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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쾌변(快便)을 위한 뒷간이야기

쾌변(快便)을 위한 뒷간이야기

며칠 전 치악산 구룡계곡의 세렴폭포를 갈 때 간이쉼터 숲속에 생뚱맞은 표지판이 있었다. 뒷간(측간,변소)자리였다. 허물어진 돌담 가운데 용변을 했을 구덩이가 있는 듯 만 듯 했는데 근세기까지 이 깊은 산골에서 사람이 살았단 흔적일 터이다. 깊은 골짝에 살면서 굳이 뒷간을 만든 건 최소한 여러 사람이 살았음을 말한다.

치악산구룡골짝의 옛 뒷간

용변을 모아 발효시켜 거름으로 사용하고 또한 숲속사방에 내깔겨 불쾌해질 환경도 생각했지 싶은 거였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뭔가를 먹어야하고 먹기 위해 움직여야 하며 먹으면 싸야한다. 그 배설의 쾌감 뒤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문명과 직결되었다. 갈수기라 세렴폭포는 시늉뿐이고 소()는 산님들의 족욕터가 됐었다.

성벽에 돌출된 형태의 유럽 중세 화장실. 아래쪽이 뚫려있어 배설물이 밑의 해자에  떨어지면 흐르는 물길에 떠내려갔다 

문득 세계에서 젤 높다는 엔젤폭포(높이979m)생각이 났다. 남미안데스산맥 최북단 아유양테프에서 떨어지는 엔젤폭포는 기아나고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겐 엘도라도(신성시되는 곳)이다. 오지 속의 오지인 엔젤폭포관광은 당일치기를 할 수 없어 와라오족원주민의 포터가 동반하는데 포터들은 반드시 플라스틱 통(요강)을 하나씩 준비해 간다.

남성용 이동식변기(상)와 여성용 변기(하)

관광객이 쌀 대소변을 받기위해서다. 엘도라도에 똥오줌을 싸게 할 순 없잖은가. 포터(가이드)는 국가의 허가증을 받은 최상의 직업인이다. 신성한 폭포와 아래 강을 깨끗히 보전할 의무가 있어 강바닥의 사금덩이도 절대 손대지 않는다. 관광객이 욕심을 내면 들키지만 말라고 당부한다. 포터의 사활이 달린 탓이다. (https://pepuppy.tistory.com/7). 자연에의 동화된 행복추구 삶일 것이다. 반면 호사의 극치를 이룬 베르사유궁전의 뒤뜰은 악취가 진동했다.

 내 어린시절의 뒷간(측간)은 큰항아리를 땅에 묻고 그 위에 걸친 널빤지에서 볼 일을 봤다. 악취가 심했지만 더 고약한 건 밑닦이 휴지가 귀했단 점이었다  

방귀께나 뀌는 손님들이 초대받아 궁전연회나 파티에 참석할 땐 변기를 든 시종을 동반했지만 변기는 작고 싸는 건 많다보니 시종들은 오물을 궁밖 정원에 내다버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용변이 급한 신사나 숙녀는 궁내 후미진 기둥 옆에서 실례하기도 했다니 화려함 뒤의 추악한 작태는 꼴 볼견이었을 테다. 하긴 우아한 페티코트파티복을 입은 여인은 잠시 쉬고 있는지, 배설을 하는지 모를 만했다.

똥통과 오줌통

와라오족의 자연친화적 똥오줌처리 삶이 훨씬 문명인답다 할 것이다. 베르사유궁전 주위가 얼마나 지저분했으면 굽 높은 신발(하이힐)과 향수가 필요했을까? 똥오줌 밟지 않으려 하이힐을 신고, 악취를 상쇄하려고 향수를 개발하여 뿌리면서 정원출입을 금지하는 간판(Etiquette;에티켓)을 세웠다니 골치 썩힌 정황을 상상할 만하다. 우리가 예의규범을 말할 때 쓰는 에티켓의 어원도 실은 똥오줌-화장실에서 기인함이다.

 

 우리나라 고대 화장실 유적 중 처음으로 화장실 건물과 석조 변기, 오물 배수시설이 함께 발견됐다

화장실은 BC4000년 인더스문명의 발상지인 파키스탄의 모헨조다로변소에서 흔적을 발견한다. 돌이나 벽돌을 양쪽에 쌓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놓고 올라 앉아 싼 똥오줌이 밑의 웅덩이에 쌓인 게 화장실이었다. 그런 똥통웅덩이에 배수로와 하수시설을 통해 흘려보낸 게 최초의 정화시설로 19세기 말이었다.

