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서 송정까지 레일위에 서다
다릿돌전망대
짙푸른 창해에 겨울햇살이 사선으로 꽂는다. 찬 바닷바람에 날 세운 물비늘이 보석처럼 빛나는 해운대해수욕장은 겨울바다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마중터가 됐다. 해풍에 부서진 보석들이 뒤엉켜 학익진을 펴며 해안가에 달려들어 몸부림친다. 겨울바다는 그들의 부대끼는 소릴 오롯이 들을 수 있는 낭만이 물씬거린다.
해운대백사장
파도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아내와 미포항을 향한다. 오늘은 송정해수욕장까지 걸어가서 거기 모래사장의 밀어도 들어보기로 했다.
문텐로드라고 명명된 달맞이언덕길은 와우산이라. 언덕이 누워있는 소를 닮았다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르고, 소 꼴랑지에 해당하는 포구를 꼬리 미(尾)자 미포(尾浦)라 불렀다. 또한 터널 아닌 터널을 고두말(고두베기)이라하며, 소 잘랭이 부분을 청사포라 부른다.
미포항, 새벽에 생선사러 갔는데 개미새끼도 안 보여 활어횟집에 들러 묻 는다.
아줌마 왈, 이 추위에 얼어죽을 일 있어요?
아줌마한테 찌게꺼리 사서 매운탕해 먹고 철길위에 몸 세웠다
소 꼴랑지 미포항이 추운날씨로 썰렁하다. 해운대관광유람선선착장도 성난 파도의 개거품만 우왕좌왕한다. 동해남부선 철길에 올라탔다. 청사포와 구덕포를 거쳐 송정해수욕장까지 약 4.5km남짓을 왕복트레킹하기로 했다. 지난 가을에 장산서 시건방 떨다 팔목골절로 단념했던 코스다. 휑 뚫린 철길위에 젊은 커플들이 추위를 낚는다. 고두베기는 커플들한테 어떤 뷰포인트일까?
고두베기에서의 젊은커플들은 호젓해서 신 났다
사진 찍느라 부산이다. 아내한테 ‘한껏 폼 잡아보라’고 주문했다가 레이져총만 맞았다. 울 식구들은 사진 찍길 싫어한데다 내 사진솜씨가 ‘개판’에 식구들 ‘개폼’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뭣해 인물사진을 삼간다. 발아래 해안철조망과 초소가 을씨년스럽다. 1985년 10월 청사포 앞바다에 간첩선이 출현하여 제205특공대가 간첩 5명을 사살한 후 해안선에 초소와 철조망을 설치했단 데 그 유물일 테다.
초소망루는 심심하다. 간첩 대신 망둥어라도 봤슴 싶은데~ 갯벌이 없어서^^
성난 파도가 해일처럼 밀려와 그 유물들을 핥으려든다. 아픈 기억들은 제아무리 핥아내도 트라우마는 남고, 기록은 영원하다. 와우산 깎아내린 벼랑에 태극기가 선명하다. 청사포등대가 송림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붉은 등대와 하얀 등대가 쌍둥이마냥 마주보며 머리끝을 뾰쪽한 상투로 틀어올려 여느 등대와 다르다. 1959년 사라호 태풍피해 후에 북방파제를,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한테 혼쭐나고 만든 남방파제에 각각 세운 쌍둥이등대란다.
청사포에 저 쌍둥이등대가 없음 얼마나 맬랑꼴리 할 건가! 푸를 청(靑). 뱀 사(蛇)를 썼던 청사포구엔 망부(亡夫)의 사랑얘기가 있다. 금실 좋은 부부한테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풍랑을 만나 파선 익사하게 된다. 아내는 매일 동구 밖 소나무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자 애처로움에 감복한 용왕이 푸른뱀을 보내 부인을 용궁에 데려와 남편과 상봉케 했단다.
하얗과 빨강 쌍둥이등대. 거기도 두 젊은이만의 겨울바다 커플세상이다.
그래서 청사포(靑蛇浦)라 했는데 뱀사(蛇)자가 좀 뭣해 모래사(沙)로 바꿔 청사포(靑沙浦)로 개칭했다. 글고 그 소나무(높이15m 둘레2.9m)는 현재 보호수로 지정됨이다. 청사포 앞바다 창해엔 검푸른 도장밥이 군데군데 번졌는데 미영양식장이란다. 유명한 기장미역의 산실인가 싶었다. 철길엔 잘 생긴 아름드리 향나무가 열주하며 녹녹한 세월의 몸매를 뽐내고 있다. 근디 잘 생긴 풍모를 거지꼴로 만든 건 누굴까?
