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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빨리 가는 수밖에~” 영화<채비>를 보고

빨리 가는 수밖에~” 영화<채비>를 보고

 

 

영화 <채비>는 시한부 어머니(고두심)가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김성균)을 두고 이별할 준비를 하는 내용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엄마의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하고 소중하다. 사람이 되는 건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의 양과 교감의 깊이를 통해 하나의 인격체가 된다. 엄마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성장한 우린 힘 부치고 마음이 아플 땐 엄마를 부른다.

 

 

그런 엄마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채비>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모자간의 담담한 일상으로 관객을 흡입시킨다. 영화는 모자가 이별을 준비해 가는 일상을 실제생활에 착근시켜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막연하고 애처로울 것만 같았던 이별의 순간을 슬퍼할 수만은 없는 현실의 무게가, 남은 아들과 누이와 문상객 모두에게 글고 관객들을 공감케 하는 감동에 이르게 한다.

 

 

<채비>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조영준 감독이 결국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은 언젠가 닥칠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라고 했다.

 며칠 전, 남녘여행을 할 때 P형님댁을 방문했었다. 10년 연배인 P형님과의 교분은 20여년이 넘어 친형제간 이상인데 4년 전부터 파킨스병을 앓고 계신다. 설상가상으로 형수님은 더 오래전부터 녹내장으로 반실명(半失明))이시다.

 

 

P형님은 근면과 성실, 절약만으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서민이다. 상가원룸건물은 년 소득1억대를 넘기고, 슬하의 32녀를 모두 출가시켜 직장에 다니는 다복한 부자(富者)셨다. P형님이 파킨슨지병으로 재작년에 부동산을 매도하여 10억여원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P형님은 보수적이라서 남존여비관념이 강고해 매사에 아들 위주여서 자매간, 부모자식간에 분란이 생겨 맘고생을 어지간히 하셨다.

 

 

어찌됐던 자식들에게 각각5억원상당의 아파트를 소유케 하였고, 그들 모두가 성실한 직장인들이니 자식들한테 채비는 할 만큼 한 셈이다. 근데도 자식들은 독존엄친을 썩 좋아하질 않는다. 자주 찾아오지도 않을뿐더러 금년 초엔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요양원에 강제입원 시키기도 해, 내 딴엔 P형님이 채비를 잘 못했나 싶기도 했었다.

 

용산아이파크몰에 cgv가 있다

 

모든 면에 철두철미하여 실수가 없기로 정평이 난 P형님이지만 아내와 자식들과의 채비는 옆에서 보기엔 어설프다. 거동이 불하여 아내의 부측에 의존하는 생활이면서 아내생각은 눈꼽만치도 않는다고 형수님은 늘 불만이시다. 연노한 아내가 반실명이니 도우미나 파출부를 고용해서 좀 편히 살게 해야 형님도 좋을 텐데 말이다.

 

 

돈 쌓아놓고 어디에 쓰려는 건지? 자식들한테 더 남겨주려는 건지? 우리부부는 P형님께 시간제 도우미라도 써 형수님 편하게 하시라고, 그게 채비 잘 하시는 거라고 입방정(?) 떨었다. 자릴 털고 일어서는 우리내외에게 형수님이 따라 나와 엘리베이터에서 빨리 가는 수밖에 없어~”라며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셨다. 또한 "아들놈들 다 필요 없어~"라고 자조하신다.

 

형수님말씀은 진정이었다. 아들들한테 얼마나 실망했으면, 남편이 얼마나 성가시게 굴면 막말을 실토할까?

가족들로부터 빨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의 일생은 실패한 채비일 것 같다. 채비는 특별한 게 아닐 것이다. 자식들한텐 일상의 삶에서 자립할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갖추도록 체득하고 공감하게 하는 게 최우선일 게다.

많은 유산보다는 배려하고 용서하는 마음수련이 행복의 길이란 걸 터득케 하는 삶이, 편하게 헤어지는 채비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영화 <채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누구에게나 한 번은 찾아오는 이별을 맞이할 우리의 이야기로 공감을 이끌어낼 휴먼시네마였다.

나무들도 탈색되고 쪼그라진 이파리 몇 개마져 떨쳐내며 이별채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싹 튀고 꽃 피우면서 채비를 준비한다. 혹독한 겨울나길 해야 살아남는, 아니 한 해가 깡그리 이별하기 위한 채비의 삶일것 같다.

2017. 11.

 

용산아이파크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