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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 지기(知己)M과 떠난 여정(旅情) - 선운사도솔암(禪雲寺兜率庵)

* 지기(知己)M과 떠난 여정(旅情) - 선운사도솔암(禪雲寺兜率庵)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움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도솔암마애불의 암벽과 소나무

 

노래<선운사>를 송창식씨가 불렀던가. 선운사는 언제 어느 때에 가도 심정(心情)을 착 가라앉게 한다. 검푸른 이파리사이로 조신하게 내민 빨간 홑동백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글고는 샛노란 꽃술을 미어터지도록 안고 있다 제풀에 겨워 송이채 떨구는 절박(?)함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거였다.

 

마애불머리 위에 비개를 박은 구멍이 보인다

 

동백은 결코 벌`나비를 유혹하지 않는다. 누군가 딱 하나만 사랑하고 절명한다. 내 누이가 그랬듯 홑동백은 동박새만 기다리다 홀연히 목숨을 버린다. 그 애잔함이 짙은 꽃향기이고 아름다운 지조로 가슴 뭉클케 한다.

 

도솔천과  극락교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햇살 뉘엿뉘엿 산란하던 날 말이예요

도솔천에 떨어지는 푸른 햇살을 봤나요

살랑대는 봄바람에 춤추는 물그림자 말이예요

마음이 심난 하거든 그대야

선운사 도솔천숲길로 와요

 

도솔천 오솔길

 

그렇다, 내게 선운사는 동백꽃과 꽃무릇과 도솔천과 마애불로 꽉 채워있다. 동백꽃도 겹동백이 아닌 토종 홑동백이라. 미련 없는 냥 홀연히 떨구는 그의 절정이 나를 사로잡는 거였다. 글고 기다릴 줄을 아는, 기다리며 온 몸을 소진해 피우는 빨간 꽃무릇을 사랑한다.

 

도솔천

 

동백이 지고 뜨건 여름과 함께 잎이 사그라질 무렵 피우는 상사화 - 그들의 순수가 좋고 그 순정이 무뎌진 내 마음을 다 잡아줘서다. 동백숲에서 그들과 해후하곤 도솔천을, 물길 따라 조붓하게 굽이치는 산책로를 걷다보면 무능도원에 든 기분이 된다.

 

도솔천데칼코마니

 

연푸른 신록이 물씬 밴 5월 어느 날 도솔천오솔길을 걷는 건 어느 새에 홀가분해지는 치유의 길이다. 첩첩 울울한 신록사이로 뉘엿뉘엿 흩날리는 햇살과 이따금 이파리를 애무하는 봄바람에 춤추는 초목들은 당신의 애인이 된다.

 

 

그 애인이 도솔천에 몸 담구고 흐느적거리기라도 하면 자연이 선사하는 데칼코마니의 신비경에 망아가 된다.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편편하지도 않는 도솔천오솔길을 십리쯤 껴안는 열락은 선운사의 선물인 것이다.

 

 

M과 나는 선운사의 선물에 모처럼 치유의 기쁨을 향유하는 거였다. 글다가 갑자기 웅성대는 사람소리-거대한 절애(絶崖)가 앞을 가로막고 사람들의 시선과 맘을 빼앗는다. 도솔암마애불(兜率庵磨崖佛)상이 쌍갈래 소나무를 시종처럼 거느리고 압도하고 있어서다.

 

장사송

 

풍진에 부서진 마애불상머리 위 암벽에 사각구멍이 몇 개 있고 그 구멍에 박힌 나무토막이 부러져있다. 검단선사가 백제위덕왕의 청탁을 받고 암벽에 마애불을 새긴 후 공중누각을 지은 비개란다(577년). 누각도 백성들 배따시게 하려 함이라.

 

 

나는 그 비개와 또 다른 구멍-마애불배꼽부위의 돌출구멍을 뚫어져라 봤다. 마애불배꼽의 비사(秘史)를 읽은 적이 있어서다. 비개는 마애불을 보호하기 위한 공중누각[동불암東佛庵이라 했다]의 받침대흔적이고, 배꼽구멍은 비기(秘記)를 숨겨 둔 금단의 성역이었다.

 

 

그 금단의 비기가 빛을 보는 날엔 새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과 함께 비기엔 벼락이 있어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근디 1892년 전라감사이석구가 배짱 좋게 배꼽구멍을 열고 비기를 꺼내려는 찰나 벼락 치는 통에 후딱 구멍을 닫았다.

 

 

글자 그 해 8월에 동학도 손화중이 동학도들을 대리고 구멍속의 비기를 꺼낸다. 단박에 위인이 된 손화중의 수하에 소문을 들은 동학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그는 고창에서 동학포교활동 하게 된다. 동학을 이교로 배척한 조정에선 대대적인 체포령이 내려져 강경중,고영숙,오지영을 투옥 주모자로 사형시켰다.

 

 

뿔따구가 난 동학교도들이 무장관아를 에워싸고 시위를 벌리자 수령이 도망가고 죄수들이 탈옥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민중봉기로 이어져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손화중의 비기탈취사건은 부패 무능한 조정에 대한 불만과 새 세상에 대한 민초들의 막연한 열망에 불쏘시게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무능과 혼란한 시대적 상황이 비기에 담긴 새로운 기원을 민심이란 축으로 읽혔다 할 것이다. 하산길에 M과 나눈 비기얘기를 간추려봤다. 검단(鈐丹)선사는 선운사를 창건한 선승이었다. 그는 선운사창건이란 역사(役事)로 백성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나중엔 소금 굽는 법을 전수시켜 생계를 해결하게 했었다. 검단선사는 백성들을 위한 불사와 자비를 행한 생불(生佛)이었다.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송창식의 절창이 아련하다.

 

내원궁

 

도솔암마애불의 비기가

백성을 위한 사랑의 부적이란 걸

당신이 알고

위정자들이 알면

이리 제 멋대로 까불진 않을 거예요

선운사도솔암마애불 앞에 가신 적이 있나요

우리 모두 마애불상 앞에서 묵념할 차례다.

2019. 05. 24

 

용문굴입구

마애불두상 위에 비개가 보인다

할머니들께선 아랫마을 검단리에서 오셨는지 모른다. 모싯님송편 하나를 주며 '맛있응게 먹어봐'란다. 검단선사의 보시를 면면이 이어오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