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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에너미 엣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

에너미 엣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 속 독일군이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를 짓밟던 1942년, 바실리 자이체프(주드 로)소련육군병사는 수많은 젊은 신병들과 함께 화물기차에 실려 독일군의 집중공세를 당하고 있는 스탈린그라드로 보내진다. 기차에서 내려진 곳은 전장지옥 - 어딘지도, 아니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신병들과 함께 기총소사와 폭격이 쏟아지는 아수라장속으로 떠밀려 볼가강 건너 편 전선으로 내몰린다. 글곤 맨몸에 모신나강소총과 탄환5발 이 든 클립만 들고 적진을 향해 우라돌격 하는 자살전장에 뛰어든다.

볼가강도강, 상륙하기도 전에 거의 사살된다

독일군의 기관총세례 총알받이가 되다가 후퇴하면 아군이 다시 전진하라고 기총소사를 해댄다. 범죄자들을 전투에 투입시켜 총알받이 되는 게 형벌부대전장이다. 형벌부대란 총을 배당받지 못한 자가 탄환클립만 받아 들고 소총을 든 자를  따르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총을 주워들고 싸우는 부대다. 전쟁은 그렇게 무지막지하다. 그 처참함이 믿어지질 않지만 사실이다. 6.25전란 때 중공군도 그랬지 싶다. 암튼 볼가강은 시체더미 강이 됐다. 다급한 소련은 범죄자가 아닌 바실리 같은 정규군도 총알받이로 뒤엉켜 내 몰았다.

레닌그라드 시가전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 분수대주위의 시신들 틈에 숨어 살아남은 바실리, 선전 전단을 뿌리다 독일군의 공격에 분수대에 숨어있던 정치장교 다닐로프(조지프 파인스)대위가 조우한다. 사지의 바실리는 다닐로프의 소총을 빌려 저쪽 폐허건물 속의 독일군을 저격하는데 그 장면들이 잊혀질 것 같지 않다. 멀리서 포탄 떨어지는 쾅, 쾅 소리에 맞춰 방아쇠를 당겨 총소리를 숨기는 바실리의 사격술과 명중률은 귀신도 놀랄 정도다. 옆에서, 등 뒤에서 동료가 총 맞아 쓰러지는데도 눈치 채질 못하는 독일군인~.

독익공군의 초토화 공습

독일군에 초토화되는 스탈린그라드의 새로운 책임자로 온 니키타 흐루쇼프(밥 호킨스)에게 다닐로프는, 패배감에 젖은 소련군에 바실리를 영웅으로 만들어 사기진작과 승전희망을 일깨우자는 계획을 제안한다. 이윽고 바실리 자이체프는 저격병으로 활약하여 독일군들을 사살하고, 다닐로프는 그의 활약상을 찬양하는 글을 써서 매체에 올려 소련 국민들을 고무하며 소련인민의 영웅으로 만들어낸다. 그렇게 이질적이었던 두 사람은 점점 신뢰하고 우정을 쌓아 가는데~.

시민과 부상자의 레닌그라드 탈출

깜직한 소년 사샤의 집에 저녁식사초대를 받아 찾아간 바실리는 미녀 타냐(레이첼 와이즈)를 만난다.  스탈린그라드행 기차에서 잠깐 보고 호감을 느꼈던 그녀는 모스크바대학 독일문학도로 자원한 여군이었는데 여기서 재회한 거다. 글고 다닐로프도 바실리를 찾아왔다가 타냐를 만나 반해 연정을 느껴 미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우정과 사랑의 삼각관계는 하루하루를 기적같이 살아가는 암흑 속에 또 하나의 심리전이 되고~!

다일로프(좌)와 바실리(우)

또 하나 숨죽이며 지켜보는 러브 씬 – 병사들이 바짝 붙어 잠든 군 막사에 타냐가 들어와 바실리를 찾아 비집고들어 곁에 눕는다. 첫 포옹은 격렬하다. 옷 입은 채 서로의 아랫도리 거기만 풀어헤치고 엉킨 남녀는 끝날 때까지 얼굴표정만 보인다. 그 표정과 신음소리로, 신음소릴 죽이려는 모션으로 남녀가 지금 뭘 어찌하는 중인지를 빤히 읽힌다. 내일이 없는 전장 속의 성년의 열정을 고스란히 공감케 하는 아름다운 베드신은 두고두고 잊히질 않을 테다.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연인>과 <장미의 이름으로>의 베드신에 이은 아름다운 사랑행위를 다시 봐 신선했다.

바실리와 타냐의 숨소리마져 죽여야 하는 러브씬

한편, 소련의 영웅이 된 저격병 바실리를 재거하러 독일은 저격학교장 쾨니히(에드 해리스)육군소령이 나선다. 쾨니히소령의 귀신같은 저격술에 소련저격수들이 죽어나가고, 바실리도 두려움을 느끼는데~. 두 프로저격수 사이에 사샤가 끼어들어 양측의 첩보원노릇을 한다. 의심과 신뢰와 배신과 분노에 마음조이는 바실리, 쾨히니, 다닐로프, 타냐, 그리고 어린 사샤의 운명과 불확실한 최후는 시시각각 다가온다.

저격의 달인 쾨니히소령

구두닦이 러시아 소년 '사샤'를 친절하게 대하다 푸락치정보를 얻는 쾨니히소령은 사샤를 이해해 주면서 역정보에 경고까지 한다. 해도 사샤를 철도역의 급수탑 기둥에 목매달아 높이 걸어놔야만 한 건 전쟁 탓으로 치부해야 하는 비통함이었다. 전사한 아들의 훈장을 부적처럼 늘 지니고 저격에 나서는 쾨니히 소령의 독일장교차림과 시니컬하고 침착한 카리스마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소련인민의 승리를 담은 실화영화지만 정작 소련으로부턴 외면당했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참혹한 비극이었다.

스탈린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사무실에서의 흐루쇼프와 다일로프

도입부의 총알받이 형벌부대와 결코 소련군의 항전을 미화하지도 않음 탓일 것이다. 어쨌던 어느편에 치우치지도 않은 참혹한 전쟁영화의 실상을 리얼하게 담은 <에너미 엣 더 게이트>는 전쟁영화의 전범이다. 뒤늦게나마 봐서 행복했다. 영화는 군비확장을 부르짖는 보수꼴통들에게 전쟁의 참혹상, 인류의 재앙을 각성시키고 있다. 작금의 미국,일본,북한,중국,러시아와의 미묘한 숙제를, 아니 국가 간의 난제도 외교로 돌파구를 찾아야한다 걸 <에너미 엣 더 게이트>는 시사하고 있지 싶었다.             2019. 09

# 영화는 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Craig)의 픽션소설 'Enemy at the Gates: The Battle for Stalingrad'을 원작으로 삼았는데, 크레이그는 자이체프 바실리의 회고록을 토대로 픽션을 썼다.

독일장교의 전형 쾨히니소령, 카리스마가 넘쳤다
전혀 이질적인 두 사람은 신뢰와 갈등 속에서도 기꺼이 희생하는데~
러브신은 오래오래 기억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