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흐뭇한 밤

 


발끝으로 사뿐사뿐 도약하는 듯한 아가씨들
, 하얀 얼굴에 곱게 핀 미소, 좌우손끝으로 베푸는 천사 같은 봉사자들의 극진한 친절을 받으며 나는 문득 발끝을 딛고 춤추는 발레리나, 바람이 띄우는 작은 연들, 좌우날개를 가진 무소유의 실천자라고 새들을 일컬었던 어느 시인 생각이 났다.

은은한 조명발 속에서 절제된 행동거지는 모든 걸 초월한 무욕의 새들처럼 보였다. 신라호텔뷔페식당에서였다.

 

 

며칠 전 둘째가 우리부부와의 저녁식사예약을 해 놨었다. 근디 오늘오후 늦게 둘째가 J가 끼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아니 어쩜 바빠 인사만 하고 갈지 모른다고 해 황송한 우리내왼 묵묵부답했다.

오후 5시 반 호텔로비에서 둘째를 만나자마자 J도 밝은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의 특유의 격의 없는 소탈함에 이웃친지인 듯 금새 허물없어진다. J는 우리가 민망해할 만치 우리가족에게 친절하다. 굳이 까닭을 들춘다면 우리집분위기가 짙은 노스탤지어를 지피게 한다는 게다. 참으로 고맙고 황송함이라.

 

 

 J와 같이 한 자리는 대게 식사 전 반주로 와인을 들었다. 나만 빼곤 모두 애주가들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낼 아침 대만출장을 간다는 J는 집사람을 대접한다는 핑계로 고급와인을 주문 테이블엔 와인잔이 즐비해진다.

9시 반이면 문 닫는 식당은(개봉한 와인을 마져 비우겠다고 얘긴 했다) 우리만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어 천사 같은 종업원들은 저만치서 눈치껏 정리를 하고 있다.

1인 식사 티켓이 10만원인데 몇 십만 원짜리 와인을 3병째 들고 있는 우리가 VVIP인 셈인게다. 애주가들에게 고급와인은 돈으로 계량하지 않나싶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J는 결코 사치스럽거나 허세부릴 줄 모르는 CEO. 근면과 성실, 절약과 배품의 삶은 J가 오늘날 국제적인CEO반열에 서게 함일 거다.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야구모자는 뉴욕에서, 걸치고 있는 반팔T셔츠는 홍콩의 어느 바자회에서 5천원미만에 구입한 거라고 너스렐 떨며, 진정한 멋은 좀은 흔하지 않는 것을 자기 몸에 맞게 소화시키는 선구안에 있다는 거였다.

그는 재력가이면서도 사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참한 청년이 일자리고민을 하면 선뜻 도움을 내미는 이웃집 아저씨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우리한텐 몇 십만 원짜리 와인을(집사람 대접을 하기 위해선가?) 스스럼없이 주문 화기애애한 분위길 연출(?). 아내의 밝고 수줍은 표정에 난 착각한다. 이 흐뭇한 밤을 내가 마련하기라도 한 것 처럼~!

나는 J를 마주하며 얘기를 듣다보면 그가 부의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노스페이스의 CEO더글러스 레인스포드 톰킨스(Douglas Rainsford Tomkins)같단 생각을 하곤 한다.

10시 가까이 돼서 우린 호텔을 나섰다. J를 알고 가끔 자릴 같이한다는 건 우리식구들의 행운이라.

2016. 10.13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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