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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 장례식장에서

 

자줌꿩의다리

 

연일 37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시간표대로 흐트러짐 없이 살고 있는 푸나무속의 꽃들은 경외스럽다. 지글지글한 염천을 향해 생의 절정을 구가하는 꽃들에 눈길 파느라 땀 뻘뻘 흘리면서 트레킹을 즐기는 거다. 후텁한 열기 뿜는 자락길에 칸나가 무리지어 각혈하다시피 진홍의 꽃이파릴 피웠다.

 

칸나

햇빛이 뜨거울수록 놈은 더 빨간 꽃을 피우는가! 붉은 꽃잎을 말아 올려 태양을 마시며 피다가 그대로 생을 마감하는 칸나의 절개는 꽃말처럼 '존경'스럽다. 폭염에  끄덕 않고 생을 마감하는 그래 또 하나의 꽃말인 '행복한 종말'을 맞나싶다.

 

참나리

 

일욜(22) 오후 자형님의 부음을 접했다. 가난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한 세기를 사시나 싶었는데 지독한 폭염을 더는 견디질 못하셨나보다. 향년 91세로 내 부친처럼 여겼던 분이셨다. 치매기와 노환으로 요양병원에서 십여 년을 나셨는데 그 지난한 뒤치다꺼리를 누님이 도맡았었다.

 

겹삼잎국화

관절염과 요통으로 휠체어신세를 지는 누님은 가끔 빨리 가셨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듯 지친속내를 들어내곤 하셨다. 해서 시쳇말로 호상(護喪)이라 해야 할까? 막내의 울먹이는 전화부음을 들으며 멍해진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순간 내가 겪었던 자형님과의 순간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갔다.

 

 

아내와 서울의료원영안실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다가서는 건 화환들이었다. 어느 상가라 할 것 없이 늘어선 화환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했고, 그것들은 좁은 (로비)복도를 빼곡히 차지한 채 문상객들의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울 내왼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일 올리며 명복을 빌었다. 장례식장 상가(喪家)복도(로비)에 늘어선 조화(弔花)는 흰 국화송일 꽂은 바탕중앙에 인조백합 몇 송일 박아놓은 화환들이었다.

 

쥐오줌풀

謹弔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쓰인 리본에 단체나 회사명 아래에 000라고 화주(花主)의 이름푤 달고 있다. 그 화주는 자기가 보낸 화환을 보기나 했을까? 대게 무신경한 채 전화주문만 했을 터였다. 조의(弔意) 보단 지 이름 알리는 게 우선이었지 싶다.

 

장미

경조사에 꽃(다발)을 선물한다는 건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행위여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담기 위해 꽃의 종류와 화환모양까지를 생각한다. 해서 난 화분이나 꽃 몇 송일 선택하고 아님 단념한다. 덩치 큰 화환이 꼭 상대를 기쁘게 하지도, 깊은 애도를 전하지도 않는다.

 

어수리

꽃도 하나의 생명체이기에 가위로 싹둑 잘린 꽃송이는 적게 쓸수록 좋지 않겠는가. 잘린 꽃은 생명을 이미 앗긴 죽어가는 꽃이고 더구나 조화는 고작 이삼일 견딘다. 뿐이랴, 그 화환은 매도한 꽃집이 다시 회수하여 시든 꽃만 교체하고 되팔아 또 다른 경조사에 사용된다.

 

 

그런 화환에 무슨 축하나 근조, 명복을 비는 마음이 깃들어 있을까? 차라리 화분(花盆)을 선물하면 화주의 고운마음은 오래오래 지켜보며 기억될 테다. 꽃은 푸나무 제 몸에서 꽃피울 때 신선하고 향도 좋으며 오랫동안 핀다.

 

루드베키아

조잡하고 무성의한 화환을 모를 리 없는 화주가 굳이 그 짓을 하는 까닭은 허울 좋은 자기 낯짝내기 위한 허세가 아닐까? 많은 손님들에게 자기 이름 세자 알리기 위한 알량한 행위란 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 빈축의 쓰레기가 될 수있단 사실을 간과한다.

 

 

자기가 보낸 화환이 자원낭비와 쓰레기생산에 일조한 우매한 짓거리란 걸 묵살하는 어리석음이다. 차라리 그 화환값을 성금으로 전달하여 상대가 긴요하게 쓴다면 감사해 하는 마음 배가할 텐데 말이다. 사실 누님댁은 딸만 셋 둔 가난한 집이기에 더욱 그렇다할 것이다.

 

병조회풀

오늘 상가에 즐비한 조화는 대부분 큰애의 지인들이 보낸 걸 거다. 솔로 워킹맘인 큰애가 친정부모님과 자신의 가정을 꾸리느라 벅찬 삶을 살고 있단 걸 모르진 않을 테다. 이틀 후(24)엔 처외삼촌이 별세했단 소식 접하고 광주 학동금호장례식장을 찾았다.

 

삼백초

빈소에 들어서며 울 내욀 놀래 킨 건 2층 로비를 메꾼 조화들이었다. 슬하에 53녀가 있어서일 테지만 수십 개의 화환은 상상을 절할 정도였다. 상주는 빈소에 국화송일 준비하여 문상객으로 하여금 헌화하게 마련인데 굳이 화환을 보내야 할까? 라는 의구심을 떨칠수가 없게 말이다.

 

 

낯내기 좋아하는 허세 꾼의 꿍꿍이 속내를 엿보게 함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푸나무는 얼마나한 신난을 무릅썼고 처절한 일생을 살아내고 있음인가? 그 소중한 꽃이 가위에 잘려 하루 이틀 목 매달리게 한후 쓰레기화 시키는 건 죄악이다.

 

 

우리들이 부지불식간에 살상하는 범죄행위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나름의 대를 잇기 위해 혼신을 다 한다. 꽃을 잃은 푸나무는 자식을 잃은 우리들과 다름 아닐 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생명존중사상 탓이라.

꽃 보다 못한 사람이라니?

 

 

"---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안치환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2018. 07. 27

 

 

# 위 야생화는 7월26일 안산자락길에서 마주한 꽃들

# 한 때 정부주도로 '화환규제'를 실시했었다.

김영란법에서의 조의금과 조화에 관한 조례는 직계존비속의 경우만 조의금+화환=10만원미만이어야 한다. 조화를 보낸 분들이 행여 범법자가 되진 않했는지 모르겠다. 

화환값은 얼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