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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햇살스콜이 빚는 황홀한 만추 - 불갑산

햇살스콜이 빚는 황홀한 만추 - 불갑산

 

 

추석 이전부터 근 반 년간 선친산소를 찾지 못해 남녘을 향한 김에 아내와 난 영광산소 성묘길에 들었다. 잔디 아닌 띠밭이 된 봉분을 대충 다듬고 속죄의 재배를 올렸던 우린 불갑사의 만추길을 걸어보자고 별다른생각 없이 고찰을 찾아 들었다. 근디~!   

 

불갑사를 안내하는 갓길의 벚나무들은 홀라당 깨벗고 서서 갈색이파리 몇 장을 흔들고 있었다. 만산홍엽은 아니더라도 단풍끝자락 기대는 품고 있었던 건데 가을이 정녕 이리도 깊었나? 싶어 허잡했다. 근디~!

 

 꽃무릇이파리는 푸르디푸러야만 상사활 잉태할 수 있능가?

 

청보리밭이 벌써 저리 짙푸를까? 진초록융단이 깔린 길섶을 달리며 수상쩍은 낌새에 아낸 "여보, 뭔 보리밭이 길가만 저렇게 푸르당가?" 상사화만 본 아낸 찬 기온일수록 청초하게 단장하는 꽃무릇을 알 턱이 없으렸다. 근디~! 

 

진녹색의 꽃무릇밭이 불 붙다니?

650살 된 귀목이 종지기 하는 불갑사 

 

차를 주차장에 내동댕이 치듯하고 청보리밭(?)으로 달려간 아내 왈,"이게 상사화란 말이요?" 꽃무릇은 찬바람과 맞짱두려고, 눈보라를 이겨내려고, 얼음장구들속에서 생미라가 되면서도 더욱 푸르고 악착같이 검초록으로 멍드는 까닭은 산통 속에 낳은 님을 보기 위해선데-. 근디~!

  

불갑사경내의 느티나무연리목

 

 

가을이 벌겋게 불타서 그 뜨거움을 나무를 통해 안은 꽃무릇은 겨우내 담금질을 해서 해동이 되면 불꽃대을 쏘아올린다. 불꽃대을 쏘아올리느라 기력이 쇠한 꽃무릇이파리는 그 불꽃이 미쳐 타오르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근디~! 

 

나무야 훨훨타라, 발등의 불은 내가 끄마 - 꽃무릇바다

 

혹독한 겨울을 나며 쏘아올린 불꽃대의 꽃망울을 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가는 꽃무릇이파리. 상사병 탓일까? 핏덩이 찢어지는 듯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이파리가 지금 불갑산자락을 쫘악 시퍼렇게 물 들여놓곤, 타라! 나무야, 훨훨 불타라! 나무야!

 

여우굴도 불이 붙었는데~?

불 붙은 산길엔 인적마져 뚝 끊기고~! 

까맣게 그을린 쉼터

 

꽃무릇밭에 화톳불처럼 불 붙은 나무들한테 햇빛마져 스콜인냥 번개처럼 쏟아지는~! 아! 이 황홀경을 상상이나 했던가~! 뉘가 불갑산은 상사화가, 꽃무릇이 아름답다 했던가?

번들번들 윤기 흐르는 진녹색의 꽃무릇잎을! 그 진초록바다!를 체감했는가?  

 

햇살스콜이 쏟아진 만추의 계곡

 

세상에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들이 하 많다. 가 보고, 또 가보고, 다가서서 보고, 다시 다가서 찬찬히 마주보면 비로써 속 살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사랑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속 살들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신비하고 독특한 속내를 갖고 있다. 그걸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고 맹숭맹숭 지나쳐버리는 장님은 심각한 마음의 장님이라. 그들 속내의 숨 쉼을 들으려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의 귀머거리다. 살아있다는 건 뭔가? 보고 느끼며 감동 할 줄 알기 위해 우리는 생존하는 인간이 아닌가!

 

 

600여년 살아 온 느티나무도 불 타 알몸뚱이만 덜러덩~!

 

불갑산의 황홀한 만추의 풍정은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케 하는 예기치 못한 자연의 선물이었다. 오감이 살아 숨쉬는 기쁨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짓물러터져버릴 것 같은 꽃무릇잎들! 무서우리만치, 시퍼런 오기로 번들거리는 속내는 한 송이 꽃을 피워내기 위한 담금질아닌가~!

    

 

 

 

단풍이, 불갑산의 단풍이, 만추의 황홀경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능가! 내 고향 불갑산의 가을이 이토록 멋질 줄을 상상도 못했었다. 유명세를 치루는 상사화축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을불갑산을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다. 근디~!

 

햇살스쿨을 맞는 가~ㄹ나무들과 여인

 

고향도, 산소도 등한히 하는 내게 불갑산이 빚을 수 있는 최상의 이쁨을 펼쳐주는 시혜는 나의 노스텔지어혼을 각성시키기 위함인가? 내를 버리기엔 아직 아깝다고, 자식은 평생동안 챙기는 게 부모란 걸, 수도암에서 불공들여 얻은 육신이란 걸 깨우쳐주는 걸가? 근디~!

 

 

살아있는 한 생명체를 아는 건 그것의 우주를 품는 일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모르고 있었던 무한한 세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숨쉬는 생명은 누구나 고향이 있다. 고향은 자연일 것이다.

 가뭄에 포도시 배꼽 아래만 가린 불갑사저수지

종루와 북고

불갑사부도밭


 나의 고향 불갑산은 참으로 축복받은 곳이다. '부처님 뫼신 사찰 중에서도 갑'이 아니던가!    

* 불갑산주차장~불갑사~동백골~구수재~수도암

              2017.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