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하는 사람아

왕정을 흉내다 자멸한 한심스런 부녀대통령

왕정을 흉내다 자멸한 한심스런 부녀대통령

 

-광화문세종대왕 앞의 '즉각하야'를 외치는 시민들-

 

5.16군사구데타2인자였으면서도 한때 젊은이의 우상이기도 했고, 명 총리로 일세를 풍미했던 김종필씨는 그의 <소이부답>에서 박정희대통령의 독재가 빚은 비극적인 종말에 대해 얘기 했었다.

1978년에 접어들어 차지철 청와대경호실장은 경복궁에 주둔하던 수경사30경비단 전차 1개 중대를 출동시킨 후, 밤마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지축을 쿵쿵 울리면서 청와대 부근을 빙빙 돌며 들썩들썩케 하고, 그 소리에 동네가 놀라 원성이 잦았단다.

까닭인즉 누구든지 대통령을 방해하는 자는 걸리면 큰일 난다는 것을 공공연히 알리기 위해서다.”라며 대통령은 불가침의 성역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위압감 심어주기 시위였다는 거였다. 그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높이 산 박대통령은 그 짓을 묵인했다.

기고만장해진 차지철은 김계원비서실장의 독대도, 김재규정보부장의 보고체계도 무력화시키는 등 참모진인사도 박정희대통령과 상의 좌지우지했다. 김계원실장으로부터 하소연들은 김종필이 차지철을 만나 충고를 하지만 박대통령의 양해를 얻은 일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하여 지적만 하고 말았다, 고 술회했다.

-효자로저지선 앞의 시민들 뒤로 북악산이 -

 

차지철의 전횡을 눈감은 박정희는 점점 독재왕이 되가고 비서실과 정보부는 핫바지(?)가 되어 10.26비극의 단초가 된 것일 게다. 김재규의 <최후의 진술>엔 최태민의 농락얘기도 있다. 박근혜를 이용하는 최태민의 농간을 박정희한테 직보했다가 면박당한, 충정에 대한 불신도 거사의 한 요인이었다는 거다.

김재규의 직언을 가납해 박정희가 최태민을 내쳤다면 어제 박근혜대통령의 탄핵이란 비극도 없었을 테다.

더는 박정희나 최태민은 이미 고인이 됐기에 왕실장인 김기춘 만이라도 비서실장노릇 똑바로 했으면 어제의 박근혜탄핵은 애초에 싻이 잘렸을 것이다.

-광화문로의 시민들, pm5시경-

 

김기춘은 박정희유신정권의 앞잡이면서 정보부출신이기에 최태민의 비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였다. 하여 박정희가 비극적인 운명을 하게 된 요인 하나가 최태민과 박근혜란 걸 알고 있었을 테니 박근혜는 최태민가와의 인연을 어떻게해서든 끊게 만들었어야 했다.

박근혜가 자신의 (최순실과의 관계정리)충언을 묵살하면 비서실장자릴 내치고 초야에서 계속 직언했어야 함이다. 박정희로부터 입은 은혜, 그리고 그 10.26비극에 대한 참회땜에라도 환관 김처선의 흉내를 내는 척이라도 했으면 충신이 됐을 것이다. 

-광화문앞의 축제장된 무대-

 

박근혜의 비극은 어쩌면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함에서 더 수렁으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김기춘은 본시 나라의 운명이나 공익보다는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먼저 생각하는 소인배였다. 그의 박정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은 자기출세를 위한 과정일 뿐이였다. 진정한 충신은 독재자를 향해 직언을 해야 함이다. 사지가 찢겨지면서도 연산군을 향한 김처선의 직언을 모를리 없는 김기춘일 것이다.

그는 후에 법무부장관을 하면서 19921214대대통령 선거3일전, 부산초원복집에 영남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영호남을 이간질시킨 장본인 이였다. 그 행윌 언론이 문제 삼자 고발자를 색출 죄를  덧씌운 사이비검찰출신인 것이다. 그런 비리공직자를 비서실장에 기용한 박근혜는 사심 없는 분이라고 극구 칭찬했으니 자업자득한 꼴이다.

-경복궁담과 북악산앞 청와대를 향하는 시민들-

 

YS가 간파했던 박근혜는 칠푼이였다. 게다가 김종필씨도 박근혜를 말하길 ‘5천만이 하야하라고 해도 끄덕도 안 할 사람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위국충정이 어떤 것일까? 의심되는 독재자의 딸, 왕흉내를 즐긴 맹한 여자였다.

아버지에 이어 딸 대통령까지 비극적으로 임기를 끝내게 하는데 일조한 김기춘은 간신이며 미꾸라지 같은(박지원의원 말)인생이다.

세월호의 비극적 순간에 출근도 안한 박근혜와 유가족들 슬픔을 외면한 채 일본을 오가며 몇 천만원짜리줄기세포주사를 맞으며 추한 얼굴 감싸려는 김기춘은 유신독재의 숙주들이었다. 청문회장의 모르쇠김기춘의 유들유들 미끌미끌한 노안은 미꾸라지처럼 윤기가 자르르하지 않던가?

-세종문화회관 야외무대가 촛불축제장으로-

 

박근혜와 김기춘아류의 독재의 기생충들을 어두운역사에 묻힌 혁명이 '12.9촛불혁명'이다. 또한 독재자와의 정경유착으로 부의 세습을 유지해왔던 재벌의 패해도 이참에 청소시켜 재민주권의 민주국가로 거듭나게 해야한다. 그런 간절한 염원이, 기도가 오늘도 광화문광장에서 촛불혁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12.9촛불혁명축제엔 민중대부분의 젊은이들이어서 더 흥이 솟는 거였다.    

오직 자신의 출세와 영달만을 위해 권모술수를 한 최후가 어떤 죗값을 받는지를 응징하여 후세들에게 귀감 시켜야 할 인물이 김기춘아류라 할 것이다.

소외되고 억압받던 고자였지만 환관 김처선이 있어 역사는 발전하고 그래 그리워지는 게다.

2016.12.10

-광화문일대 시민들과 차벽경찰차의 스티커화장-

 

--박근혜의 초상은 걸개화로 연결돼 질질 끌려다니고~ -

-광화문지하도의 세월호구명조끼-

-방한자켓후드에 로고가 된 '박근혜구속'스티커-

-'박근혜정권 끝장 내는 날' 야외무대 뒤로 광화문, 북악산이 차례로-  

'사랑하는 사람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0) 2017.06.23
울 내외의 허허로운 섣달그믐밤  (0) 2017.01.27
故 이흔오 靈駕시여!  (0) 2016.12.05
예기치 못한 흐뭇한 밤  (0) 2016.10.14
허허한 한가위의 이별연습을~?  (0) 201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