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낌~ 그 여적

창밖 그의 몸짓에서 사계(四季)를~

창밖 그의 몸짓에서 사계(四季)를~

내가 사는 돈의문센트레빌 204동아파트 앞엔 오밀조밀한 쉼터가 있다. 배드민턴코트와 몇 가지 운동기구가 짙은 녹음 속에 붙박인 공간은, 안산 오르는 길을 사이에 두고 경기대와 경계를 그었다. 고만고만한 정원수들이 좁은 하늘을 차지하려 바등대는 데 유독 우뚝 솟은 메타세쿼이아 한 놈은 아파트6층 창안 까질 갸웃거린다.

놈이 언제부터 웅지를 틀었는지 알 수 없으나 여태 가지치기 한 번 당하지 않고 맘껏 활개를 펼치고 있어 행운목이란 생각도 드는 거였다. 놈은 4월에 들어서기 무섭게 무성한가지에 연둣빛 싹을 틔우는데 바늘침엽은 틔자마자 위쪽 잎에 햇볕을 앗겨 비실비실 낙엽(?)이 된다. 그 낙엽 아닌 낙엽이 꽃씨인냥 떨어지면 매미들이 음악회를 열려고 한 놈씩 목청을 가다듬다 성원이 됐다싶음 합창을 한다.

놈들의 코러스는 새벽, 한낮, 석양에 절정을 이루는데 한여름 밤엔 취침시간에 한 번 더 서비슬 한다. 이글거리는 대기 속에 청아한 세레나데는 더윌 쫓는 청량제 역할도 하고, 놈들이 짝 찾느라 목청다듬는 구성진 가락은 나의 옛청춘을 회억해 보는 풋풋한 상상의 나래짓을 하게 한다. 하지만 울 식구들이 젤 싫어하는 새벽5시의합창은 다디단 새벽잠을 깨우는 웬수의 소음이 된다.

간덩이 부풀대로 부푼 어떤 놈은 방충망에 달라붙어 고래고래 악을 쓰기에 매미 쫓아내는 파리채를 창가에 비치해야 했다. 메타세콰이아는 매미의 오케스트라연주장이다. 초록침엽이 유난히 반들거리는 새벽은 비가 내리고, 축 처진 이파리가 미친년처럼 흐느적거리면 소나기가, 봉두난발로 날뛰면 세찬 비바람에 태풍이 오고 있단 걸 알려준다.

실 고층 아파트일수록 무한대의 공간이라 일기상황 읽기가 어려운데 메타세콰이아가 온 몸짓으로 기상중계를 하고 있음이다. 보름여동안 경박하게 떠돌다 상처입고 돌아온 나에게 놈이 스르르 인사하는 건 소슬바람이 살갗에 닿아서일 테다. 극성인 매미들은 다 어디로 보내고 심심하단 듯 놈은 하늘거리고 있다?

놈의 가을은 스산하고 사뭇 애처롭다. 노랗다말고 황갈색으로 찟긴바늘잎은 낙엽 같지도 않게 땅위에 쌓여서다. 글다가 설한풍 휭휭 몰아치면 앙상한 가지들 격렬하게 몸부림치다 낙상하는 게 처참하기까지다. 어느 늦가을엔 태풍에 대들다 내 허벅지만한 팔이 찢겨 다음해까지 매달고 있었다.

서울엔 적설량이 적은데다 고층건물사이 바람결은 얼마나 매섭던지 날씬한 몸뚱이에 흰 눈 쌓인 걸 보지 못했다. 하얀 눈이 쌓인 놈은 아주 근사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될 텐데~! 하얀 눈꽃송이 주렁주렁 매달고 거인처럼 우람하게 서서 동장군노릇 하면, 우린 겨울창에서 마주한 채 긴 겨울의 기도를 공유하지 싶은데~.

화석으로 선뵈었던 메타세콰이아는 1946년 중국에서 발견, 미국을 거처 우리나라 정원수로 사랑받는다.  놈의 왕성한 성장력과 훤칠한 키, 침엽은 피톤치드를 뿝는 멋진 숲을 이뤄 번창일로다. 초겨울에 들면 놈들은 그냥 홀라당 옷 벗어 땅에 겨울이부자리 깔고 숨 죽인 채 매미들의 오케스트라를 꿈꾸고 있을랑가?

2017. 0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