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걸어가는 길 - 산행기

철새들의 낙원 & 백마고지엘가다

 

철새들의 낙원 & 백마고지엘가다

 

 

혹한의 날씨 속에서 여행을 떠난다는 건 용기가 더 필요하다. 길들여진 포근한 일상을 뛰쳐나와 혹한의 설원을 걷는다는 건 안방에서의 로망으로 끝나기 쉽다. 허나 강추위에 배낭 짊어지고 집을 나서면 의외의 맛깔과 멋들어짐에 풋풋해진다. 그제에 이어 오늘도 철원비무장지대를 향한다.

 

 DMZ평화열차. 3량의 열차 중 한 량은 송두리째 우리부부전용이 됐다.

 

겨울한파에다 DMZ란 을씨년스런 선입감은 겨울여행의 또 다른 별미를 가져다줘서다. 게다가 인파가 없어 삭막한 설원을 미친개처럼 훑고 다녀도 괜찮은 해방구일 수도 있어서다. 서울역서 철원백마고지를 향하는 평화, 사랑, 화합을 원색으로 형상화한 꽃단장열차 한 칸은 아내와 나만의 공간이 됐다.

 

 아침의 한강변 풍경

 

50석의 열차 한 칸을 송두리째 차지한다는 건 기분 좋기에 앞서 어째 맹맹하고 미안키까지 했다. 9시반에 출발한 열차는 두 시간을 논스톱으로 달려 11시 반 넘겨 백마고지역에 몸을 푼다. 이윽고 연계된 셔틀관광버스에 오르는데 총인원이 9명이였다. 긍께로 딴 칸에 탔던 7명은 어느 동네꼰대들과 부인들인 듯싶었다.

취수탑. 6.25전쟁 때 군부대 취사용수 저장고

 

두루미마을회관에서 한식으로 점심부터 때웠다. 정갈하고 담백한 식단은 울 부부의 입맛에 맞았다. 1시에 백마고지전적비 탐방길에 들었다. 백마고지는 DMZ내 북측지역에 가까워 탐방할 순 없어 전적비가 있는 언덕에서 조망해야 했다. DMZ평원에 동산처럼 솟아오른 395고지가 백마고지(白馬高地)'.

 

백마고지전승탑 오르는 길엔 자작나무숲 열병을 받는다 

 

1952106, 중공군의 대공세로 10일간이나 계속된 백마고지 전투는 약 30만발의 포탄이 퍼부어졌고, 14천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중공군 2개 사단이 흙밥 된 채 고지의 주인도 24번이나 바뀌었단다. 처참한 전투는 산등성이를 시체와 흙먼지로 뒤덮여 하늘에서 조감하면 마치 백마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이라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단다.

백마고지전망대의 종각, 전망대서 사진촬영은 금지

 

30만발의 포탄이 투하됐으니 그럴 만도하다. 이때 여기서 승리한 국군 9사단을 백마부대라고 칭하게 됐다. 백마고지 주위에는 김일성고지(고암산), 피의 500능선과 오성산, 낙타고지, 아이스크림고지 등 전투접전지가 하늘금을 긋고 있지만 사진촬영금지였다.

 

전승탑

 

미군이 핵무기 가상표적으로 삼았던 철의삼각지대 꼭지 점 평강고원은 북한지역에 아스름하다.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 Zone : 철원평강김화)'에 속했던 약2억평(661㎢)에 달하는 철원평야도 초토화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철원평야의 드넓음에 어안이 벙벙했다.

백마고지 뒤의 피의 능선들

 

강원도 첩첩산록에 이렇게 큰 분지와 평야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안했다. 궁예가 백제의 부흥을 꿈꾸며 도읍지로 정할만했고, 김일성이가 여기를 빼앗겨 사흘밤낮을 뜬눈으로 앓았다는, 한반도의 중심에 천혜의 평야였다. 반시간을 달려도 편편한 들판을 멀리선 산준령이 휘둘러 쳤고, 논바닥은 수천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운집하여 잔치마당을 벌렸다.

 

철원평야의 한가로운 철새떼

 

놈들은 어쩌다 신바람이 낫던지 한두 놈이 비상하면 우르르 따라 훼를 치고 군무를 추다 창공에서 유유히 향수를 달래나 싶었다. 놈들의 고향은 어딜까? 어떤 농부는 놈들이 성가셔서 추수 때 떨군 이삭을 감추려고 논바닥을 갈아엎어 철새를 쫓아내자 지자체서 약간의 보상비를 주며 철새보호구역으로 겨울나게 한다.

