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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장산너덜길 옥녀봉의 트라우마

장산너덜길 옥녀봉의 트라우마

 

너덜지대서 조망한 옥녀봉

 

이틀간 몸살을 앓던 아내가 옥녀봉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단다. 방꼭보단 가벼운 산행이 몸살기를 쫓아내는 데 좋고, 옥녀봉산행은 전혀 무리하자 않아도 될성싶어서다. 게다가 옥녀봉은 작년 늦여름 울 부부에게 깊은 상흔이 남은 곳이다. 아무리 낮은 산도 겸양의 자세로 다가서야 한다는 진리를 통감시켜 줬던 옥녀였기에 나 역시 다시 가보고 싶었다.

  

옥녀봉서 조망한 센텀시티마천루

 

삶에서 강열한 희노애락에 빠졌던 굴곡의 순간은 일생에 적잖은 자기혁신의 계기가 되고, 그 기억들은 다시 한 번 그 현장에 가보고 싶게 한다. 그날,그때.그 순간의 자리에서 벅찬 애횐들을 복기하며 마음 여밀면서 현실의 나란 존재에 감사해 하기도 한다. 

  

장산입구-대천공원

대천공원 저수지

 

사나흘의 강치가 몽니를 풀었는지 날씬 푸근한데 대기는 미세먼지 탓에 뿌옇다. 그래도 휴일 겨울산행을 즐기려는 많은 산님들 발걸음이 가볍게 보인다. 겨울가뭄에 골짝은 맨살을 들어내고, 양운폭포도 어름 한조각을 갑옷처럼 두르고 포도시 폭포시늉을 내고 있다.  임도에서 중봉, 너덜지대쪽으로 파고든다.  

 

폭포사와 양운폭포

 

장산은 소나무와 시스레피나무와 후박, 쥐똥나무 등의 사철나무들이 울창해 겨울산행을 싱그럽게 하는데, 특히 이곳의 소나무는 조선시대부터 보호림으로 위세를 자랑한다.  이씨조선왕가(창덕궁)의 숲으로 이산(李山)이란 표석이 있는데 봉산(封山·국가가 관리하던 산)이었다.

 

빼곡한 송림사이에 군데군데 녹색비닐포장을 한 무더기가 곳곳에 봉분처럼 널려있다. 소나무재선충 탓에 생긴 소나무초분일 테다. 드뎌 너덜지대에 들어섰다. 여기 너덜은 여느 너덜지대와는 다르다. 돌맹이 크기가 클뿐더러 위 산능선에서 아래 골짝끝까지 규모의 방대함도 혀를 차게 하는데, 더 기똥 찬것은 그런 너덜지대가 대여섯군데나 있다는 게다. 

 

 

옥녀봉서 본 센텀시티와 광한대교

작년9월3일 바위위에서 아래 시가지풍경을 디카에 담다 낙상했던 옥녀봉바위숲

 

옥녀봉에 섯다. 아내는 소나무에 기대서서 그날의 정황을 복기 설명한다. 어설픈 사진 찍겠다고 바위에 올라서서 시건방 떤 나의 경겨망동을 되새김질 시켜주려는 성싶기도 했다. 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시가지풍정을 담고 돌아서다 삐긋, 왼쪽으로 기운몸에 왼발을 옆 바위에 건너 뛴다는 게 폭이 넓어 실족 자빠졌던 거다. 넘어지면서 건너편바위에 왼팔을 짚고 팔에 얼굴을 파묻은 채였기에 손목골절만 입었던 천행이였다.

 

 

암튼 그 순간은 의식을 잃고 한참을 정신이 몽롱한 채 바위에 엎어져 있었다. 순간기절이라 해야하나?  아내가 부축하며 뭐라 외치는 소리에 정신을 되찾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아까 바위에 앉아있던 산님도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데 한참을 끙끙댔단다. 내가 몸을 풀고 축 늘어진 실신한 상태라 몹씨 무거웠단다.   

 

 

고개는 들었는데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내가 볼에서 피가 흐른다고 손수건을 꺼내 압박하며 소란떨었다. 왼발도 어찌됐는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산님과 아내가 부축하고 내가 정신을 가다듬어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키고, 왼발을 오므리려는데 안 들어 한참 후에 내디딜 수가 있었다. 아내가 다릴 주물르고 발걸음을 뗐는데 걷는데 괜찮을 것 같았다. 얼굴의 피는 지혈이 됐나 싶었으나 왼팔이 문제였다.

