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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느닷없는 여름손님의 깨소금뒷맛

느닷없는 여름손님의 깨소금뒷맛

한낮의 땡볕을 피해 장산(長山)등산을 하자고 어제 다짐했던 아내와 난 아침 일찍부터 다소 서둘고 있었다. 6시가 막지나 전화벨이 울렸다. 둘째였다. 휴일이라 침대서 꾸물댈 시간이라 아낸 다소 머쓱해 하다말고 당황하고 있었다.

오늘 j가 시간을 공유하잔데 괜찮겠느냐? 고 묻고 있었다. 엄마의 생선찌개밥상에 끼고 싶다는 거였다. 사연은 엉뚱하고 단순했다. 어제아침, 아내와 난 문탠로드산책을 하고 미포나루 번개시장서 광어 한 마리를 사 찌개를 끓여 먹으며 둘째에게 사진전송하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미포항의 새벽번개활어시장

몽골출장에서 귀국한 j가 무슨 얘기 끝에 울 내외안부를 물어 오늘 아침의 광어찌개얘길 했던 게 화근이 됐다는 거였다. 아내의 생선찌개를 먹고 싶다고 말이다. 거절할 수 없는 아낸 안절부절 했다. 둘째가 j를 뫼시고 7시출발함 9시 반쯤 도착한단다.

느닷없이 내민 홍두깨에 놀래 킨 울 내왼 서둘러 미포번개시장을 향했다. 돔 세 마리를 사들고 j를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하버타운은 살림집이 아니어서 요리준비물들이 없는데다 아침 일찍 시장도 문 닫고 있어서 뾰쪽 수가 없는 낭패였다.

둘째가 그런 사정을 충분히 얘기 했을 테지만, j는 익히 서민층 우리를 이해하고 있을거란 생각에 돔찌개와 구이만으로 식단을 짰다. 말로는 걱정을 하면서도 달떠있는 아내는 신명이 난 듯 했다. 이유 불문하고 j가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 이어서다.

9시 반쯤, 둘째가 j를 뫼시고 들어섰다. 미안해하며 약간 너스레떠는 j를 나는 반갑게 맞으며 악수를 했는데, 아내는 j가 팔을 벌리자 대뜸 포옹을 하는 게 아닌가. 결혼 이후 나한테 포옹은커녕 좋아한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한 아내였다,

요조숙녀소릴 듣는 아내가 외국인과 포옹을 하는 기적(?)같은 퍼포먼스에 고무 된 나는 파안대소하며 j에게 한껏 고맙다고 조아렸다. 시장기 돋는다는 j앞의 식단은 참으로 초라했다. 돔찌개와 구이, 김치와 오이무침이 전부였다.

j는 찌개보단 돔 구이에 젓갈이 자주 갔는데 젓갈질도 수준급 이였다. 생선뼈 골라내는 게 어설펐지만 연신 맛있다는 탄성과 가족과의 밥상에 감격해하는 모습은 우리내외를 가슴 먹먹하게 하는 진솔함 자체였다.

옆집아저씨가 불쑥 찾아와 우리밥상에 숟갈 하나 들고 끼어드는 순박함에 나는 감격했다. 어떻게 저리도 철저히 모든 걸 내려놓고 분위기를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그가 과연 우리가 범접하기 어려운 파워맨(?)인가?

호텔생활이 일상인 j식구들과의 밥상이 평소의 로망이란다. 그는 까마득한 기억 저편의 엄마아빠와의 식단을 회고하며 눈시울 붉힌 채 노스탤지어가 되고 있었다. 십여 년간 둘째를 가까이 두고 지켜보면서, 어쩌다 둘째의 도시락을 곁눈질해 보았을 때, 글다가 울 식구들과의 몇 번의 미팅에서 느낀 지극히 서민적인 삶따뜻한 가정을 읽었단다.

 j가 외국출장 중 짬 낼 수 있음 울 애들과 미팅, 시간을 공유하면서 우리집안분위기를 감지한 게 이 자리까지 온 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 암튼 j따뜻한 가정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울 내외에게 새삼 되새김질 해주고 있었다.

