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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십년제국의 요람 - 덕수궁

 십년제국의 요람-덕수궁

 

 

오후2, 프라자호텔을 나서다 덕수궁수문장교대식이 열리고 있어 대한문에 들어섰다. 아내가 오랜만에 초가을덕수궁을 산책하잔다. 우측 카페 뒤 호수가의 활엽수가 때때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정원을 걷는 가을연인들 폼새에 낭만이 묻어난다. 

 

덕수궁수문장교대식

 

고종이 1897년 아관파천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환구단을 지어 재천의식으로 황제에 올라 십년 남짓 통치한 영욕의 궁궐이 덕수궁이다. 호수를 끼고돌면 일제의 강압에 시달리던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1907년)후 13년간 머물다가 1919년 운명한 함녕전이 있다.

 

 

덕수궁은 애초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집이었는데 선조가 임진왜란 뒤 환궁하여 불탄 경복궁 대신 임시 궁으로 이용하며 정릉동 행궁(貞陵洞行宮)’이라 불렀다. 선조 뒤를 이어 광해가 즉위하자마자 그해 창덕궁으로 이궁하면서 경운궁(慶運宮)이라했다.

 

‘조용히 내려본다’는 의미의 정관헌.

 고종이 다과와 커피를 들며 음악감상을 하던 연회장으로 서양식 회랑건축물의 멋이 풍긴다


서양열강들의 각축전이 된 1897년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옮겨 중화전(中和殿),정관헌(靜觀軒),돈덕전(惇德殿)등을 세웠고, 1905년에 즉조당(卽阼堂),석어당(昔御堂),경효전(景孝殿),준명전(浚明殿),흠문각(欽文閣),함녕전(咸寧殿)등 서양식건물도 지었다.

 

석어당후원의 추색

 

그 후 1910년에 서양식의 석조전(石造殿)이 건립된다. 고종이 죽자 덕수궁은 일제(日帝)의 흉계에 의한 파괴의 손길로 해체의 길을 밟았으니 고종과 명운을 같이 한 비운의 궁궐인 셈이라.

 

분수정원서 본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

 

1945년 해방 후 석조전에서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려 한반도문제가 논의되었고, 1947년엔 국제연합한국위원회가 여기에 둥지를 틀었다. 급박한 현대사의 산실이기도 한 덕수궁에 가을맞이 나온 시민들의 한가한 발걸음이 덧없이 평화롭다.

 

석조전과 미슬박물관을 잇는 회랑 앞의 마로니에

 

비명에 간 명성황후의 넋(신주)을 모셨던 덕흥전을 훑고 고종의 휴식처 겸 찻집이었던 정관헌을 찾았다. 서양식건물인 정관헌은 내부가 확 트인 찻집으로 고종의 부침(浮沈)한 일상을 상상하기 적소일 테다.

 

분수대

 

황태자비민씨(閔氏)가 죽은 석어당, 고종의 순헌귀비엄씨(純憲貴妃嚴氏)가 죽은 즉조당이 중화전 뒤에 있는데 후원의 고목들이 세월의 풍상을 옴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100여년 세월을 각인시킨 가시칠엽수(마로니에)가 푸른 하늘에 뻗친 위용은 경탄하다말다다.

 

평성문 앞의 가시칠엽수는 100살을 훨씬 넘기며

돌담 밖 미대사관, 러시아공관 등 재외국공관의 동정을 지켜봤을 터다.

 

서양에선 가로수로도 번성하는 가시칠엽수가 한말 열강서구인들손에 들여와 희귀목이 된 사연이 궁금했다. 키 크고 속없단 속담마냥 놈은 홀라당 깨 벗기가 좋은지 거구에 벌써 이파릴 거의 다 떨궜다.

 

마로니에와 가을하늘

 

덕수궁본전인 중화전을 훑고 중화문을 통과 분수대정원벤치에 앉았다. 대리석열주의 석조전의 건축미가 코발트하늘을 배경삼아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 고종은 서양문물을 들이는데 주저하질 않았다.

 

선정전빈터의 추색

 

석조전과 이층회랑으로 이어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의 단아하고 간결한 멋 앞에선 모델을 앞세운 사진촬영이 지지리 이어졌다. 싸한 가을바람에 반 나신의 모델이 안쓰러울 만큼 카메라맨의 집요는 끈질기다.

 

중화전, 대한제국의 어전이었다

 

아내와 나는 석조전에서 열리고 있는 황제복식특별전시회를 관람하러 입장했다. 의복과 장신구, 대한제국의 이너서클들의 행색사진을 보는 근현대사가 풋풋한 식견으로 다가왔다. 불과 반세기 전의 우리들 지배층들의 일상을 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석조전2층 대광홀에 좌로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평성문으로 덕수궁을 빠져나왔다. 가을바람결에 성급한 단풍들이 곡예를 한다. 포도엔 어느새 낙엽이 도배를 하고 있다. 땅거미내린 미국대사관이 육중한 문을 닫고 초병이 낙엽을 세고 있다. 초병어깨에 내린 가을이 성큼 내 어깨에도 내려앉는다. 우린 발길을 재촉한다.   2018. 10. 18

 

통천관복의 고종의 말년은 불행했다. 헤이그밀사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퇴위당한 고종은 국권회복을 위해 노심초사했으나 실패, 1919년 승하하자 일제는 장의를 일본국장으로 고집하여 조선전통방식과 혼용해야했다. 조선전통상복,일본제복,서양대례복을 혼용한 이름뿐인 황제의 장의였다

 

​1883년 미국에 파견한 보빙사사절단, 

앞줄 좌측부터 홍영식부대신 , 민영익전권대신, 서광범종사관, 미국인 통역관 로웰, 뒷줄 중앙의 유길준은 계속 남아 최초의 재미 유학생이 된다 

 

신임장을 들고 아더 미대통령을 만나는 순간,  아더가 악수하러 손을 내밀자 냅다 큰절을 올리는 민영익,홍영식,서광범보빙사를 보고 엉거주춤하고 있다 

주한외국공사들이 한 자리에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잇는 회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