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과 기생의 기로에서 - 영화<기생충>

 

 

오늘 개봉한 봉준호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영화장르의 틀을 깨며 상상의 허를 찌르는 위트가 번뜩이는 수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겨우겨우 입술에 풀칠 하며 하루를 사는, 그야말로 뾰쪽한 대책 없이 반지하방에 얽혀 사는 백수다.

 

 

네 명의 백수가 가족이란 끄나풀에 몸뚱이 비벼대며 옹색하게 살아가는데 어느 날 기우(장남; 최우식)의 명문대생 친구가 유학 가며 연결해 준 박 사장(이선균)네 딸 다혜의 과외선생이 되면서 인생역전으로 내닫는다. 기똥찬 기우의 발상의 전환으로 박사장네 가정의 기생충으로 인생이 업그레이드되는 기택네식구들의 좌충우돌이 빚는 풍자와 반전은 저절로 풋풋푸우 웃게 한다.

 

하지만 그 웃김은 예측불허의 상황전개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조바심까지 나게 하다 지옥보다 더 징그럽고 처참한 막장으로 향한다. 지구상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기생충과 공생하지 않는 종은 없다. 우리들 몸 안에 기생충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다.

 

우리의 몸을 숙주로 삼아 기생충은 기생하며 건강의 바란스를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에 사람은 기생충과 공생하는 일생인 것이다. 단 기생충이 기생충으로서의 본분만 지키면 말이다. 최상류층(박사장네)에 빌붙어 기생하는 기생충(기택네)의 일생은 그냥 기생충일 때 행복했다.

 

 

기생충이 기생충이길 망각하고 과욕을 부릴 때, 더는 기생충이길 거부할 때 기생충은 삶의 터를 잃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에 기생충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하여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한다.

 

 

덤덤하다 피식 웃고, 히죽히죽 웃기다 심드렁해지고, 심드렁하다 카타르시스에 잠시 달떠 쾌재의 기지개를 펼치려는 순간, 나락으로 곤두박질하는 비극의 허무속으로 영화<기생충>은 숨 가쁘게 관객을 끌고 간다. 망연자실한 기생충의 공생이 과연 가능해질 수가 있을까?

 

 

영화<기생충>의 풍자와 페이소스는 봉준호감독이 공생과 기생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아주 맛깔 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만하다고, 영화에 문외한이 나도 박수를 쳤다. 지상에서 사는 사람, 반지하에서 글고 그 아래 지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공존하는 게 사회다,

그 계층의 벽은 불행하게도 상존한다. 아니 '불행이란 숙주'를 탈피하려는 강박관념의 기생충을 봉감독은 보여주고 싶었지 싶었다.  

잘 났던 못 났던 우린 서로에게 기대고 더불어 공생하는 기생충이란 걸 가끔은 인정해야 되는 게 아닐까?

2019. 05. 30

 

 

'소주한잔'

매일 하얗게 불태우네
없는 근육이 다 타도록
쓸고 밀고 닦고
다시 움켜쥐네
이젠 딱딱한 내 손바닥
아, 아, 아...

차가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마른하늘에 비구름
조금씩 밀려와


<기생충>의 OST'소주한잔'은 엔딩크레디트로 삽입 흐른다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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