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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 그 알갱이

겨울눈물

겨울눈물

 

 

 

눈부시게 하얀 설국에

시답잖은 오류들 죄다 모아 언

골짝의 빙하가 녹아

한 방울씩 떨어지는 아픈 겨울

시리도록 하얗게 사랑한 겨울눈물이

긴긴밤 깊은 잠에 든

매화를 깨워

하얀 눈물꽃잎에 연지 살짝 바르고

노란수술 밀어낸다

내 그토록 사랑한 겨울눈물이

 

 

오랜만에 아내와 관악산연주암을 찾아 나섰다.

과천향교에서 자하동천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갈수기라서 바위들이 늦겨울 짧은 겨울햇살에

 희멀건 맨살 일광욕하는 퍼포먼스가 가관이다.

앙상한 나목들이 우거진 깊숙한 음지엔 하얀잔설이 

계곡웅덩인 바위마냥 언 얼음이 녹아 떨어지는

한 방울의 얼음물이 햇빛에 영롱하다.

 

 

연주암을 오르는 산님들이 꼬리에 꼬 물고 늘어졌다.

산님들의 성마른 봄바람에 자하동계곡은  

얼음 반 물 반 질척댄다.

 연주암을 향한 가파른 돌계단이 성깔이 돋아

미끌미끌하다.

겨울은 그렇게 잔인하게 짓밟힌다.

내 사랑하는 겨울눈물이 산님들 때물이 된다. 

 


의상조사가 관악산의 수려함에 반해 산정에

의상대(義湘臺)를 창건했다(677년). 

근디 세종의 형인 효령과 충령대군은 동생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유랑길에 들었다 관악사를 찾아와 수행한다.

효령은 궁궐이 빤히 보이는 이곳에 40칸건물을 창건하고, 충령은 연주대에 올라 시를 읊으며

세종을 연모하는 연주대란 글씰 바위에 새겼다.

연주암에는 효령대군의 영정을 모신 효령각이 있다.


 

 

연주암토방엔 누굴 연모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가?

겨우내 움추렸던 그리움이 하 사무쳐

연주암에라도 올라야만 했을까?

연주암은 그리움이 농축된 해원의 산정일까?

아껴뒀던 겨울눈물이 한 방울씩 지시락물이 돼

산님들 발뿌리에 떨어진다.

처마에서 토방까지 떨어지는

겨울눈물의 시간이 그리움이다.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하며 조선을 개국하지만

계비 신덕왕후 오빠(강득용)의 마음은

고려를 연연하고 있었다.

오빠는 남을진, 서견, 조견 등 동료들과 의상대에 올라

개성을 향해 울분통흡하며

쓰러진 고려왕조를 연모했다.

그들의 불사이조(不思二朝)가 의상대에 서렸다.

연주암은 고려인-한국인의 연모의 농축점이다.

 

 

희끗희끗 숨은 잔설능선 너머로

청계산이 그리움처럼 가물거린다.

그리움은 생명이다.

사무치게 그리워야 새로움에 다가설 수가 있어서다.

목마른 자하동천바위 틈에 그리움이 싹텄다.

이름 모를 탐스런 새싹은

겨울눈물을 머금은 듯 하얀연둣빛이다.

2019. 3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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