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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은애전>에서 '미투운동'까지

<은애전>에서 '미투운동'까지

 

 

조선조 정조때의 신하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쓴 <은애전,銀愛傳>이란 기막힌 송사사건의 치정극이 있다. 가부장제도의 조선시대 여필종부 하는 여성들은 남자의 부속물처럼 여겨 신고의 일생을 살아야했던, 갓 결혼한 열여덟 살의 비극적인 여인 얘기다.

 

 

  전라도 강진에 은애(銀愛)라는 참한 처녀가 있었다. 그 마을엔 안()씨 성의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성깔이 억세고 고약했다. 안노파는 오랫동안 피부병을 앓고 있어 억센 성깔이 날선 데다 툭하면 주위사람들한테 악담을 하는 통에 마을사람들 눈밖에 난 처지였다.

 

 

그 안노파를 불쌍히 여긴 은애어머니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고 그래 안노파는 은애처녀가 더더욱 살가웠을 테다. 해서 안노파는 은애를 지 시누이손자인 최정련(崔正蓮)과 짝지어주려 욕심을 냈다. 근디 은애는 물론 은애네 집안서도 반대를 하자 속 좁은 안노파는 앙심을 품고 어떻게든 은애를 정련과 결혼시키려 간계를 꾸몄다.

 

 

안노파는 정련을 불러 은애와 네가 진즉부터 통정한 사이다라고 소문을 내야 결혼할 수 있다고 충동질을 했다. 정련 역시 은애를 욕심 낸 처지라 안노파가 일러준 대로 떠벌리고 다녔다. 은애는 황당하고 분통 터질 일이었지만 일일이 대꾸할 수도 없어 잠잠하기만 기다렸다. 헌데 안노파는 한 수 더 나갔다. 은애가 정련이 만나러 밤중에 우리집엘 왔다가 우리영감에게 들켜 도망갔다. 고 동네에 소문을 냈다.

 

 

은애는 영락없이 정련이 여자가 되어 딴 데로 시집가는 건 물론 얼굴 들고 동네출입도 못할 판이 됐다. 뜬금없는 스캔들로 고민에 빠진 은애한테 한동네 사는 김양준(金養俊)이란 총각이 구원의 손길을 펼쳐 은애는 전격적으로 총각과 결혼을 한다. 김양준이 성실하고 준수한 총각인데다, 뭣보다 은애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단 걸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안노파의 해악질은 끝내질 않았다. ‘정련이 은애와 결혼을 하면 약값도 주기로 했는데 딴 놈과 결혼한 통에 내 병은 더 악화됐다. 그런 못된 화냥년, 쌍년을 우리동네서 살게 하면 안 된다,’고 악담을 하고 다녔다. 억울한 음해와 누명 속에 2년을 버텨온 은애로썬 시가어른들한테 얼굴들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죽기살기 담판 치룰 수밖엔 없다고 맘먹은 은애는 안노파를 찾아가서 따지다가 울컥한 홧김에 부엌칼을 휘둘러 안노파를 살해한다. 관가에 체포된 은애는 사또의 심문을 받게 되는데 자초지종을 들은 사또는 은애를 석방하고 팠지만 살인범을 방면할 수 없어 관찰사께 떠넘겼다.

 

 

허나 관찰사도 억울한 살인범을 사형시킬 순 없어 9번이나 심문을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1790년 정조임금한테 세자가 태어나는 경사를 맞게 되자 은애사건을 형조에 상소한다. 세자가 태어난 해엔 왕이 사면을 배푸는 은전을 하는 예가 있어서였다. 형조를 비롯한 신료들은 살인범은 사형이란 원칙론을 앞세웠다.

 

 

이때 정조는 법()보다 예교(禮敎)로 양반들을 다스리는 통치술을 백성들한테도 행해야 옳다면서 정상참작을 가납 면죄부를 명했다. 글고 정조는 이 사건 - 정절의 고귀함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귀감토록 하라고 이덕무에게 하명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1790.6). 죗값은 그동안 감옥생활 만으로도 치뤘다고 판결한 정조의 혜안을 이덕무는 <은애전>에 썼다.

 

 

남존여비란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약혼한 남자가 죽어도 딴 데로 시집갈 엄두를 못 냈을 정도였다. 하물며 딴 남자와 통정한 여자는 죽어 쌌다. 멀리 삼국시대 백제서동은 신라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이쁘다는 소문을 듣고 쌍방울만 차고 서라벌로 가서 선화공주님은(善花公主主隱) 남몰래 사귀어 두고(他密只嫁良置古) 서동방을(薯童房乙) 밤에 뭘 안고 가다(夜矣 夗[]乙抱遣去如).”라고 떠벌려 뜬소문을 퍼뜨려 공주를 쫓겨나게 만들곤 동반도주 했었다.

 

 

입소문만으로 여자의 운명이 결단 났던 여필종부사상은 21세기까지도 우리의 내면에 잔존하고 있단 걸 부인하지 못한다. 더구나 임명권을 좌우지하는 같은 직장의 상급남성의 성폭행에 울분으로 삭혀야만 했던 여성의 처절한 모멸감을 작금의 미투운동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폭로한 김지은씨(33)는 그녀가 우려했던 안지사를 두둔하는 패거리들의 2차 언어폭행에 시달리고 있단다. 김지은씨가 그들의 누이동생이라도 안지사편에 설 텐가? 우리네 딸, 누이동생이 미투운동에 오르내리는 성폭행범에 인격살인 당했다면 용서할 수 있을랑가?220여년 전의 은애전에서 정조의 혜안을 귀감케 한다.

성폭행범은 인격살인범이라 죽임당해도 싸다-.

2018.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