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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4) 사자들의 호곡소리 만리장성엘 가다

베이징서 보름간의 기행(紀行)

 

4) 사자들의 호곡소리 만리장성엘 가다

 

 

베이징에서 북서쪽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거용관(居庸关, Jūyōngguān)장성이 있고, 70km거리에 팔달령장성이 있는데 전자는 도보로, 후자는 케이블카로 등정할 수 있다. 우리내외와 막내는 창평구에 설치된 천하제일웅관이라고도 불리는 난공불락의 아홉 요새인 거용관장성을 트레킹하기로 했다.

 

 

도보라서 관광객이 적고 험준한 협곡의 요새면서 북경의 관문이라 호기심이 더했다. 거용관입구의 옛 막사건물들은 장성축조시의 숙소였다가 후에 장성호위군사들 막사였단다. 본격적인 장성에 오르면 모택동이 일갈했다는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탕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글귀가 입석에 초서체로 휘갈겨 있다.

 

'부도장성비호한'이란 모택동의 초서체 휘호비석

 

1505년에 축조되 거용관은 북경에서 몽골이나 서역으로 통하는 요충지관문으로, 팔달령장성 앞 험준한 협곡지점에 세워졌다. 장성 기슭의 장성박물관문 관청 내벽에 산스크리트, 서하, 티베트, 위구르, 바스파, 한자의 6개 문자로 쓰인 다라니 경문과 사천왕 등의 조각이 남아 있다.

 

 

장성을 오르는 성벽은 다듬은 돌과 흙을 빚어구운 벽돌들로 바위능선위에 쌓았다. 따라서 돌들의 규격이나 두께가 일정치를 않아 계단 높낮이가 불규칙해 오르내리며 여간 조심해야 했다. 이 가파른 협곡 바위능선에 무거운 돌과 벽돌을 날라다 성벽을 쌓는다는 일이 상상을 절하기에 인류의 불가사이한 축조물로 유네스코문화재로 등제됐을 테다.

자금성에서 만났던 남매, 마지막황제 푸이를 닮았다고 난 꼬맹일 푸이라 불렀는데 만리장성에서 다시 조우했다. 뒤 망루가 제6망루다

 

십여 년 전 백두산행 때 시간 없어 잠시 걸어본 장성은 그대로였지만 관광인파는 부쩍 늘었다. 그때나 이제나 내 멍청한 대가리론 이 장성이 인류에 도대체 얼마나 필요한 것 이였나? 이다. 흉노를 비롯한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편 이였지만 그들과의 전쟁으로 죽어간 병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인부들이 장성을 쌓느라 죽어나간 어처구니없는 토목공사여서다.

박물관 & 망루

 

내가 밟고 오르는 장성은 어쩜 시체들의 무덤일 수도 있다. 장성축조에 강제징용된 사람들이 혹사당하다 횡사하면 그대로 돌무더기 속에 묻어버렸던 헤아릴 수도 없는 영혼들 말이. 진시황이나 역대 왕들이 백성을 위하여 쌓은 성벽이 아니라 자신들의 호화호위를 위해 횡포부린 비극의 상징물일 것이다.

장성에도 사자의 피빛추색이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비명에 간 사자의 후예들이 선조의 핏값으로 관광이란 이름의 돈벌이를 하고 있으니 중국인민들은 복 받은 행운아들일까? 사마천은 말한다.

"그대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장성 아래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을!"이라고. 또한

 백성을 고달프게 만든 만리장성 공사에 앞장 선 몽염은 죽어도 싸다고까지 극언한다. 몽염은 시황제의 만리장성축조에 감독관으로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사마천의 사기회남왕전사내아이를 낳으면 절대 키우지 마라. 딸을 낳으면 산해진미를 먹여 키워라.” 는 말도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골수에 밴 중국에서 오죽하면 이 말이 회자 됐을까?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도 우린 곧잘 한다. 스피드시대에 연애도, 잠자리도 쇳불 달군 김에 해치워라, 는 비아냥 투의 시쳇말일 것이다.

 

 

허나 그 얘기엔 애틋한 사랑과 무시무시한 흉계가 숨어있다. 결혼 1년차 신혼부부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남편은 만리장성축조에 강제징용 돼 갔다. 그리움과 분노에 잠 못 이룬 부인이 한동네에 사는 노총각에게 은근한 추파를 던진다. 몸이 달은 노총각이 야밤에 부인 방에 숨어들고, 불덩이 몸으로 부인을 안으려하자 은근슬쩍 제지하며 하나 부탁할 게 있습니다. 들어주시면 잠자릴 하지요” “들어주다 말다요. 어서 말 하세요라고 속삭댄다.

 

 

장성 쌓는 곳의 남편한테 편지 한 번 전해주시면 합니다” “그게 뭐 그리 어렵다구요, 낼 당장 다녀오지요” “남편한테 편질 주고 남편이 거기 잠시 머물러 달라면 그리하셔야 합니다

노총각과 부인은 약조를 하고 밤새도록 뒤엉켜 장성을 쌓느라 헉헉댔다. 담날 노총각은 만리장성 쌓는 곳을 찾아가 남편에게 부인의 편질 전한다.

 

 

편질 읽은 남편이 옷가질 벗어 노총각과 바꿔 입곤, 잠깐 여기 있어달라고 부탁하곤 뺑소닐 처 귀가했다. 노총각은 남편대역이 돼 평생을 성 쌓다가 죽었다. 그 노총각은 글을 모르는 문맹 이였던 것이다. 하룻밤 여인과 놀아난 대가로 만리장성 쌓다가 죽어간 거였다.

 

 

거용관장성엔 아홉 개의 망루가 있는데 우린 다섯 개만 답사했다. 급살 맞게 가파른 벼랑바위계단에 아내와 막내가 손들었다. 사실 성벽에 고정된 안전용 파이프에 의지하지 않곤 오르내리기 어려운 위험한 계단이었다. 10m쯤 오르다 멈춰서 거대한 이무기가 승천하는 듯한 성벽을 훔치고, 안무에 숨바꼭질하는 험준한 준령과 협곡의 풍정에 빠져들었다.

 

 

한마장의 시원한 바람결에 번지는 오색추색의 화폭 앞에서 땀 훔쳐내는 낭만이 없다면 만리장성트레킹은 고역뿐이라 할 것이다. 역사란 건 참 아이러니하다. 사람을 젤 많이 죽게 한 폭군들을 위대한 인물로 묘사하기 땜이다.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고 전쟁은 곧 죽임의 광란이였던 것이다.

 

 

지금도 핵전쟁 어쩌고저쩌고 독설 퍼붓는 매파위정자들이 전쟁 나면 맨 앞장 설 것처럼 기염을 토한다. 벙커에 처 박혀 입으로만 떠들고 죽음의 현장엔 국민들이다. 전쟁발발하면 지가 젤 먼저 죽는다면 화해에 골몰할 거다. 문제는 전쟁 후도 달라지는 게 별로인 허무다. 시체들의 통곡일까? 바람소리가 성벽을 타고 울고 있다. 그 울음 속을 내려왔다. 2017. 10. 20

 

만리장성용병들의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