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 여름별장(Summer Palace,颐和园)의 단풍
베이징에 머문지 일주일이 넘지만 오늘처럼 쾌청하고 미풍조차 없는 날도 드물 것이다. 푸른 하늘은 심심했던지 이따금 새털구름 한 조각을 흩날릴 뿐이다. 오전11시 아내와 나는 택시(70위안)를 이용해 서태후의 여름별장이 있는 만수산북궁문에 내렸다.
쑤저우제거리
매표소 앞의 줄선 관광객꽁무니를 따른다. 이화원을 세 번째 탐방하는 셈이지만 늘 인파에 파묻혔었는데 오늘 첨 입궁하려는 북궁문쪽도 만원이다. 궁문을 들어서면 아취형 돌다리에 오르는데 개울가에 늘어선 쑤저우제(苏州街)가옥들이 탁한 개울물에 빠져있는 그림이 발길을 붙든다.
저잣거리상점이 270m에 달하는데 청나라황제와 황족들은 이곳의 정취를 즐겼단다. 해서 황제가 행차할 땐 내시들이 상점주인 또는 손님으로 변장하여 저잣거리시장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계단을 밟고 수유영분유지를 일별하고 또 층계를 올라 향암종인각에 섰다.
회방당지를 훑고 청가헌지를 일별하는데 이 만수산의 커다란 바위돌덩이들은 어떻게 옮겼을까? 곤명호를 만드느라 파낸 흙으로 만수산을 만들면서 이렇게 많은 기암괴석이 출토되지도 안했고 또한 지반도 약했을 텐데 바위산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우측 다보탑모습이 우주로켓발사대 같이 별나고 멋스럽다. 겉모습이 라마사원 같은 청가헌지를 돌아서니 숲 사이로 곤명호가 얼굴을 내민다. 호수라기 보단 바다 같다고 해야 할까보다. 우리부부는 오늘 저 곤명호를 한 바퀴 일주하기로 했는데 아내가 완주할 수 있을지?
돌계단을 내려온다. 많은 관광객과 가파른 경사길이라 정체가 심하다. 중취정과 사추헌을 더듬고 서태후의 아방궁인 불향각(佛香阁) 에 들어섰다. 만수산의 상징처럼 우뚝 솟아 있는 불향각은 이화원의 중심이다. 1891년, 이화원 최대공사로 은화78만냥이 들었단다.
멀리 호수에서 보면 햇빛에 반사된 황금색 유리기와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불향각에서 조망하는 이화원과 풍정은 탄성이 절로 나는 별천지다. 더구나 이 광대한 아름다운산수가 인공적이란 데 어안이 벙벙해진다. 옆의 배운전(排云殿)은 건륭제가 황태후를 위해 지은 황실사찰이었다.
1860년에 영`불연합군의 침략으로 소실된 걸 서태후가 1900년 거대한 자금을 들여 궁궐로 짓고 문무백관과 황족을 맞는 장소로 썼다. 내실에 서태후의 의자가 있고 거기 있는 물건들은 그녀의70세 생일선물들이라고 한다.
불향각 아래 보운각(宝云阁)은 높이 7.55m로 구리207톤으로 지은 건물이다.
장랑.
동쪽 요월문에서 서쪽의 석장정까지 길이 728m, 273칸의 화랑이다.
건륭황제가 궁정화가를 서호에 파견하여 546폭의 서호 경치를 273칸 화랑의 들보에 그렸다.
영`불연합군침공 때 유일하게 보존된 건륭제의 역사적인 유물이다. 불향각, 보운각, 배운전궁궐은 화사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수학여행이거나 소풍 온 단체학생들과 단체관광인파의 아수라장 속에서 구경한다는 것조차 버거웠다.
계단을 내려오니 곤명호숫가도 인파로 장사진을 쳤다.
청안방
서태후가 여름별궁으로 사용한 돌배는 총길이 36m, 상하2층의 선실로 꾸며 1755년에 건조하였다. 파티와 뱃놀이 등 방탕한 놀음판이 벌어졌다.
