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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아파서 챙기는 행복

아파서 챙기는 행복

 

구름 잔뜩 낀 꾸무럭한 날씨가 해넘이지기 무섭게 어둑어둑해졌다. 서울 한복판 시청 앞은 한바탕 소나기라도 쏟아질 듯하다. 행사용가건물에 가린 시청광장은 어둠과 불빛의 혼재가 유리벽 앞의 옛 석조시청의 부조화만큼 혼돈스럽다.

배란다관상수가 갑자기 춤을 춘다. 소믈리에가 꼬냑 한 병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섰다. 당신 와인 할래요?” 나의 은근한 질문에 아니, 안 먹어야죠.” 아내가 자못 단호하게 답했다. 아낸 중이염증상으로 이비인후과에서 1주여 일간 치룔 받고 있는데 어제 의사가 CT검사를 한 후 상태가 아주 좋아졌다고 했다.

하여 난 오늘밤약속이 생각나 의사에게 선생님, 와인 한 두 잔쯤 먹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었다. 대답 없는 의사에게 재차 물었지만 그는 대답대신 어색한 미소로 답했었다. 아내와 난 거의 같이 웃으며 겠습니다라고 목례하며 병원을 나섰던 것이.

프라자호텔 3f 도원서 본 시청앞 밤풍경

한두 잔만 하면 어쩔랍디까. 받아요나의 권유에 아그럼 한잔만 할까라며 마지못해서란 듯 소믈리에가 작은 유리잔에 1/4쯤 딴 꼬냑기포를 즐기는 거였다. 아내의 한잔만~’이란 게 어떤 의민지 울 식구는 꿰뚫고 있다. 은빛의 꼬냑은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향과 감칠맛으로 혀와 코끝을 간질거린다.

꼬냑은 W가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답시고 프라자호텔중식당 도원(桃園)’에 미리 갖다놓은 선물이었다. 아내의 생일저녁식사를 도원서 페킹 덕(Peking duck)’을 하자고 둘짼 며칠 전에 예약했던 바다. 오리를 통째로 구워먹는 중국베이징 식의 별미 요리를 페킹 덕내지베이징 덕이라 한다는데 나는 처음 맛보는 요리다.

베이징 덕

()의 시조 주원장(朱元璋)이 수도를 남경(南京)로 옮기고 남경산 오리를 숯불에 통으로 구운 걸 즐겼다. 바삭바삭 구운 오리껍질이 기름지나 결코 느끼하지 않아 궁중요리로 채택되어 유명해졌단다. 이 구운 오리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녹인단다.

아내와 둘짼 베이징`덕을 먹을 땐 늘 내 생각을 했다니 첨으로 먹는 나는 식구들입서비스로만이라도 고맙다 해야 했다. 바삭바삭 구운 오리껍질을 얇게 떠서 샐러드와 소스 한 방울 떨어뜨려 깻잎만한 전병에 싸먹는 식감이란 특별하고 고소했다.

사실은 이쁘게 빚은 앙증맞은 요리를 시각과 후각으로 즐기며 입안에서 오물거리며 포만감에 이르는 과정이 미식가들이 예찬하는 요리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봤다. 창밖 나무가 격하게 춤을 춘다. 어둑한 공간을 빗발이 빛깔을 사선을 가르며 빠르게 명멸한다. 소나기가 창문에 여울을 만들고 있다.

오늘 오전, 아낸 화장실청소를 하면서 궁시렁댔다. 지린내가 난다며 깔끔히 사용할 수 없냐?는 거였다. 화장실사용이랬자 나와 아내뿐이니 지린내범인은 뻔했다. 그 볼 맨 불만이 비단 오늘만이 아니다. 나이 들면 오줌발도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요새는 왼팔을 깁스한 채라 한 손으로 정조준 해 변기에 일보고 훔친다는 게 그리 수월치가 않다.

고개 숙인 걸 지퍼 속에 집어넣다가 변기가나 가랑이 옷에 저리게 됨을 탓하려들어 나만 쓰간디?' 라고 쏘아붙여 아낼 멍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오늘 생일인데 짐덩이 노릇으로 귀찮게만 하고 있단 걸 뒤늦게 자책 무안했던 바다. 부부란 의무와 유대감과 쥐꼬리만 한 배려심으로 해로(偕老)하나 싶다.

깁스한 왼팔 탓에 샤워를 할 땐 부부란 뭔가?를 절감케 된다. 매일 트레킹 후에 한 번씩 아내의 손길로 샤워하면서 젊었던 지난날의 열정의 순간에 취하곤 한다. 달디 달았던 알몸의 스킨십 말이다. 사실 곧 나을 아픔이라면 부부애를 살리는 찬스도 되겠단 생각에 이번 부상을 자위하고도 싶었다.

둘째가 레드와인 한 병을 주문한다. 소믈리에가 와인병을 들고 미소 지으며 은근한 눈짓으로 아내 옆으로 다가선다. ‘한두 잔한두 병으로 비약하는 순간을 어찌해야 할지 분위기 살피기도 멋쩍었으리라. 빈 유리잔에 와인 따르는 걸 스스럼없이 즐길 아내.

아내는 큰 와인잔을 입술에 대다말고, 은근한 묘미와 향은 덜하지만 시큼하고 진한 부드러움이 혀를 감친다고 나름 품평을 하고 있었다. 창밖의 나무가 정색을 하고 있다. 셰프가 잘게 썰어다진 오리살코기와 채소를 버무려 깻잎 만하게 오린 양배추잎에 싸서 소스 한 방울 떨어뜨려 내놓았다.

한입에 쏙 들어간 쌈은 신선한 식감에 풍성한 즙이 베어났다. 아까 싸먹었던 전병보다 식감이 산뜻하고 풍요로웠다. 삶은 완두콩이나 팥을 으깨 버무려 거기에 삶은 콩`팥 몇 알을 통째 넣은 채 두툼 하고 넓은 밀전병에 싸먹었던 옛날의 간식이 생각났다.

한입씩 가득 몇 번을 베어 먹었던 팥전병은 먹을거리 귀했던 시절의 특별한 별미였다. 난 그때의 식감이 문득 그리웠다. 기억 저편 까마득해져버린 어머니의 팥`전병 빚던 모습이 어둑한 창밖에 어른댔다. 가난했어도 그 시절이 더 따스하고 살가웠지 싶다. 세 딸 중 둘은 외국에서 전화 한 통으로 그리움을 대신하는 세상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밤이었다여보, 조준 잘 할게~!

2017. 729

 창밖에 유난스레 휘횡찬란한 k`a그룹의 사옥(좌측 붉은 건물). 유동성자금난 탓에 채권자처분에 운명을 맡긴 기업의 얼굴이 네온불빛으로 도배됐다. 망할 바엔 때깔이라도 좋게 하자는 걸까? 우리나라 재벌의 한 면을 보여주나 싶었다.

<아름다운 어머님!! 생신을 감축드립니다. 아버님과 같이 드세요, 율-접근금지>    Brothe *Mo*      -S가 집으로 보내 온 와인병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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