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푼수가족가장의 독백

 

 

지방중소도시에서 사는 절친C한테서 열한시경에 전화가 왔다. G병원에 왔다가 궁금해 전화 넣어봤단다. 병원에 온지 삼일 짼데 오후에 퇴원한다고 했다. 어디 아파서 입원했느냐? 고 물어도 그냥 별것도 아니었는데 혹시나 싶어 서울까지 와봤는데 역시나 였다는 거였다.

글면서 나더러 시간 있느냐? 고 물었다.

알다시피 백수 아니냐. 근데 왜?” 라고 난 물었다.

아니, 그냥 얼굴 한 번 보고 싶단 생각이 나더라. 그래 얼떨결에 전활 했는데 꼭 만나야할 일은 없어야. 너만 괜찮으면 차 한 잔 마셔도 좋고~”라며 뭔가 여운을 남기는 거였다.

 

한 삼십분 정도면 병원에 갈수 있어야. 근디 퇴원한다며? 내려가야 할 게 아니냐?”

좀 늦게 내려가면 어떠냐. 말난 김에 니가 병원으로 올래?” 그렇게 해서 우린 뜬금없는 해후를 하게 된 거였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C는 이미 퇴원수속을 다 밟은 터였다. 우리는 인근 경양식집을 찾아들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내가 물었다.

어디가 아팠는데?”

“10월말부터 목에 이상이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후두염 같다고 약 처방을 해줘 복용했어야, 근디 나아진 것 같질 않더라고. 그래 딴 병원엘 갔더니 후두염은 아니고 목에 혹 같은 게 있으니 약물치료보단 큰 병원엘 찾아가 진찰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걱정이 좀 되어 보름 전에 여기를 찾아와 예약을 하고 그제 입원했지 뭐냐. 레이져수술로 반시간 걸리는 간단한 거라 어제 오후 늦게 하고 오늘 퇴원하는 거야.

 

잘 돼 다행이다. 아주머니랑 잘 계시냐?”

, 글고 널 보자 한 건 너한테라도 내속 까 보이면 진정될까 싶어서다. 여차하면 너한테 속엣말 잘 했었지 않냐? 요새 내가 속 좁아서 그런지 불면증 걸렸어야

뭔 일인데?”

서울에 사는 막내딸 있냐. 그게 버릇 없어가지고 내 오장육보를 난도질 했어야. 긍께 보름 전 주말에 다니러 왔더라. 마누라랑 셋이서 얘길 하다가 잠버릇얘기가 나오고, 그래 내가 막내더러 너도 이제부턴 늦잠 자는 버릇 고치라고 충고를 했더니 대뜸 대꾸한다는 소리가,

 

"밥 먹기 싫어서 안 일어나는데 그게 잘못이오,"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타일렀지.

, 칠십대노친이 아침밥지어 차려놓고 먹는데 눈뜨고 누워서 딩굴방굴대는 게 잘했단 말이냐? 네 나이도 사십중반 아니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두 달을 그러면 쓰겠어? 그 버릇 안고치려면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라고 단언했단다. 지 딸애 방학이면 쪼르륵 친정으로 달려와서 쉰다는 핑계로 한두 달 뭉개는 게 연례행사가 된 걸 너도 알지?

별반 하는 일 없응께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지 애미 밥 짖는 일 도와서 같이 상 차려 식사하면 오죽 좋겠다 싶어 꺼낸 말인데 못마땅하게 여기며 말꼬리 다는 게 빈정 사나웠단다. 근데 또 건방지게 따지드란다.

 

 

 

밥도 안 먹는데 일어나 덤벙대면 복잡하잖아요. 그런다고 아빠가 뭐 손해라도 보나요?”

점입가경도 이럴 수는 없었단다. 지네 방이 따로 있어 문 걸고 있다면 모른 챌 할 수도 있지만 겨울이면 식탁 옆에서 딩굴고, 여름엔 앞 뒤쪽창문열고 환기시키고 싶어도 그애 잠자리 밟고 가야 하니 참아야 했단다.