오강과 똥받이

화장실을 말하는 toilet(영어)이나 toillettes(프랑스어)가 천 조각을 뜻하는 트왈(toile)’에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엔젤폭포에서 와라오족포터들이 용변통을 갖고 동반했던 것처럼, 서양에서도 용변용 양동이와 망토를 들고 다니는 똥통업자들이 있었다. 손님이 모자달린 망토를 뒤집어쓰고 양동이에 앉아 용변을 보게해주고 돈 받는 직업이다.

황실수세식변기

똥오줌이 마려우면 그들(이동식변소)을 찾아가면 되는데 19세기 후반까지 망토 화장실이 있었단다. 화장실이 따로 없던 중세 유럽의 런던이나 파리 같은 대도시에선 요강에다 싼 똥오줌을 다음날 아침 창밖으로 던졌다. 하이힐이 유행할 수 밖에~. 주택가골목길에 움푹 페인 골은 오물을 모아치우기 위한 거였다.

이동식오줌통

영국의 뒷골목은 물론 템스강도 시민들이 쏟아내는 오물로 악취가 진동했다. 템스강변에 있는 웨스트민스터(영국 의회의사당)는 악취를 제거하려고 커튼에 라임향을 섞은 소독약을 늘 뿌려야했다. 수세식변소는 영국의 도시공학자인 조지프 바잘게트가 고안한 최초의 변소로 19세기 말이였다.

루이13세의 이동식변좌, 베르사유궁전에 뒷간 다운 뒷간이 없었다는 걸 증명한다. 손님들도 시종이 변기통을 휴대해야 했다

10여 년 전에 내가 중국을 경유 백두산을 갈 때 장백산기슭의 간이쉼터의 화장실도 고대 파키스탄 모헨조다로뒷간과 비슷했다. 언덕의 뒷간은 얽어세운 막대기에 비닐천을 휘두른 게 전부였다. 비닐천막 안에 돌을 쌓고 걸쳐놓은 널빤지에서 똥오줌을 싸면 배설물은 비닐 깐 언덕을 대굴대굴  굴러 아래 흐르는 물에 휩쓸려가는 천연 수세식변소였다. 떨어져 굴러가는 배변덩이를 보면서 배설의 쾌감을 만끽했던 백두산행 뒷간추억이 야릇한 그림으로 남는다.

황실의 자개변기

오늘날 도성 안 대부분의 집이 더럽고 지저분하다. 수레가 없어서 오물을 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 서울에서는 매일 같이 뜰이나 거리에 오줌을 버려 우물물이 전부 짜다. 냇가의 축대 주변에는 인분이 덕지덕지 말라붙어서 큰 장마가 아니면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실학자 박제가는 조선 후기 한양(서울)의 화장실 사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지게에 진 똥통과 바닥의 오줌통, 발효된 오물을 밭에 내다 비료로 뿌렸다

궁궐에도 화장실이 따로 없는데 궁궐 전문 처리업자들이 모아놓은 분뇨를 매일 수거 밭에 비료로 뿌리며 돈을 벌었다. 인분을 내다 뿌릴 똥장사가 모자라고, 밭도 부족해 골목은 인분으로 악취가 진동했다. 생각하면 참 심난한 정황이었다.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분뇨를 수거해 도성 외곽의 밭에 뿌려주는 똥장사가 부자된 것도 아니었다. 연암 박지원의 단편<예덕선생전>에 나오는 얘기다.

신라 태자가 거주한 경주 동궁에서 발굴된 8세기 중엽의 수세식 화장실 유적

독립보다 화장실이 더 급하다고 말한 간디의 외침은 오늘날 인도에도 절실하단다. 화장실문화는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의미한다. 치악산골짝 트레킹코스에도 몇km 간격으로 깔끔한 화장실이 있다. 아니 우리나라 어딘들 개방된 깨끗한 화장실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내가 다녀본 세계어디보단 우리의 화장실은 선진국이다.

백제의 여성용 이동식 변기

작년 중국여행 중에 고북수진을 가면서 10여년 전의 장백산화장실얘길 했더니 가이드가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내게 생색내듯 자랑한 화장실이 겨우 우리네의 공중화장실수준이어서 고소를 금치못했었다. 먹는 즐거움 못지않게 배설의 쾌감은 더 짜릿하다. 그 카타르시슴을 즐기는 장소가 깨끗해야 함은 당연한, 문질문명의 첨단이어야 함이다. 화장실은 우리들 삶터의 얼굴이다.

2019. 07. 17

루이13세의 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