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에서 보름간의 기행(紀行)

 

2) 톈안먼 광장(천안문광장:天安门广场)

 

인민영웅기념비

 

내가 베이징에 머물면서 천안문광장을 찾은 건 두 번이였다. 17일엔 공산당제17기 중앙전체회의가 열리고 있어 경계가 삼엄한데다 광장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내국인출입도 철저한 검문검색으로 방문객 줄서기는 꼬리가 안 보였다.

가을화원속의 천안문(좌측에서)

 

중국인민들의 느긋함은 질릴 정도다. 뉘 하나 조급해하거나 볼멘소리 없이 아니 느림의 미학에 도통이라도 한 사람들처럼 담소하며 줄선 삶을 즐기나싶었다. 만만디 풍정에 조급증 난 첫날은 먼발치에서 기웃대다 자금성으로 기어들었다. 열사흘 후에 베이징출장 중인 둘째가 묵고 있는 그랜드하얏트에서 28~29일 주말을 보내면서 천안문광장을 다시 찾았다.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

 

100만명이 들어선다는 천안문광장은 탱크 앞을 가로막던 어느 청년의 흑백스틸사진 한 장으로 내 뇌리에 각인 되어 있다. 198964일 천안문광장에서 수십만 명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진압을 위해 계엄군이 탱크부대로 무력진압을 시도하자 군중 속의 한 시민이 달려가 탱크를 막아서며 이내 올라탔었다.

모주석과 천안문

 

 무슨 꿍꿍이 속셈으로 탱크부대가 U턴 했던지 간에 그 사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청년이 탱크 앞에 섰던 곳이 어디쯤인줄은 모른다. 모택동초상화가 걸린 천안문지하도를 건너 광장에 들어섰다. 따스한 가을하늘은 미세먼지가 자욱하고 바람결도 몸 움츠리게 하는데도 드넓은 광장은 인파로 뒤덮였다.

19기 당중앙회기념 화원과 인민영웅기념비

 

28년 전, 덩샤오핑은 시위대 진압을 위해 519일 밤에 계엄령을 선포, 군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여 약 5,000명이 사망하고 30,000명이 부상당했던 비극의 현장이다(중국 적십자사 발표). 그 사건이 오늘날의 중국을 낳게 한 씨알이 됐을 것이다. 역사는 불행과 영광의 사이클링이다.

인민대회당

 

 덩샤오핑의 4대 현대화 과정의 실용주의정책은 빈부 격차와 언론 자유에 대한 불만 등이 함께 표출 사회주의의 충돌케 됐지만, 오늘날 중국의 눈부신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난 그 비극을 유추하며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 앞에서 인민대회당, 모주석기념당, 고궁박물관을 일별했다.

모주석 기념관

 

지금 당과 군을 장악한 시진핑은 모주석에 버금가는 스트롱맨이 돼 중국의 굴기를 견인하는데 인민들은 대체로 박수를 치며 큰아버지라고 호칭한단다. 부자들은 인민들을 위해 보다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는 시정에 공감하는 땜일 것이다. 그런 정부에 동조하는 국가와 글로벌기업은 거대시장 중국서 비약한다.

고궁박물관

 

한반도에 금방 핵전쟁이라도 날것처럼 설레발치다 사드에 발목 잡힌 우리가 안타깝기도 했다. 석양빛이 인민대회당홍기를 더욱 붉게 물들인다. 18년 전 백두산행 때 들렸던 천안문은 그대로였지만 욱일승천하는 굴기의 중국의 서기가 무섭게 느껴지는 거였다. 10년 후 중국은 과연 어디쯤에 있을까?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꾼 인민들은 여유롭고 활기차보였다. 공안원들의 교대식행진처럼 그들은 앞만 보고 전진할 듯싶었다.

2017. 10. 28

공안원들의 교대 열병

 

 

광장서 본 고궁박물관정면

인민대회당

 

모주석기념관

 

 

모주석기념관의 인민영웅조각상

 

 

 

천안문지하철입구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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