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 & 원형선회
오늘이 동집(冬至)니다.
팥죽을 쒀 먹는 풍속은 액운을 털고 잡귀를 물리쳐 새해엔 건강하고 밝은 행운의 날들이 이어지길 갈구하는 마음에서 일 것입니다.
잊고 털어버리고 싶은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였겠습니까.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은 위암선고를 받고 수술에 이어 항암·방사선치료를 하느라 반년이란 세월을 고군분투했던 날들을 잊고 싶지만 결코 망각의 피안에 묻을 순 없는 저입니다.
거기에 나를 우울하고 짜증나게 했던 사회의 부조리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건 좀 신경 썼으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인데 잘못 뽑은 지도자들 땜에 덤터기를 씀이니 내 스스로 화가 나는 게지요.
일전도 불사한다는 대북강경책만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주전론지(主戰論者)들의 악발에 불안에 떨어야하는 우리민초들, 결식아동급식비와 영아예방접종 비용은 빼면서도 영부인예산(삭제키로 여야합의하고도)이나 형님예산을 추가한 예산날치기파동에 폭력을 휘둘러 피투성일 만든 이성희의원에게 말레시아 순방 중이던 대통령은 격려전화를 하는 울화통도 못 들은척 잊고 싶지요.
국가에 낼 추징금 1672억원을 안 내고 거드름 피우고 있는 전두환씨, 그의 아들(재만)의 술장사를 돕겠다고수입포도주를 수의계약 하여 G20정상만찬장과 재무장관만찬장에 깐 일도 공정사회로 가는 길과는 엉뚱하지요. 그 이익금이 전두환씨의 미납추징금으로 대납시켰다면 쬠은 분통터지지 않지요.
어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그 뿐인가요. 짐짓 망각할 수만 있다면 편하겠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잊질 못하니 그 또한 불행입니다.
모든 걸 금세 잊어버리는 동물과 곤충들이 부럽습니다.
‘원형선회(Circular Mill)현상’이란 게 있다지요.
미국 과학자 윌리엄 비브는 1921년 남미 기아나정글에서 병정개미의 떼죽음을 목격합니다. 선두개미의 페르몬을 따라 개미들의 행렬은 이어지고 그 길은 무려 400m의 원형을 이뤄 한 바퀴 도는 데 두 시간 반이나 소요 됐으며, 그렇게 이틀 동안 빙빙 돌다가 지쳐 죽고 마는 ‘죽음의 행진’을 원형선회라 한다지요.
선두의 잘못된 길 선택이 무리 전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현상을 생각하며 작금의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행태를 대비케 됩니다.
독선과 강경일변도로 치닫는 선두를 누구하나 브레이크 걸지 않고 따라가는 강경보수세력이 행여 원형선회의 덫에 걸려 자진하면 나라의 한 축이 무너지니 그 또한 불행이어서 말입니다.
걱정됩니다. 오죽해야 네티즌들이 금년도 사자성어로 ‘명박상득(明薄相得; 명이 짧을수록 서로에게 득이 된다 )’이란 트위터에 오른 글을 뽑았을까요.
망년회를 몇 번 한다 해도 결코 잊을 수가 없어 심난함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테지요.
죽음의 행진을 멈추지 않는 망각의 개미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잊고 싶은 일들을 망각하지 못하고 새로운 뭔가를 발현해 우리 삶에 이바지 한다면 결코 불행하다고만 할 순 없겠지요.
2010. 12. 22
'느낌~ 그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 냄새 (0) | 2011.01.15 |
---|---|
에나벨 청 & 갱뱅 (1) | 2011.01.09 |
가을 엽신 (0) | 2010.11.17 |
나를 무섭고 슬퍼지게 하는 단체 (0) | 2010.11.10 |
흔들의자 (0) | 2010.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