평화전망대 오르는 길목의 철책

 

 

놈들이 AI전염 탓에 멸시의 동물일지 모르지만, 버려진 이삭 줘먹고 천연비료인 분뇨를 선물하며, 황량한 겨울들판에 잔치판을 벌려 관광객을 부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을 텐데다. 그렇잖아도 사진애호가들한테 하루1만원 받고 대여해 주는 움막들이 언덕길에 즐비했다.

 

이태준문인 기념비

 

사진애호가들은 진종일 철새들과 놀아나다 놈들의 기막힌 춤을 혼자보기 아까워 사진기에 담아 세상에 전시한다. 놈들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춤사위는 멋진 그림으로 남아 밝은 세상을 선사하는 셈이다. 평화전망대앞에 동송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에선 낚시나 그물질을 할 수가 없다.

 

물고기의 천국, 동송저수지

 

여기사는 물고기는 자연사로 일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비무장지대여서다. 물고기들의 천국이다. 생각해보면 진화의 절정에 있는 인간처럼 잔인한 동물은 없다. 평화전망대 앞에서 드넓은 DMZ지대를 조망하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누굴 위해 전쟁을 하고, 과연 전쟁은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를 담보해 주는가? 하는 회의가 뭉클 솟는다.

 

낙타고지

 

 허욕의 광기에 찬 독재자들 탓에 전쟁의 공포는 생산된다. 평화전망대 오르는 길목에 초라한 비석 하나가 숲에 묻혀있다. 올라가보니 박정희전대통령이 여기 왔다 간 걸 기념하는 표석이었다. 김일성부자가 가는 곳마다 기념물을 남기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독재의 흔적인 것이다. 또 어딘가 길가 숲에 버려진 듯싶은 낡은 정자가 있는데 박세직장군이 재직 때 만들었단다. 박정희뽄 딴 짓일 테다.

 

 

 

그 돈으로 불우이웃에 쓰던지 철새먹이라도 사주는 게 인간답다. 더구나 자기호주머니 돈으로 만들지도 안았을 터다. DMZ근방은 국방부허가 없인 전답도 맘대로 경작할 수도, 건물을 지을 수도, 사진도 함부로 찍을 수가 없는 곳이다. 독재아류들이나 가능한 허상인조물들이라.

 

길목마다 군 검문소, 몇 군데서 검문을 했다

 

오늘 네 시간정도 버스로 이동하며 이곳저곳 탐방했는데 검문하기 몇 번이고, 어떤 땐 군인이 동승하기도 했다. 더는 DMZ안보관광일정에 명기된 멸공OP탐방은 부대사정이라고 입구에서 거절당하기도 했다.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사전에 통보를 하여 허탕치게 안했어야 옳다. 일방적인 독단은 국방부와 코레일의 약속파기고, `군을 불신케 하는 이적행위다.

 

 

오늘DMZ일정은 공짜가 아니다. 비용을 지불했는데 OP탐방 대신 평화전망대로 바꿔치기함서 전망대모노레일탑승비용을 추가 징수했다. 사기행위라고 해도 할 말 없으렸다. 아내와 난 도보로 올랐지만 꼰대들은 두털댔다. 멸공OP부대장은 정신 바짝 차려 '약속'을 되씹어야 할 것이다. 금강산철교탐방에 들었다.

허가 없이 말뚝 하나도 박을 수 없는 곳에 박정희비망비는 독재의 산물(?) 

 

검문소에서 군인 두 명이 탑승 감시 속에서다. 갈수기 한탄강은 얼음판이고 철교는 녹슨 채 포도시 저쪽 강 건너까지만 이어졌다. 철교중앙서 왼쪽강벼랑을 훑는다. 겸재선생의 임진적벽도를 낳은 장소라 서다. 근디 돼지눈깔로는 도시 이미지가 떠오르질 않는다. 천재들의 심미안을 어찌 따를 텐가?

 한탄강의 끊긴 경원선철교

 

다만 금강산을 오가는 길목이라 선생은 여기 잠시 쉬면서 붓을 들었을 테고, 나도 선생이 머문 자릴 스칠 거란 상상의 나래 짓을 해봤다. 언제 이 철로는 이어져 금강산구경을 기차타고 하게 될까? 경원선복원공사를 하다 MB정권 때 중지한 현대건설현장사무소와 물자들이 공사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교다리에 나무데클 깔았다 

 

절단 난 경원선은 6.25전에 이미 망가졌었단다. 일제가 태평양전쟁말기 무기 만들 쇠붙이를 강탈하며 철로도 때갔다는 거다. 김일성`정일보다 더 무지막지한 놈이 일본전쟁광들일지 모른다. 두루미관 옆에 인적 끊긴 월정리역사가 있다. 역사 뒤엔 폐품고물이 된 앙상한 열차가 있는데 돈 될 만한 쇳덩이를 때어 간 탓이란다. 한심스런 일이다.

