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한 한가위의 이별연습을~?

 

 

추석서광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눈을 진즉 뜬 채지만 아내의 인기척을 엿듣느라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예년 같음 아낸 벌써 일어나 주방에서 추석빔 차리느라 딸그락댈 것이다. 허나 이번 추석은 달라도 한참 달라진 우리 집 명절맞이다.

우선 명절맞이 아침은 이십여 년 전부터 서울에서였다.

 

 

애들이 대학 다닐 때부터 우리부부는 음식준비를 하여 바리바리 차에 싣고 상경하여 애들과 차례를 지내며 오붓한 명절을 보냈었다. 첫째와 막내가 결혼출가한 후인 지난해까지도 식구가 줄었을 뿐 애들의 명절이동의 피로감을 던다는 핑계로 명절 며칠 전부터 우리부부는 상경했었다.

 

 

근데 이번 추석엔 서울에 있어야 할 까닭을 애써 외면했다.

큰애와 막내가 외국에 주재하고 있는데다 둘째마저 열흘간 뉴욕출장을 간 탓이다. 아침7시가 다 돼서 아내가 침대를 빠져나간다. 단출한 차례상차리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의시대기라도 하겠다는 듯 아내는 여유를 즐기는가 싶었다.

 

 

데 꼭 그것만은 아닐 것도 같다. 훌훌 떠나버린 애들의 빈자릴 홀가분하다고 즐길 강심장의 아내도 아니다.

이젠 엄마의 역할도 다한, 자식들이 하나씩 떠나버린 무상한 세월 속에, 늙어버린 자신의 역할이 별 대수롭잖겠다는 허전함을 다독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출하게 차례 상을 차리고 우리내왼 재배를 올렸다.

 

 

단 둘이 명절차례를 올린 적이 언제였었나 싶어 세월을 거슬러 보니 신혼 때 기억이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꼬깃꼬깃 묻혀있다. 그 빛바랜 기억들은 가난 속에서도 희망이란 조각들로 쌓을 수가 있었기에 풋풋했겠지만, 오늘의 허허한 조각들은 결코 밝기만할 내일의 영양덩인 아닐것 같아 착잡했다.

 

 

명절엔 품 떠난 자식들이 찾아오는 날이다. 우리내외도 자식들을 품안에 품고 맞는 명절이 아닌, 이젠 품 떠난 애들이 아무 약속 없어도 찾아오는 날이 명절이 된 거다.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을 수반하고 준비해야 하듯이 부모자식도 헤어져야하고 그 이별을 즐기는 연습을 기꺼이 해야하나싶다.

우리내외도 만났다가 헤어지는 연습을 해야 할 나이가 됐고, 그 이별을 즐기는 다짐을 쌓아야할 부부가 된 셈이다.

 

 

오후엔 옥산저수지수변로 트레킹에 나섰다. 아내가 아주 즐길만한 산책길이란 걸 지난여름 첫 트레킹 때 절감해서 오늘 안내를 했다. 구불구불한 저수지수변을 따라 난 길은 평탄하고, 푸나무사이를 관통하는 조붓함에다가. 수풀과 숨바꼭질하는 푸른 호반을 엿보며 맞는 미풍은 허전했던 추석을 멋진 명절로 다잡게 했다. 아낸 연신 쾌잴 불렀다.

 

 

장장15km쯤 될 수변로를 다섯 시간동안 데이트하면서 늙어가는 부부의 명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여미게 했다.

명절은 뿔뿔이 흩어졌던 피붙이들이 얼굴 맞대는 무언의 약속날짜다.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 건강한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 자식들의 건재를 확인하며 영원한 이별연습을 하는 날이 명절의 또 다른 의미일 테다.

 

 

그 헤어짐의 리허설은 부모가 편하게 눈감을 수 있게 함이려니 모름지기 피붙이들은 꼭 만나 우애를 나누는 날이 명절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부부도 이젠 애들이 찾아와서 지네들의 건재를 알리며 영원한 이별을 위한 리허설 하는 날로 명절을 맞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결코 슬프고 허전한 날만은 아님이다.

행복이란 건 무언가 한 가지를 내려놓을 때 비로써 손에 잡히는 은근한 긍정이다.

2016. 09 추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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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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