서태후의 산책길인 장랑(长廊)을 밟는다. 그녀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궁전을 나와 곤명호숫가를 거닐 수 있게 만든 회랑이 장랑인데 길이가 728m다. 회랑들보에 홍루몽이나 서유기 등의 소설장면14,000폭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어 책 읽은 사람들 시간있음 상상의 나래펴기 좋을듯~.
청인방 입구
양편이 확 트인 장랑복도를 거닐며 관망하는 호수의 풍경은 환장하게 아름답다. 참으로 대단한 여장부요 호사를 즐기는 방탕한 여자였음을 유추해 볼수 있다. 그녀가 온갖 거드름 피우며 아장댔을 복도를 걸으며 상상을 해 봤지만 나의 멍청한 대갈통으론 호사스런 그림이 그려지질 안했다.
후호와 곤명호가 만나는 지점의 다리
장랑을 거닐며 서쪽 청안방을 향하는 길목에 추수정과 청요정이 있다. 서태후가 몇 분쯤 거닐다가 거드름피웠지 싶은 쉼터다. 다시 발길을 옮기면 호수유람을 하는 선착장에 유람선착장이 있고 그 뒤에 요상스럽게 만들어진 청안방(淸晏舫)이 물위에 떠있다.
서호의 물그림자는 환상적이다. 어느 커플의 러브판타지
돌배-석방(石舫)이라고도 한다. 길이가 36m인 대리석으로 만든 2층 누각 배다. 절대로 뒤집히거나 침몰하지 않는 배를 갖고 싶었던 서태후는 권력도 영원히 향유하려했던 것이다. 서궁문 앞에 섰다. 후호(后湖)와 곤명호가 이어진 개천가의 오래된 수목정원의 아름다움도 빼어나다.
차경각지를 향하는 수로와 돌다리를 빠져나가는 유람선과 단풍드는 수풀들은 멋진 한 폭의 산수화를 펼친다. 본격적으로 곤명호는 베일을 한 꺼풀씩 벗으며 비밀스럽고 드넓은 가슴팍을 열어 보인다. 호수가의 환상적인 데칼코마니는 미치도록 멋지다.
유람선선착장
그 멋들어진 물그림에 빠진 나는 데칼코마니을 감상하기엔 머리통이 넘 작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나의 그런 뭉그적대는 모습이 마땅찮은 아낸 앞서다가 되돌아서 최촉을 한다. 차경각지를 건너면 곤명호(昆明湖)는 옆구리에 서호(西湖)와 남호(南湖)를 만든다.
서호와 곤명호를 가르는 둑길의 데칼코마니
서호와 남호는 온갖 수풀로 비밀스런 풍정들을 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헷갈리게 하는 거였다. 도대체 어디부터 탐방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게 한다. 아내와 나는 서호와 남호산책은 접고 곤명호트레킹 중에 입맛 당기는대로 들려 살짝 엿보기로 했다.
곤명호수의 면적이 220만㎡, 둘레는 6.4km의 거대한 호수는 원나라와 명나라의 저수지였는데 건륭제가 확장 공사를 해 호수를 3개로 만들었단다. 호숫가에 서있는 고목들은 수백 년 세월의 더께를 간직한 체 각각의 풍취와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호수와 호수를 연결한 아치형돌다리엔 쉼터를 만들어 뷰포인트를 조성했다. 곳곳에 유람선선착장이 있어 관광객을 싣고 호수를 탐방하는데 요금은 대게 시간제인가 싶었다. 유람선을 타고 발길과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관망하는 이화호의 풍경은 상상을 절한다.