식사 후 시내산책을 하며 웨스턴 조선호텔 카페에 들었다. 호텔은 그가 부산출장 때 숙소라서 귀빈일 테다. 귀빈이면서도 모든 종업원들에게 귀빈이 아닌 어쩜 오빠, 형님처럼 행동하는 j가 내겐 낯설었다. 스타워즈로고가 박힌 싸구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그는 만 원짜리 야구모자에 슬리펄 신었다.

웨스턴조선카페 여성지배인이 나를 위해 만든 카프치노

그를 대하는 종업원들은 절재된 편안함으로 대하고 있었다. 만원인 숍엔 자리가 없어 바텐더 바 테이블에 걸터앉아 와인을 들었는데, 여성지배인은 j의 누이동생처럼 살갑게 직접서빙을 하고 있었다. 반시간쯤 후에 창가로 자릴 옮긴 우린 와인에 안심샌드위치, 초코크림과자, 마른과일 등으로 미각을 채웠다.

웨스턴조선3층 레스토랑 한견의 당구대

나만 빼고 셋은 와인에 일가견이 있다. 와인애주가인 j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과음은 삼간단다. 그는 먹거리엔 고급을 선호한단다. 편해서 퇴근 후의 일상복은 싸구려를 입지만 음식은 아니란다. 외양과 과분한 선물에 신경 쓰는 것 같은 한국문화가 첨엔 좀 이상해보였단다.

식구라곤 부부뿐인데 명절 때면 과분한 먹거리선물처치로 고역이었단 얘기, 커피나 주스 한 잔 시켜놓고 몇 시간째 앉아 있는 카페손님들을 이해하기 곤란하다. 라고도 했다. 경제의 순환고리는 기업의 생산성 못잖게 소비문화도 일정 몫이기에 구두쇠는 좀 그렇단다.

자리가 없어 돌아서는 손님이 많은데 커피 한 잔으로 죽치고 앉아 피서하는 손님이 보기 민망하다는 거였다. 그가 카페에서도 깍듯한 대접을 받는 소이였다. 한 시간쯤 담소하다 3층 레스토랑으로 자릴 옮겼다. 서빙준비 한참인 식당은 한가했다.

아내와 난 창가에서 와인을 들며 해운대해수욕장풍정에 빠져들고, j와 둘째는 식당 한켠에 마련 된 당구대서 게임에 임했다.  j는 만능 탈랜트란 생각이 들었다. 음악과 운동에 소질이 다분하고, 유머와 센스에 능하며 자신을 한없이 낮출줄을 아는 겸양의 신사, 얼리버드기업가여서다.

한 시간쯤 얼쩡대다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웨스턴조선과 동백섬해운대와 APEC을 잇는 동백공원숲길을 내가 안내했다. j는 호텔서 수박하면서 해안가 갈맷길만 알고 있었다. 동백과 아름드리소나무와 후박나무와 개잎갈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한갓진 산책로는 관광객들이 간과하기 일쑤듯 그도 그랬나 싶었다. 울 내왼 엊그제도 부러 이 코슬 산책했기에 아는 챌 할 수가 있었다.

내가 j에게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이거다 싶어 동백섬과 해운대에 얽힌 최치원스토리를 대충 소개했다. 내가 오늘 j한테 감복한 것은 우리 같은 서민들을 엄청 챙기는 삶이란 거였다. 최 일선의 노동자들한테 쏟는 애정은 참으로 각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j의 생전의 부모님의 삶이 우리들처럼 서민적이어서 일것이다.

그는 찌개밥상 값으로 울 식구한테 무형의 값비싼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고 떠났다. 몸에 걸친 모든 것들 값이 채 5만원도 안 되지만 누군가를 위해선 아끼지 않는 소비의 미덕으로 모두를 기쁘게 하는 삶이 찡하게 어필됐다. 그를 가까이 할 수 있어 우리가족은 행운이라.

2017. 08. 26

우리네 공중화장실은 수준급이지만 동백섬화장실도 호텔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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