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들의 내밀한 사랑 터-창경궁을 찾아
짙푸른 하늘만큼 가을이 깊어지나 보다. 추석이튿날 울 내왼 창경궁나들이에 나섰다. 부드러운 햇살에 내밀한 사연을 활짝 열었지 싶은 고궁-창경궁의 비경을 어쩌다보니 오늘 엿보게 됐다. 창덕궁일원은 몇 번 산책했지만 워낙 넓어 별도로 입장하는 창경궁은 빠듯한 시간 탓에 건너뛰곤 했었다.
금천
창경궁과 후원을 들어서는 함양문앞은 사람꽃을 피웠다. 때깔 좋은 한복차림탐방객이 많아 명절분위기에 달뜨게 했는데, 이쁜 한복차림의 이방인이 많아 한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창경궁은 왕실여성들의 내전으로 여성들의 내밀한 희노애락이 켜켜이 쌓인 지밀공간인 셈이다.
통명전후원
애초에 성종이 세 황후(할머니,어머니,숙모)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지은 궁궐이었다. 전각 뒤 숲길을 5분쯤 걸으면 성종대왕태실(成宗大王胎室)비가 발길을 붙잡는데, 왕자가 태어나면 태반항아리를 전국각지의 명당에 안치하고 비를 세웠단다.
성종대왕태실비
태반을 안치하고 기념비를 세웠다는 사실은 세계사적으로도 유일무이한 기네스북에 오를만하다. 몇 백살 먹었을 귀목이 빼곡한 수풀들을 거느린 산책길을 걸으며 옛날 궁녀들의 조신스런 산보를 상상해 봤다. 숲길은 춘당지로 이어진다. 춘당지(春塘池)는 두 개의 연못으로 이뤄졌는데, 큰못은 원래 왕이 궁궐안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한 곳이란다.
춘당지
춘당지를 한 바퀴 휘도는 산보자의 낭만과 힐링의 맛은 옹골차서 창경궁이 얼마나 멋진 궁궐인지를 실감케 한다. 창경궁후원도 창덕궁후원처럼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자연친화적 소공원이라 오솔길을 산책하는 기분이 그만이다. 팔각칠층석탑(八角七層石塔)은 중국 명나라(1470년)때의 라마식 탑으로 만주(滿洲)상인한테 매입하여 세웠단다.
춘당지건너편에 팔각칠층석탑이 보인다
우리에겐 희귀한 라마식탑이라서 이채롭다. 대온실(大溫室,등록문화재 제 83호)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식물원)이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한 철골구조유리온실은 지금 수리 중이였다.
대온실
온갖 꽃들과 수목사이의 탐방로를 어슬렁대다 홍화문을 들어서 옥천교를 건너면 명전전이라.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으로 1750년 영조는 여기서 백성들을 만나 균역법시행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또한 1795년에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맞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준 곳이기도하다.
집복헌과 영춘헌
<홍화문 사미도(弘化門 賜米圖)>라는 기록화에 그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이라. 통명전은 왕비의 침실이다. 숙종의 애첩 장희빈이 갑술환국으로 강등되고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희빈이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흉물을 통명전처소에 파묻었다.
작은춘당지
이 저주사건이 발각 돼 희빈은 사약을 받는 스릴러극의 무대이기도 하다(1694년, 숙종20). 경춘전은 정조가 생일을 기념해 경춘전 내부에 ‘탄생전(誕生殿)’이라 쓴 현판을 걸었는가 하면, 비운의 사도세자를 낳기 전에 용이 경춘전에 들어오는 용꿈을 꾸고 동쪽벽에 용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회자되고 있다.
명정전일대의 전각
전각들을 휘두른 울창한 숲엔 백 살은 훨씬 넘겼을 백송이 나이만큼 더 하해지고, 귀목은 구멍을 만들고 속을 텅 비워 짐승들의 아파틀 만들었다. 그나저나 독보적인 건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사랑이다. 뿌리로 엉켜 합궁을 하다못해 몸통마저 칭칭 감고 연애질이다.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사랑
연리지사랑과 연리목사랑으로 진을 빼는 나무의 프로노그래픽을 첨 마주쳤다. 창경궁이 궁녀들의 사랑쟁탈보금자리라 나무들마저 사랑타령일까? 이 달 말쯤 농익은 가을이 수풀에 내려앉음 창경궁의 아름다움은 옛날 궁녀들의 화사한 외출을 보는 듯할 것 같았다. 그날은 창덕궁후원까지 파고들어 비원의 고운가을때깔에 취하리라.
2017. 10. 05
대온실(大溫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동물원과 함께 지었다. 일본인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건축한 철골구조에 유리를 둘러쌌다.
창경궁매표소 옆의 낙선재육각정
동명전뒷뜰
경기도 광주에 있던 성종의 태를 묻어놓았던 태실비를 옮겨놨다. 왕손이 태어나면 명당지를 찾아 태항아리를 묻어 보존하였는데 1928년경 전국의 태실 항아리를 서삼릉으로 이봉하였다.
내전 가장 깊숙한 곳의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월대 위에 기단을 조성하고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었다. 마당엔 얇고 넙적한 박석을 깔았다(보물 제818호)
짐승들의 귀목아파트
백송은 애초엔 푸르다가 나일 먹으면서 하얀피부 껍질로 변한다
관덕정은 누에를 치던 곳이었는데, 인조 20년에 활쏘는 사정(射亭)을 지어 취미정(翠微亭)이라 불렀다. 1664년(현종 5)에 관덕정으로 개칭 군사들이 활쏘기나 말타기 연습을 하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환경전 앞뜰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보물 383호)은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다. 왕의 행차나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을 사용했다.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 금천은 궁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 등이 돋보인다.이중 홍예교로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다.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인정전옥좌
인정전팔작처마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寢殿)이며 생활공간이다. 주변의 수많은 부속건물들 중에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선정전 (宣政殿)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이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
대조전뒷뜰은 왕녀들의 산책공간이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는데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를 지었다.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대왕대비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다.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건물을 새운 사랑의 힘이라니~! 타지마할 생각이~!석복헌은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고, 낙선재에서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다.
낙선제 뒷뜰도 멋진 휴게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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