 

겸재의 임진적벽도의 이미지가 된 한탄강벼랑

 

복통 터지는 곳은 노동당사도 마찬가지다. 노동당사는 해방 후 북한공산당이 남한의 공산화를 위해 건축한 남로당사로 6.25전까지 사용한 유일한 건물이다. 전쟁 땐 수많은 선량한 백성들이 공산군에 끌려와 학살당한 악명 높은 건물이기에 보전해야할 가치도 비례할 테다. 헌데도 언제 폭삭 무너질지 모르게 방치된 꼴이다.

보전가치가 있는 노동당사

 

별 볼일 없는 기념물은 세우면서 말이다. 드넓은 철원평야를 겨울철엔 철새보호구역으로 가꾸고, 전쟁의 상흔들에 많은 관광객들이 보다 쉽게 접해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상에 유일한 독보적인 휴머니티생태공원을 그려봤다. 자연 지자체의 관광수입도 짭짤할 테고~! 오후4시 넘어 백마고지역사에서 찰흑미2포를 사서 열차에 올랐다.

 

노동당사복도, 북괴는 쫓기면서 수많은 포로들을 여기서 처형했다

 

올 때처럼 달랑 1호차에 아내와 나뿐이다. 한중정상회담뉴스가 쏟아졌다. 사드문제를 미국과 중국한테 떠넘기는 비책은 없을까?하고 내 나름 멍청한 생각을 해봤다. 까놓고 보면 미국이 김정은일 팔아 우리한테 무기장사 하는 셈이다. 사드유무에 관계없이 전쟁발발하면 남북한 모두 멸망한다는 사실 모를 리 없다.

 

 

긍께 트럼프한테 사드철수하라고 해야 한다. 대신 시진핑은 우리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던지, 북한이 핵개발 포기하게 해야 한다. 김정은이 목을 비틀자는 시진핑 이어서다. 시진핑이 못 하겠다면 미국더러 성주가 아닌 백령도에 사드기지 만들게 한다. 시진핑 턱에 미사일 조준하는 격이다.

 

월정리역사 뒤의 잔해만 앙상한 열차

 

미국이 사드철수핑계로 우리와의 상호방위조약을 파기할순 없을 테니 미`중 사이에서 콩고물 챙기면 된다.   

1962년 쿠바미사일위기 때 후르쵸프와 케네디가 뒷마당외교로 케네디가 후르쵸프한테 떡 하나 주면서 미사일철수 시키고, 케네디는 턱 밑의 핵을 제거 위기탈출하며, 카스트로는 떡고물 챙겼듯이 말이다. 케네디의 용단이 주요 했던거다.

 

투루먼미대통령과 유엔군사령관을 쥐락펴락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배짱과 외교술이 그립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핵전쟁에서 우리는 콩고물 챙기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경원선은 하루속히 연결되어 금강산구경하면서 철원평야의 철새의 기막힌 퍼포먼스를 보고 싶다.

2017. 12. 15

 

 

백마고지전승탑

백마고지에서 출토된 탄피를 녹여 만든 고지전사관의 부조판

백마고지전망대의 종탑

 

일제강점기에 세운 도로원표;

철원이 교통,행정의 중심지며 농축산물의 집산지였단 걸 입증하고 있다

벽돌건물인 노동당사,  붕괴위험에 철파이프로 버티고 있다

한탄강지류

평생 일부일처인 제두루미부부.

철저한 가족단위생활한다. 가끔 홀 수 단위는 새끼 아님 짝 잃은 놈이란다

평화전망대소 본 DMZ

희미하게 김일성고지가 아른거린다

드넓은 철원평야

낙타고지 좌측 앞 산자락이 백마고지 시작능선

지뢰지역

 

어떤 어획도 금지 된 동송저수지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경원선철마

 

끊긴 경원선의 마지막 월정리역사

신탄리역의 취수탑

신탄리역 유류저장고

울 부부만의 평화열차 한 칸의 내부

차창으로 얼굴내민 도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