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내외의 허허로운 섣달그믐밤

-불갑저수지-

 

섣달그믐밤인데 적요하다. 오후에 나물 몇 가지를 만들어 일찍 저녁식사를 하고 아내는 안방에 나는 내방에서 낙서를 하고 있다. 단 둘이 맞는 명절이 추석에 이어 두 번째다. 큰애와 막내는 출가하여 외국에 나가있고, 둘째는 출장 겸 휴가를 내어 이탈리아에 간 탓이다. 하여 우리내왼 마땅히 어디 찾아갈 곳도, 더는 누가 우리 집으로 설 쇠로 올만한 사람도 없어 섣달그믐밤이 적막하기까지 하다.

 

명절전날은 헤어져있던 피붙이들이 모여 그리웠던 정한을 나누느라 왁자지껄하고, 설빔하느라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진동하는 모처럼 사람냄새 홍건한 날이다.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곁들인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쓰여있다.

설날 세찬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은 떡국인데 동국세시기에는 흰 가래떡[白餠]을 타원형으로 썰어서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 또는 꿩고기를 넣어 끓인 다음 후추 가루를 친 것이라고 했다.

 

내 어릴 땐 쇠고기는커녕 꿩고기 구하기도 어려워 닭고기 넣은 떡국을 먹곤 했는데, 어쩌다 꿩고기떡국을 먹을 땐 그 맛이 각별했다. 또한 그때의 가래떡은 디딜방아에 찧어 빚은 거여서 찰지거나 쫀득한 식감이 지금 같지를 안했어도 환장하게 맛있었다. 기계방아가래떡은 내가 초등상급학생일 때부터였을 테다.

 

 

내가 설 쇠러 부모님 찾아 가기시작한 건 중학교 때부터다. 정부에서 설(舊正이라 했다)을 못 쇠게 하여 애 닳고 맘 쓰라리길 얼마였던가? 요행이 겨울방학 중에 설날이 끼여 있으면 그해는 대박인 셈이다. 근데 이젠 내가 늙은 애비가 되어 자식들을 기다리는 명절이 됐다.

설도 고유명절로 3일간 연휴가 됐지만 바쁘고 외국에 있단 핑계로 서운함을 삼켜야 한다. 지금은 화상전화가 있어 옛날의 헤어짐과는 비교 안 될 그리움이지만 해도 명절엔 만나서 서로의 몸뚱이 비벼대며 교감해야 설 쇠는 기분이 나는 것이다.

-산소-

 

문명의 이기는 생활을 원 없이 편리하게 해주는 대신 따뜻한 인성을 매말려 각박한 삶을 부추긴다. 엊그제 영광선친산소엘 갔었다. 제법 높은 곳에 산소가 있어 인적 없는 적설 위를 한참 걸어 올라가 성묘를 했다.

산소는 정남향이라 묘역꼬리에 약간의 눈이 있을 뿐이었다. 아직은 내가 걸을 만해서 원거리를 달려와 성묘를 하지만, 내 자식들은 성묘한지가 까마득하다. 사실 애들이 산소를 제대로 찾아오기나할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선고(先考)의 묘소도 아마 우리부부가 죽은 후엔 찾는 이 없을 테다. 바쁘고 멀어 설날에 만나지 못하는 부모자식간인데 죽어선 더욱 나태해 질 거고, 더더구나 손자뻘이 된 후손들에겐 언감생심도 감지덕지란 생각이 들었다.

산소나 영묘원이나 당대의 자식들은 성묘란 차례행차를 할 테지만 말이다. 왠지 서글퍼졌다. 아버지 어머님께 죄송스런 감정이 울컥 솟았다.

허나 고인들이 뭘 알겠는가?

생전의 불효를 이제 늙어서 이렇게나마 자성, 그리움을 회억해 보는 게다.

 

새해 첫날 처음 뜨는 해()를 원단(元旦)이라고 한다. 제사상을 차리고 차례를 올린 후에 온 가족이 모여 제사음식을 먹는 것을 음복(飮福)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복을 먹는다는 뜻이다.

혈육이 모여 선고의 넋을 기리며 음복하는 것은 조상들이 복을 내려 주리라는 간절한 기원이 서려있는 것이리라. 해서 명절엔 혈육은 반드시 모여 음복을 해야 가족이다.

태어남의 의의와 삶의 행복이 그 자리에 응축돼 있을 것 같아서다. 애들에게 우리 명절엔 꼭 자리를 같이하자고 당부할 테다.

섣달그믐밤 -이 밤이 좀 있다가 원단을 열 것이다. 애들이 모두 건강하길 기원한다.

2017. 01. 27 (음력섣달그믐)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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