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서 보름간의 기행(紀行)

 

6) 조선궁녀들의 한이 서린 자금성

 

 

황제의 집무실인 태화전

 

자금성((紫禁城.자주색의 금지된 성)()’는 북쪽별자리인 자미원(紫微垣)에서 유래한 것으로 옛날 천제(天梯)가 자미원에 살고 있고, '자궁(紫宮)'은 하늘궁전을 이름이다. 황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라 칭했고, ‘()’은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라 누구도 허락 없이 출입할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천안문광장에서 본 화단 속의 천안문(오문)

 

 그 자금성에 돈 몇 푼주고 들어섰다. 모택동초상화가 걸린 오문(午門)을 통과하면 태화문이 있다. 오문은 황제전용이다. 태화문을 나서면 나무 한 그루 없이 엄청 넓은 돌바닥 저만치에 태화전이 거만하게 버티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의 황실 - 자금성인 것이다.

태화전마당에서 본 오문후면

 

자금성경내 돌바닥엔 특별한 벽돌이 깔려있다. 누군가가 걸으면 경쾌한 발소리음향이 난다. 불순분자들의 침입을 차단하려는 방책이고 정원수 하나 없음도 암살자의 은신을 막기 위해서다. 한 장의 거대한 판석에 용 문양을 새긴 중앙어도(御道)는 지금도 출입금지다.

어도, 판석 한 장에 무양을 새겼다

 

자금성은 명성조 영락제(永樂帝)가 수도를 남경에서 천도하여 수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동시에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처형한 현장이기도 하다. 그 피비린내 나는 살상 중에 궁녀와 환관 3천여 명을 살해한 참혹한 비극이 있다. 비극의 주역에 조선의 젊은 여인(궁녀)들과 환관들이 있었다.

자금성엔 은패물이 될까 싶어 나무 한 그루 없다.

 

 나는 600여 년 전에 조선의 애먼 청춘들이 처형을 당해야 했던 드넓은 황궁 안을 서성대며 그 원혼들을 생각해봤다. 명나라태조 주원장의 후궁 중에 조선의 비빈들이 있었고 영락제는 그 조선인공비의 소생 이였다. 조선혈통을 지녀선지 영락제는 여차하면 조선국왕에게 공녀를 보내라고 재촉했다.

자금성 둘레엔 폭 50m의 해자가 있는데 그 해자와 연결된 궁내의 도랑과 돌다리

 

하명 받은 조선왕은 전국에 혼인금지령을 내려 미녀를 선발한다. 허나 어느 누가 딸을 명나라궁녀로 보내겠는가? 처녀들은 삭발하고, 얼굴에 흉터를 만들며 숨어버리자 국법으로 엄단했다. 1408년엔 지방관리들한테 명령을 내려 이쁜 처녀들을 색출하라도 닥달한다.

 

권비(18세)와  17세의 임씨(任氏)와 이씨(李氏), 여씨(呂氏16),  최씨(崔氏14)성을 가진 미모의 여인 5명을 강제선발 한다. 또한 그녀들을 따르는 12명의 시녀와 12명의 요리사도 함께 수천리 떨어진 북경으로 끌려갔다. 가족들과는 영원히 생이별하게 된 사람조공은 영락제6년의 일이다.

 

 

왕이 짜잔하여 나라가 약소국이 되면 부녀자는 늘 봉변의 대상이라. 이무렵 영락제황후 서씨가 사망하자 가장 총애를 받던 권씨(權氏)가 현비(賢妃) 가 된다. 그녀는 미모에 총명하였고, 가무에 능했는데 특히 옥소(玉簫.피리)를 잘 불어 영락제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영락8(1410), 영락제가 대군을 이끌고 북방을 징벌하고 개선하는 도중에 동반한 권현비가 임성(臨城)에서 급사한다. 권비의 나이는 아마 22세였. 영락제는 권비를 산동 봉현에 묻고 지방관아에 분묘를 지키라고 명 내렸다.

실의와 슬픔에 빠진 영락제! 황제를 꼬시려는 여인의 질투가 참혹한 살상극으로 번진다. 당시 궁중에는 여()씨 성을 가진 두 명의 조선궁녀가 있었다.

 

두 여씨는 서로 반목하다가 여씨가 권현비가 마시는 차에 독약을 넣어 독살한 것이라고 고여가 무고한다. 하여 영락제는 여씨와 관련된 수백명의 궁녀와 환관을 죽여버렸다.

글고 영락18(1420)에는 아끼던 왕귀비까지 죽자 후궁을 잃은 슬픔에 빠진 영락제는 괴이한 소문에 울컥한다. 

 

고여와 궁인 어씨(魚氏)가 어린 환관과 놀아난다는 소문에 성정 급한 영락제는 불같이 화를 냈다. 참살당할 게 두려운 고여와 어씨는 자진 목매어 자살한다. 역정이 난 영락제는 친히 고여의 시비들을 심문하다 어떤 궁녀로부터 그들이 황제를 모살하려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게 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영락제는 친히 궁녀들에게 혹형을 가해 주살당한 궁녀가 약 2800명이었다. 어떤 궁녀가 죽임 당하는 그 자리에서 영락제를 욕한다.

"네가 나이가 들어 양기가 쇠하여 궁녀가 환관과 잘 지내는 것이 무슨 죄가 된다는 말인가?"라고.

 

그 후 궁녀들의 질시와 암투가 심해지자 황제들은 수십 개의 침실을 만들어 오늘 어느 궁녀침실에 드는지 모르게 했단다. 뿐이랴, 63세의 영락제가 죽자 조선궁녀 2명과 환관들은 순장까지 당해야 했다,이조실록은 기술하고 있다.

 

지금 내가 자금성을 관광하면서도 말이 통하질 않고 모든 게 낯설어 어설프고 답답한데, 앳된 처녀들이 만리타국에 끌려와 불안과 슬픔으로 전전긍긍한 삶을 살아야 했던 정황이 어찌 상상이나 되겠나?

영락제 후에도 명과 청은 조선왕에게 인신조공을 명했고,젊은 남녀는 강제선발 되어 자금성으로 끌려가 한 많은 일생을 살아야 했다.

 

자금성규모는 상상을 불허한다. 며칠간을 답사해도 부족할 테다. 허나 우리네 경복궁이나 창경궁을 답사하면 대충 감잡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궁궐이 자금성의 축소판쯤 될 터 여서다.

2017. 10.

 

건청전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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