줏집에 짐을 푼 그는 우연히 젊은 장돌뱅이 동이가 충주댁과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배알이 꼴려 동이를 면박주면서 손찌검까지 했다. 근디 밤이 으쓱해지고 동이가 느닷없이 달려와 자기의 당나귀가 사람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걸 알려주자 녀석을 향한 심술과 화딱지가 풀리는 거였다. 아니 허생원은 녀석과 밤길 칠십 리를 동행하여 대화 장을 향하고 있다.

허생원이 성서방네처녀와 첨이자 끝판이였던 단 한번의 러브신을 엉겹결에 치룬 움막이 이쯤 됐을까? 마을 뒤 후미진 곳의 폐가를 나는 한 바퀴 돌았다. 동이가 아들이라면 이 움막에서 허생원이 씨 심었지 싶었고?

글면서 하얀 보름달이 하얀 메밀꽃밭에 부서지는 눈부신 봉평의 달밤을 걸으며 젊었을 적의 잊을 수 없는 로맨스 한 토막을 꺼내 피식대며 이야길 하는 거였다. 메밀꽃이 흐뜨러지게 핀 어느 달밝은 밤, 허생원은 쉬가 마려워 꽃밭움막에 볼일을 보려고 들어서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니다, 놀란 것은 성서방네처녀가 더했다. 근디 처녀는 뭣 땜시 여기 있었는지? 놀란 그녀는 얼른 자리를 피하지도 않았다.

메밀꽃 핀 들판(펌 사진), 이미 파시가 됐었다

이상할 일 이었다. 방뇨생각도 없어진 허생원은 어쭙잖게 말문을 텄다. 야밤에 단 둘이, 그것도 낯선 처녀에게 말을 튼다는 게 난생 첨이라 얼떨떨한 채다. 서로 말이 트니 마음도 트고, 그러다보니 몸도 튼 채 어찌하다가 그만 보듬고 굴렀다. 그 하룻밤의 인연, 단 한 번의 사랑은 허생원이 평생 소중히 품은 연심이며, 생의 활력소이고 내일을 향한 용기가 됐다. 얽둑배기 허생원에게 첨이자 마지막이었던 정사는 목숨 같은 추억이라.

홍정계곡의 산비탈밭뙈기의 옥수수도 파시였다

이윽고 동이도 어릴 적부터의 간난의 외로운 성장기 - 아버지를 모르는 홀어머니슬하의 이야기를 하면서 달빛에 서러움을 삭힌다. 녀석의 얘기에 뭉클한 허생원이 개울을 건너다 발이 삐끗 넘어져 발목이 다쳤다. 동이가 허생원을 등에 업어 개울을 건넌다. 순간 허생원은 녀석이 자신처럼 왼손잡이란 걸 직감한다. 홀어머니는 지금 봉평에 살고계신다고 했겄다. 그럼 아까 충주집주모가 녀석의 엄마일까? 허생원의 상상의 나래는 어쩌면 녀석이 자기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는 거였다.

허생원이 숫총각딱지 땐 애길 하다 자빠져 발목 삔 개천

동녘이 트는가?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동편하늘부터 밝아온다. 우린 효석문화마을을 기웃거렸다. 태기산능선의 풍력발전기가 가을햇살에 느려터진 채 눈부시다. 도는 듯 멈춘 듯한 풍력바람개비는 봉평의 볼거리가 됐다. 홍정계곡을 드라이브하기로 했다. 흥정산(1276.5m)골짝깊이가 끝도 갓도 없이 이어지고, 멋진 펜션들이 릴레이 하듯 골짝에서 바통을 잇는다. 여름철 말고 이 오지를 찾는 관광객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여유족들의 별장일 듯 싶다. 아까 마을 밭에서도 목도했지만 산비탈 밭뙈기에 버려진 양배추포기가 아깝다. 값 폭락으로 인건비도 못 건질 판이어서일 테다.

먹을 만한 양배추가 파시밭뛔기에 방치 되 있었다. 아내 말론 금년 양배추값이 넘 싸서 하등품은 수확포기한 것 같다고 했다. 그냥 한 포기 들고와도 괜찮지 싶었는데~

옥수수 말곤 달리 수확할 농산물이 없을 산골짝 엉덩이만한 밭뙈기에서 말이다. 그래 우린 두서너 포기 사려고(값쌀 것 같아) 밭일 하는 아낙한테 물었으나 마이동풍이라. 귀머거리 아님 농아일까 싶어 큰소리에 손짓까지 하자 도망치듯 윗배미 밭으로 달아났다. 허생원이 옆에 있으면 말문 트고 몸짓 트는 법을 배울 텐데~? 아마 갓 입국한 외국인여자였지 싶었다. 이 깊고 좁은 산골짝에 집들이 꼬릴 무는 건 물 맑고 피톤치드내음 물씬한 청정지역이 유토피아 같아서일 테다.

골프장 뒤로 스키슬럼프

게다가 평창은 사람살기 젤 좋은 해발700m지대여서 홍정골짝은 융숭한 살터가 됐을까? 다 돈 있는 사람들의 외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남녘지방은 태풍으로 심난한데 평창은 오지게 좋은 가을날이다. 오후 늦게 영동고속도로에 올라탔다. 귀경차량들은 달리다 기다를 태기산풍력발전기흉내를 내는 성 싶었다. 승용차홍수 속에서 ‘무슨 볼 일이 있어 죄다 나왔을까?’라고 아내가 푸념을 하자 ‘그런 당신은 뭔 볼일이 있었간디?’라고 난 응수했다.

홍정계곡길, 허브나라에서 철봉이 가로막는다

길은 미지를 향하는 시작이고, 길 위엔 누군가를 만나는 장소이며, 길은 소통이란 위대한 위업을 해가는 삶터이다. 인생은 길 걷기에서 시작하여 길 위에서 묻히게 된다. 운명은 때때로 어느 길을 택해 걷느냐에 따라 삶의 궤적이 달라지기도 한다. 메밀꽃의 봉평을 찾아 식탐과 가족애를 즐긴 1박2일은 뿌듯한 일정이었다.                       2019. 09. 29

오징어+삼겹살=오삼겹구이가 봉평의 별미라나? 난 매워서~~~
리조트 뒤에서 조망한 휘닉스파크
스키곤도라
휘닉스호텔로비↑↓
대관령다래식당의 등심구이는 먹을 만했다↕
한우등심구이
흥정계곡, 좁은 골짝에 집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섰다
동이, 허생원, 조선달의 장똘배기 행차
홍정골 어느 사과농장에서 맛뵈기 맛보다 미안해서 ~ 엄청 비쌌다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서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