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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벚꽃길 걸으며- 함라산둘레길,숭림사

벚꽃길 걸으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후략-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숭림사입구 벚꽃터널

가로변벚꽃이 흐드러졌다. 어디 한적한 벚꽃 숲을 걷고 싶다는 충동이 좌불안석을 만든다. 문득 작년 이맘때 숭림사입구에서 함라산둘레길의 벚꽃퍼레이드를 즐긴 기억이 떠올랐다. 글로 차를 몰았다. 평일이어선지 벚꽃이 한 살인데도 상춘객이 뜸하다. 작년엔 주차공간이 없어 여간 애를 먹다 되 빠져나오느라 구경도 못하고 차속에 갇혀 심난해 했던 기억이 초롱초롱한데 말이다.

산사입구의 벚나무는 고목이 돼선지 흐드러진 벚꽃터널을 이루진 않았다. 검푸른 소나무숲에 싸인 보광전이 하얀벚꽃을 면사포처럼 휘두르고 있어 한 폭의 묵화가 됐다. 보광전삼존불의 닫집은 언제 봐도 경외감을 절로 일게 한다. 뜸한 상춘객사이를 어슬렁대며 나풀나풀 한 잎씩 낙화하는 꽃잎들의 춤사위를 즐기며 벚꽃터널을 유유자적 세심교를 건너 송천저수지를 향한다.

숭림사

저수지를 낀 724번 벚꽃길은 인도가 없다시피 하여 상춘의 멋을 즐기기엔 아쉽다. 쪽빛저수지에 드리워진 하얀벚꽃띠를 멀리서 조망해야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저수지보에 이르자 철망에 커다란 구멍이 난 채 인적이 훤하다. 망설이다가 금지구역에 발을 내디뎠다. 웅포나루를 향하는 724길 벚꽃퍼레이드가 하얀 구렁이마냥 꿈틀대고 함라산허리 깨를 꾸불대는 둘레길벚꽃띠가 동심의 피안을 쫓게 한다.

불확실이 팽배한 일상에서의 잠시 동안의 망각! 벚꽃상춘은 망각이며 희열이기도 하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반대편 저수지갓길을 휘돌아 웅포문화체육센터를 향할 요량으로 송천저수지보를 건너 야산에 들어섰다.

고사리가 수풀사이 군데군데서 웅크린 채 대기를 찢고 있다. 아니 놈들은 잔인한 4월의 축제를 벌써 만끽하고 있다할 것이다. 동토를 애무하는 햇볕인기척에 눈뜬 놈들은 두꺼운 땅을 뚫고 허공을 가르며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거다. 잔인한 4월은 생명의 꿈틀댐이다. 그 가벼운 떨림의 꿋꿋한 찬가! 자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찰나를 사랑한다.

근데 이건 또 무슨 횡포냐? 십 여기의 가족묘가 파묘아수라장이 됐다. 누가 뭣 땜에 단단히 다졌을 봉토를 이렇게 무참히 파헤쳐 난장판을 만들었을까? 멧돼지의 횡포일 것이다. 놈들이 동토에서 먹일 찾느라 이 거창(?)한 역사를 몇날며칠 했을 테다. 놈들의 역사는 먹거리 찾는 삶의 일상인 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다. 놈들의 땅 파헤집기는 새싹의 건강한 발아를 위한 자연순환의 한 궤적이기도 함이다.

초토화된 묘역

놈들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은 공생공존 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건 되려 인간이다. 묘역은 자연이라 인간이 구획을 긋고 땅따먹기 하는 행위는 자연에의 도전, 곧 주적노릇의 적폐동물임을 깨달아야 함일까 싶다. 멧돼지의 행위를 탓하기 앞서 인간이 죽어서까지 자연을 탐하는 횡포와 폭거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어차피 몇 백 년도 못 가서 문드러질 묘역이라면 애초에 애써 자연을 훼손할 일이 아닌 것이다. 멧돼지나 인간이나 똑 같은 자연속의 한 동물일 뿐이다. 저수지물빛은 유난히 쪽빛에다 여울파장이 드셌다. 따스한 봄바람도 4월엔 잔인하다. 생명을 일깨우고 있어서다. 벚꽃이파리가 한 잎 두 잎 여울파장을 타고 저수지에서 춤추는 거였다. 내 맘 속 구름 닦아라. 푸릇푸릇 연둣빛 세상이 펼쳐지고 있지 않니! 자연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가 4월의 하늘을 숨 쉴 텐가!

2017. 04. 14

보광전닫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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