청사포마을 동물담벼락 뒤로 우두산정을 뚫은 고층아파트
오만 잡동사니와 넝쿨을 뒤집어쓰고 거지발싸게만도 못한 꼴이 됐다. 십 분쯤 레일 위에서 몸 가누면 다릿돌전망대가 해안가로 불쑥 튀어나와 볼썽사나운데 말이다. 오륙도해안전망대를 흉내 낸 다릿돌전망대를 이곳에 왜, 뭔 볼 일이 있다고 설치했는지 멍청한 내 머리통은 그만 하해졌다. 바닷가전망대는 주상절리절벽 아님 해식동굴을 감상하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다릿돌전망대, 뭣 땜시 세금 퍼질러 놨는지? 지자체장 심뽀가 궁금했다
지자체장은 지 호주머니 돈 아니고 세금 퍼다 쓰니까 낯짝 내는 기념물 하나 만들자는 똥배짱짓거리 한 셈이다. 그 뭉칫돈을 차라리 향나무 곱게 단장하던지, 철로변 묵전을 정비하고 골짝의 쓰레기를 치워 정화시켰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만드느라, 관리하느라 세금 낭비할 부산시민들의 수치스런 전망대가 아니 됐음 좋겠다.
전망대 더럽히고 망가진다고 덮신 신고 들어가야 한다. 그걸 감시하는 청년은 일자리 하나 챙겨 횡재한 셈인가?
줄곧 철길을 따라오면서 귓전을 속살대는 파도소리는 마음을 창해 속으로 침잠시킨다. 파도에 알몸 뜯기는 시꺼먼바위들의 보채는 소리, 개 거품 뿜는 파도의 거친 호흡소리, 쉼 없이 드나드는 물살에 구르는 자갈들이 몽돌 만드느라 까르르 웃는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한갓진 동해남부선에서다. 구덕포마을 지나 송정해수욕장까지의 십 여리 남짓의 철길트레킹은 호젓한 힐링로드다.
바다는 천의 얼굴과 만의 속내를 갖고 우리에게 풍요를 선사한다
송정은 난생 처음 찾는 땅이다. 거의 해운대해수욕장에 비길만한 넓고 완만한 모래사장엔 딱 한사람이 망부녀처럼 서있었다. 따스한 겨울햇살이 모래사장에 내려앉느라 시계가 아른거린다. 푸른 해원을 점찍고 달려온 파도가 모래사장에 사연을 내려놓느라 속살댔다. 오로지 텅 빈 송정해수욕장이기에 겨울바다는 자연의 해조음을 선사함일 터다. 근디 해수욕장 말고 송정엔 무슨 노다지가 솟을까?
송정해수욕장
높다란 빌딩이, 하고많은 패션과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해서다.
송정은 조선말기 노영경(1845-1929)대감이 낙향하여 송호재정자를 짓고 유유자적한 데서 연유한다. 노대감은 고향에 해송(海松)이 울창하다고 출신지를 송정이라 했단다.
길이 2km, 너비 50m 백사장의 송정해수욕장은 철도갓길 소나무너머로 조망할 때 한결 운치 좋았다. 1940년대 개통한 송정역은 전형적인 근대 역사건축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302호로 지정됐다.
장사포해안서 본 다릿돌전망대
해운대해수욕장서 송정해수욕장까지 약 4.5km를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기며 겨울해변나들이에 풍덩 빠져들었다. 내 평생 철길 십 여리를 걷기도 첨이고, 또 마지막일지도 몰라 더 추억창고에서 또렸할 것 같았다. 영원히 마주칠 것 같지 않은 철로레일의 두 선을 우리부부는 히히덕거리며 걸었다. 안 마주치길, 정말 다시는 안 만나기를 바란다고 아내는 넉살을 떨었다. 남해동부선레일도 한 번은 끊겨 외줄박이 레일이 됐었는데~!
어떠게함 다음시상엔 안 만날꼬? 영원한 평행레일은 답 없다
해운대를 향한다. 마주보며 레일위에 몸 가눈다. 소 꼴랑지에 닿고 동백섬에 노을이 걸리면 우린 해운대백사장에 서 있을 테다. 글고 기왕 만났으니 나란히 숙소로 기어들어 뻐근한 다릴 펼 것이다. 글고 밤이 깊으면 꿈속에서 아낸 나를 다시 안 만나겠다고 잠꼬대할 것이다.
2018. 01. 10
고색창연한 송정역사
송정백사장의 외로운 여우(?)
해송 사이로 본 송정해수욕장과 쪽빛바다
송정해수욕장과 시가지를 가르는 철길 건널목에 오아시스라니?
푸른바다에 접한 송정시가지
쌍동이등대도 영원한 연인
천덕꾸러기 신세의 철로변 향나무
구덕포
구덕포철로변의 어느 노천 카페
망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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