조감당
조감당에 닿았다. 가까이 모습을 나타낸 십칠공교의 아름다움이 피곤을 잊게 한다. 무지개모형의 십칠공교(十七孔桥)는 인공섬 남호도와 연결되는데 길이가 150m인 돌다리로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이화호의 아이콘이지 싶은 십칠공교는 그 미적인 모습에 연인들과 젊은이들, 단체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남호와 곤명호를 가르는 둑길 괴목의 ♡사이로 조망한 불향각
허나 그 멋들어진 돌다리는 통한으로 얼룩진 다리다. 남호도 별궁에서 서태후는 상상할 수 없는 방탕을 즐겼다. 십대의 잘생긴 소년이 밤이 되면 서태후의 침전에 들어 그녀의 쾌락을 위한 기상천외한 짓을 다해야 했다. 글곤 동이 트면 미소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소년의 입이 무서워 황천길로 보냈던 것이다.
십칠공교
그 소문은 전국에 퍼져 부모들은 잘생긴 아들을 두길 꺼렸고, 미소년들은 얼굴에 자해를 하였으니 중국전역에 미남 찾기가 어려웠단다. 지 또래친구들이 마귀황제할망구 성노리갯감으로 죽어간 사실을 다리위에 서성대는 학생들이 알고나 있을랑가?
십칠공교난간에 500여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각기 모양이 다른 건 황천길 떠난 미소년들의 일그러진 모자이크일지 모른단 생각을 해봤다. 울 내왼 그런 얘길 하며 남호도별궁에 발을 내딛는다. 16개의 기둥에 8각2층 처마를 올린 곽여정(郭如亭)을 통과한다.
중국엣서 젤 멋지고 큰 정자란다. 사철나무 우거진 섬속의 용왕묘(龍王廟)는 폭풍을 관장하는 서해의 용왕을 모셔 수마를 피하려 세운 사당이다. 그 위로 서태후가 해군훈련을 관람한 함허당이 있는데 오늘은 낫살 든 할배들 차지가 됐다.
곽여정
서태후는 가난한 만주 귀족의 후예였다. 어린 그녀는 황궁생활의 부귀영화를 꿈꾸곤 했는데 17살 되던 어느 날 궁녀로 뽑혀 황궁에 들어가게 된다. 노래를 썩 잘했던 그녀가 내시를 통해 황제가 산책할 때 숨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랠 들은 황제가 그녀를 수청 들게 해 낳은 아들이 유일한 왕자가 되니 서태후는 제7대 함풍황제의 황귀비가 되었다. 글고 함풍황제가 일찍 죽자 아들은 제8대 동치황제로 등극한다. 겨우 여섯 살 된 황제의 생모서태후는 이때부터 수렴청정하기 시작하여 권력욕에 빠져들어 48년간 중국을 통치했다.
곤명호 건너 만수산에 배은전과 불향각이~
동치황제가 17살에 결혼하면서 모녀간의 불신과 권력욕은 동태후를 재거하게 됐고, 엄마한테 실망한 동치황제는 변복으로 기생집을 찾으며 타락하여 병[天花]들어 죽는다. 동치황제의 죽음을 황후(며느리)의 탓이란 누명을 씌워 죽인 서태후는 지 시동생과 여동생이 낳은 3살박이 아들을 광서황제에 올려놓고 섭정을 계속했다.
1898년, 19살 된 광서황제가 유심파와 손잡고 개혁을 하려 "유심변법"을 실시했는데 서태후에 의해 103일 만에 진압되었으니 무술변법이라 한다. 광서황제는 여름에는 이화원옥판당에 겨울에는 중남해영대에 가택연금 당했다. 10년간 가택연금속의 광서황제는1908년 서태후가 죽기 하루 전에 서태후에 의해 살해되었다.
황제이기 전에 아들을 죽이다니?
울 내왼 광서제가 유폐뒨 채 죽은 옥란당(玉澜堂)을 향한다. 열쇠 걸어 잠긴 실내는 서태후의 음모만큼
어두침침했다. 광서제의 원귀(寃鬼)가 뿌연창을 부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옥란당 옆에 인수전(仁寿殿)이 있다.
수백 년 묵은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서태후가 싫어 달아나려고 용쓰다 저렇게 삐뚤빼뚤 꼬였을까?