 

옥녀봉 아래 안부의 이정표, 여기서 만난 산님이 대천공원쪽이 아닌 봉수대쪽으로 하산하는 게 시내가 가깝다고 했는데 잘 못 안내한 거였다.

 

팔 받혀 맬만한 맬방끈이 없어 베낭을 앞으로 메고 베낭속에 왼팔손목을 넣어 하산하는데 왼발을 내려디딜때마다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헬기라도 부르면 싶은데 아낸 걸을 수가 있으니 반 시간만 참으며 하산하잔다. 왼손목을 쏙쏙찌르는 아픔을 아내가 상상할 순 없으리라. 오른손은 뺨상처를 압박 지혈하고 있어 두 손이 묶인 채의 하산속도는 뎌딜수 밖에.

       

 

반 시간쯤 내려왔지 싶은데 시가지는 얼굴도 안 보인다. 군부대철조망을 타는 하산길이 그렇게 길 수가 없다. 산님 한 분도 안보였다. 맘이 바쁜 아내는 선도하며 뎌딘 나를 자꾸 되돌아본다. 난 아까 안부에서 이 길을 안내한 산님을 원망해 본다. 엉터리 안내일 것 같아서다. 대천공원쪽으로 하산 했으면 아마 지금쯤 폭포사엔 닿았을 테고 스님한테 콜택시 부탁하기도 용이할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너덜지대, 오늘 이런 너덜지대를 여섯군데를 지났다. 

너덜지대는 어떻게 생성됐을까? 하 넓은 산지에 하필 그곳에만 엄청난 바위와 돌들이 모여 산사태 나듯 했다는 자연의 신비와 위력에 감탄할 뿐이다

 

한 시간여만에 시내애 도착, 택시에 탑승하여 해운대구순봉정형외과에서 팔목골절수술을 했다. 입원을 종용했지만 통원치료 사흘만에 상경키로했다. 글곤 사흘만에 서울역광장서 좀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걸려 또 넘어져 다시 재 수술을 받았다. 골절부위 뼈가 부서져 접합수술까지 해야했고, 일주일동안 입원치료 후엔 두 달여간 통원치룔 해야했다.

  

 

지금도 난 재활치료중이다. 재활치료란 게 인내심과 꾸준한 끈기의 운동인데 그게 결코 쉽지가 않다. 내 스스로 하는 일이라서 불편함 대충 넘기는 안일한 나태에 빠져들곤 한다. 금년9월쯤엔 팔목속의 쇠심지를 재거하는 수술을 받을 것이다. 그보다 신경써야 하는 건 팔목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재활치료다. 병신을 면하는 건 오로지 내 몫이다.  

 

 

다시 자빠져 불안전한 손목을 다처선 안되니 겨울산행은 삼가하라고 주치의가 당부하여 금년겨울산행을 단념했다. 손목골절수술로 뒤늦게 깨달은 바가 많았다. 산행은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내 몸은 살아있는 한 가족의 공유물이란 생각에서 신중히 다뤄 보전해야 모두가 평안하다. 나이 들어 한 번 망가진 몸뚱인 재활도 어렵다.  

 

 

 

옥녀봉에서 억새밭까지 장산너절길은 5부능선에서 7부능선 사이4km남짓을 트레킹하는 코스는 산책길로써 그만이였다. 빼곡한 숲은 사계의 풍광을 싱그럽게 연출할 것이며, 너덜지대는 탁 트인 시야로 부산항의 빼어난 풍광을 한 컷 한 컷씩 파노라마시켜준다. 부산시민들은 행운아들이라. 

  

억새밭

 

숲길을 걸으며 창해를 넘나드는 도심을 빙 둘러 관망할 수 있다는 눈의 호강을 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어서다.

대천공원서 정오에 시작한 산행은 오후 4시쯤에 원점회귀했다. 몸 상태가 안좋은 아내가 걱정됐는데 한사코 더 걷자고하며 4시간을 버텨줘 고마웠다. 아니 아내가 몸이 좀 게운한 것 같아 좋았다. 

 

 

디션이 안 좋을 땐 무리하지 않고 산책을 한다면 최상의 치유효과를 얻을 수 있단 걸 산님들은 경험했을 터다. 산은, 자연은 어설프게 아픈 우리의 육신을 치유하는 젤 영험한 종합병원이라.  부산에 머물 땐 우린 필히 장산엘 올거다. 시건방떨지 않음 힐링처로 장산만한 곳도 드물 것이다. 산수자명이라고 산세의 장점은 골고루 품고 있어서다.

2018. 01. 14

 

겨울인데도 휴일의 장산체육공원은 인파로 붐볐다

이가의 산은 명품송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