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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어느 여학생의 사랑

어느 여학생의 사랑

인생엔 슬픔과 기쁨과 헤어짐이 있고/달에는 흐림과 맑음, 참과 기울어짐이 있나니/이는 예부터 온전하기 어려웠네/다만 원하니 인생 오래오래 이어져/천리 먼 곳에서도 저 달을 함께 보기를(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 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     <소동파 시>에서

당일치기 볼 일 있어 서울행열차에 오르자 내 옆 좌석에 앉아있던 예쁜 여학생이 엉거주춤 눈인살 하며 무릎위의 짐을 챙겼다. 창가가 내 좌석이기에 자릴 비켜주려는 품새였다. 여학생이 안고 있는 담요 속엔 강아지새끼가 얼굴만 내민 챈데 무릎위의 앙증맞은 개집을 들며 일어서는 거였다. 나는 얼른 제지하며 괜찮아요, 그대로 가세요.”라고 후한 인심이라도 쓰는 척하며 자리에 앉았다.

미안합니다. 개를 집에 넣을까요?”여학생이 내 눈칠 살피며 말했다. 아뇨, 편할 대로 가세요.”내가 살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라고 다소곳이 말하는 그녀의 옆얼굴을 살피니 화장기 없는 애띈 얼굴이 여간 미인이다. 담요에 싼 강아지를 왼팔에 안고 일어서며 개집을 선반에 올려놓는 그녀는 내 무지렁이 눈썰미로도 여학생또래 같았다.

난 실외에서 개 기르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 실내를 공유하며 공생하는 애완견족속들은 경원한다. 털과 냄새가 위생상 꺼림직 하고, 일방적인 사랑이 다분히 에고이즘 적이란 선입견 탓이다. 애완견에 쏟는 헌신적(?)인 애정은 이내 자기만을 따르는 완소물을 만들기 위한 이기적인 사랑의 집착이거니 생각하는 거다.

그 지극정성을 사람한테 쏟는다면? 허나 안전한 사랑을 꿈꾸기 뭣한 세상에서 애완견으로부터의 절대순종의 애정을 감지할 수 있어서라면 할 말이 없기도 하다. 팔뚝만한 곱슬털강아지는 흡사 장난감마냥이다. 개에 무식한 내가 종을 묻자 푸들이란다.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다.

여학생이 소시지(개 먹이 일텐데 모르겠다)를 꺼냈다. 푸들이 고개를 들더니 시선이 소시지를 향한다. 여학생이 소시지를 입에 넣어 벤다. 동시에 푸들이 고개를 쑥 내밀고 여학생은 입을 쫑긋 모아 푸들 입에 대고 소시지를 먹여주는 게 아닌가. 놀래기보단 신기했다. 갓난애에게 먹이를 으깨 입으로 먹여주던 옛날 울들 어머니의 모습이 재연되고 있어서였다. 여학생과 개의 구강사랑은 참으로 많은 걸 생각게 하는 이쁜 스냅사진이었다.

여학생과 푸들의 공생은 5년째란다. 푸들나이가 다섯 살인 셈이다. 푸들에게 여학생은 우주고 여학생에게 푸들은 착하고 깜찍한 애기일 것 같다. 슬플 때나 분할 때도 푸들은 변함없는 사랑의 눈빛과 재롱으로 여학생을 살맛 돋우어준다는 거다. 사랑의 집착은 상상을 절한다

글면서 문득 서글퍼지는 건 저렇게 지극정성의 애정을 사람과 사람사이라면? 배신은 늘 상존하는 불안전한 사랑이란 게 우리들의 사랑의 모순이고, 그 대안이 애완동물과의 애정일 거란 찝찜한 생각을 하게 했다.

엊그제 광주에서 초딩계에 참석했다가 들은 얘기다. O는 어느 행사에서 어린이집여선생을 만났는데 며칠 후 우연찮게 다른 모임에서 해후하여 둘만의 미팅이 이뤄졌단다. 오십 문턱에 들어선 여선생의 연애는 당돌할 정도여서 두 번째 미팅 때 무인텔에 들어섰단다. 그렇게 세 번을 무인텔에 드나들었는데 소식두절이 됐단다.

여선생이 응답을 안 하는 거다. 굳이 까닭을 유추하자면 화이트데이를 그냥 보내고, 잠옷 선물 받고 싶다고 했는데 어떻게(어떤 잠옷일지?) 할지를 몰라 세 번째 미팅에서 구체적인 얘길 나눴는데 이후 소식 끝이란 거였다. 까짓 선물 탓이라고 하면 여선생을 욕하는 짓이지만 달리 불통의 까닭이 생각 안나 벙어리냉가슴 앓는 O였다. 천행으로 다가온 로맨스그레이가 그렇게 순식간에 일방적으로 끝나게 된 현실을 도저히 용납하기 뭣한, 도께비에 홀린 기분이라했다.

연애와 사랑은 별개인가? 어차피 불안전한 사랑이 인간의 애정이라면 적당히 엔조잉하며 챙길 것 있음 챙기고 더 복잡해지기 전에 바이바이 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란 건가? O의 세 번의 외도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때늦은 사랑을 로망해 봤던 O를 여선생은 멜랑꼴리한 섹스상대로 여겼을 뿐이었는지 모른다.

누굴 탓할 순 없다. 그들 만남에 사랑을 개입시키는 건 애당초 사랑의 모욕일 테니 말이다. 애완견 기르는 사람을 경원했던 내가 옆의 여학생과 푸들의 순수한 애정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O의 얼굴이 오버랩 되서도 아니다. 사람과 동물의 진정한 교감이 예쁘기만 보였다. 배신의 '배'자도 없어서다.

푸들이 없는 생활을 여학생은 생각해 볼 수가 없단다. 동물한테 쏟는 애정엔 감동이 따르지만 사람한테선 잘못 배신의 상처만을 안기도 하니 그럴 만도 하리라. 서울까지 두 시간을 여학생 품안에 있던 푸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슴과 가슴으로 체감하는 그들의 사랑교감에 대해 여미어 봤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길도 다양하다.

2017. 05

# 여학생에게 블로그얘길 하긴 했지만 얼굴이 이 정도로 나올 줄이야? 라고 힐난하면 죄송해서 어쩐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