더구나 응접실에서 친구내외가 깔고 잔 이부자릴 걷어 개어, 그 애가 자고 있는 방 장농에 갖다 넣어야 하는데 그냥 소파에 올려놔야 한다는 거였다. 어떻든 간에 초등학생인 지 딸애한테도 교육상 늦잠 자는 게 좋을 리 없어 이참에 그 버릇은 고치게 해야 되겠다고 작심했단다.

 

 

손해라니? 서로가 불편하고 좋은 버릇이 아니니 하는 소리 아니냐? 니가 바빴다거나, 전날 힘들게 일해 피곤하다면 말 안하지. 근디 너는 그게 아니잖냐. 어디서 늙은 부모가 밥 먹고 있는데 옆에서 일어나질 않고 딍구는 법 배웠니?” 라고 언성을 높였단다. 그랬더니 한말도지지 않겠다는 듯

언니는 늦잠자도 괜찮은가?”라고 대꾸하는 막내를 보며 무슨 푼수가 이따윌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더란다.

, 니 언니는 직장에 다니고 있잖냐. 글고 그 애가 주말을 몇 번이나 집에서 보내던?”

나도 엄연히 전업주부에요라고 대꾸하는 푼수를 더 이상 꼴 보지 않고 쫓아 보내고 싶었단다.

 

 

근디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마누라가 불쑥 끼어들며 한다는 소리가

나도 친정어머니가 (담도)암수술 받고 호스로 오줌 받는 오줌통을 들고 다니면서 일찍 일어나 밥해도 늦잠만 잤다라며 막내 역성을 들고 있더란다. 꾸짖어도 시원찮을 판에 막내 늦잠 자는 버릇을 두둔하다니?

아니 그보단 나(친구)의 체면은 뭐가 되는가? 남편을 우습게 만드니까 딸도 그러나 싶어 오장육보가 뒤집어 지드란다. 아무려면 좋은 남편노릇을 못했을망정 마누라까지 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딸애 역성을 들어 참담해졌단다.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살아온 보람이 마누라와 딸애 앞에서 처참하게 뭉개지는 모멸감 이었나 싶어 멍하니 한숨만 나오더란다.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 말문을 닫고 여태 혼자 꿍꿍 앓고 있었단다. 그러면서 친구는 나한테 이만큼이라도 흉금을 털어내어 속이 좀 후련하다고, 나와 줘서 고맙다고, 못난 친구 둬 미안타고 자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C가 하는 갑작스런 말,

어쩌면 좋겠냐?”라고 묻는 말에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아

참고 기다려봐야지, 고치겠지 뭐. 속상해도 마음 추슬러라고 나는 가까스로 얼버무렸다.

푼수여야, 딸년이 푼수고, 마누라가 푼수고, 그 푼수들을 껴안고 산 나는 더 푼수여야

 

 

친구는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잠자다 새벽에 화장실 갔다 온 후엔 푼수짓 생각에 불면의 밤을 새우느라 미치겠다는 친구는 이혼소리를 꺼내기도 했었다. 마누라가 우습게 여기는 남편을 애들인들 존경심이 생기겠느냐,고 자학하는 거였다.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땅한 말이 생각 안나 먹먹했다.

나도 식구들과 여차하면 트러블삶인데도 여태껏 묘책을 몰라 그냥 바보처럼 살고 있어 친구의 상처 난 프라이버시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젊은이들이 부모가 뼈 닳도록 희생하며 대학 보내고 결혼시켜주니 지 잘나서 사회인이 된 줄로 착각하고 버릇없이 구는 푼수가 비단 C의 식솔뿐이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마땅한 조언 한마디 못해주는 친구여서 한심했다. 그런 나를 불러준 친구가 고맙고 미안했다.

이제 뭘 어쩌겠노? 기다려 봐라. 근다고 딸애 버릇고치는 걸 포기하란 건 아니다.

딸의 앞날을 위해서도, 딸의 딸인 손녀를 위해서도 반드시 고치게끔 해야 한다. 그게 늦었지만 순수한 푼수애비(?)의 몫이란 생각이 들구나.

2018. 11

 

 

Posted by peppuppy(깡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