태호석장식으로 빼어난 정원을 만들었다. 아들 광서제를 수렴청정하기 위해 서태후 본인이 머문 곳이니 호사스럽게 꾸몄을 테다.
전각 앞에 용과 봉황이 나란히 서 있고 안은 옥좌도 있다.
비싼 옷이 가득 찬 3000상자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옷 갈아입는
사치할망구 서태후는 전화설치도 반대했다.
십칠공교위의 인파
전활 거는 자가 무릎 꿇고 하는지, 앉아 다릴 뻗고 하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자기의 존엄이 상처받는다는 핑계였다니 희극인가 비극인가. 인수전 뒤에 덕화원(德和園)이 있다. 그 맞은편에 서태후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개조한 경극 공연장 대희루(大戏楼)가 있고 덕화원 맞은편에 서태후가 후궁과 공주들을 불러 앉혀 오만방자를 떨며 경극을 관람했던 이락전(颐乐殿)이 있다.
성정이 난폭하고 거만한 서태후는 머리 빗겨주는 내시를 몇이나 죽였는지 모른다. 내시가 머릴 빚기다 머리카락 하나라도 빠지면 황천길로 보냈던 것이다. 하여 내시들은 서태후의 머릴 빗길 땐 소매가 넓은 옷을 입어 뽑힌 머리카락이 소매 속으로 빠지게 했단다.
내시들은 쫌만 행동이 거슬러도 똥을 먹어야하는 수모를 치러야 했으니 서태후 앞에선 모두가 벌벌 떨었다. 덕화원 뒤에 서태후의 침궁인 낙수당(乐寿堂)이 있다. 만수산 품안에서 시원스런 곤명호를 조망하는 배산임수자리다. 정면에 걸린 ‘만수무강(萬壽無疆)’ 편액은 서태후의 장수를 기원함일 테다.
만수무강하기 위해 그녀는 젖 잘 나오는 여자들을 차출해서 침대에 누워 모유를 빨아먹었다. 젖 빨리는 여자는 빨간천구멍 밖으로 젖꼭지만 내놓고 얼굴과 전신을 가린 채 서태후한테 젖을 빨렸다. 역사상이나 지구상에 몬도가네도 이런 훼괴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인수전(仁壽殿)은 왕이 정무를 보던 곳이다
문 쪽에 용(왕)을 그 옆에 봉황(왕후)이 있어야 함인데 서태후가 그 위치를 바꿨다.
실권자는 자기 바로 서태후라는 과시욕에서다
기상천외한 서태후의 일생 탓인지 낙수당일대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어디 맘 놓고 구경할만한 틈새가 없었다. 밀려드는 인파에 떠밀려서다. 우린 장랑으로 빠져나와 불향각입구 계단에서 빠꾸 동궁문을 통해 귀가하기로 했다.
배운전과 불향각을 좀더 자세히 보고팠는데 아내의 체력이 버틸 것 같잖단다. 그실 북문에서 만수산을 넘어 곤명호를 한바퀴 돌고 동문에 다시 섰으니 10km이상 걸은 셈이다. 젤 많은 인구를 가진 덩치 큰 나라라 불가사이한 일들이 다반사였던 중국이라.
광서황제가 구금됐던 옥란당
광서황제가 19살이 되자 개혁정치를 실시 수렵청정한 서태후와 갈등이 깊어갔다
허나 서태후에 진압되고 광서제는 옥란당에 감금, 유폐생활을 하다 죽는다
지금 G2로 불리는 중국이 특정 인터넷사이트도 봉쇄한 체다. 그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한 대국이 중국이다. 지도부는 중국의 굴기를 외치면서 말이다. 셰계와 소통의 벽을 막은 채 말이다. 서태후가 전화설치를 반대했었는데 위대한 도약을 위한 웅크림인가? 울 내왼 택시에 올라탔다.
2018. 10. 28
서태후
1905년 서태후나이 70세 때 네덜란드 화가 Hubert Vos를 초청하여 그린 초상화(덕화전에 있슴)
서태후가 거절햇던 전화, 전시장에 진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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