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어 줘?
어제부터 부슬비일망정 단비가 내리고 있다. 소나기라도 시원하게 한두 시간 작심하고 내렸으면 싶으나 하늘은 무슨 심사가 뒤틀렸는지 가랑비만 오락가락 뿌린다.
찌뿌대대 잔뜩 흐린 채 그마저 그친 오늘 아침 D가 등산이나 갔다 오자고 해 친구Y와 함라산엘 올랐다. 오랜 가뭄을 단박에 해갈하려는 듯한 기미가 보이질 않은 마른장마라나?
눅눅한 숲길을 두 시간여 걸으며 D의 제안으로 하산하여 호원대학교 앞 어느 찜질방에 들러 닭백숙으로 점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정오쯤 찜질방에 들어섰다. 여름철에다 메르스 후유증인지 찜질방은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로 손님이 없었다.
찜질방은 한쪽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린 미리 주문한 닭백숙을 먹으러 식당엘 들어서다 찜질방손님 두 분이 더 있단 걸 알았다. 그 두 분 여성도 닭백숙을 들고 있었다. 넉살좋은 D가 얘기를 걸어 동문서답 몇 마디를 나누다 그녀들이 먼저 일어섰다.
이윽고 우리도 식사를 끝내고 휴게실에 잠시 머물다 소금방에 들어갔다. 거기엔 아까 식당에서 만난 두 여성이 누워 있잖은가. 손님 다섯 명 모두가 소금찜방에 모인 셈이다. D가 또 여성분들께 말문을 텄다.
어디서 왔느니, 여길 자주 오느니, 아까 먹은 닭백숙 맛이 어쩌느니, 두 분은 어떤 사이니 등등을 우리들은 봉숭아학당학생들처럼 두서없이 주고받다가 D와 나는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두 분은 자매간이고 서울태릉, 강원도원주에서 각기 쫓겨나 친정에 와있다면서 거의 동시에 일어나 앉는 거였다. Y가 따라 일어나면서 “자매가 뭔 일로 같이 쫓겨난대요?” 라고 신문하듯 덤비자 “바람피워서지 딴일 있겠어요.” 라고 거침없이 응수하는 막내였다.
소금찜방은 순간 스무고갤 푸는 미궁의 가마솥이 돼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내며 자매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에 온 신경을 쓰다시피 하는 우리가 됐다. 허나 그 얘기가 ‘뻥’이란 걸 곧장 알아챘고, 그 해프닝에 덩달아 얼씨구 춤 춘 우리가, 더는 임종자릴 지키다 나온 비통해야 할 자매의 부박하고 허접한 속내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년이 회갑인 언니와 쉰 살이라는 막내 두 여성은 두 명의 자매가 더 있어 네 자매란다. 네 자매에게 여든다섯 살의 홀어머니가 계신데 달포 전에 뇌경색으로 쓸어져 오늘만 내일만 하는 식물인간으로 목숨만 부지하고 계신다고 했다.
하여 (태릉)큰딸과 (원주)막내가 병수발을 하고 있는데 어지간히 지쳤단 품새였다. 하도 심난하여 비용이 좀 싼 공공요양병원에 입원시키려 고 갖은 애를 써서 입실허락을 받기도 했는데 포기했단다. 곧 운명할 것 같았고 어머닐 냅다버리는 불효란 생각에서였다는 게다.
그러다보니 한 달여가 지나고 그렇다고 지금 요양병원에 모시길 차마 못하고 있다는 한숨과 누군가를 향한 원망섞인 푸념이였다.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고생하고 말이다. 자매의 아버님은 좀 일찍 작고하셨지만 생전에 두부공장을 하며 농사를 지었기에 비교적 여유 있는 가세였다.
그 상당한 유산에 혹심을 품고 있음도 굳이 감추려들지 않는 당당함도 내비췄다. 사뭇 우리를 흥분시키고 허탈케 한 건 찾지 못해 애탄 예금통장 얘기였다. 어느 날 꿈에 선몽하여 통장을 찾게 됐다고 쾌재를 부르는 막내를 보면서 임종 앞의 부모와 자식의 아픈 간극을 보며 나를 대비시켰다.
늙으면 죽어야 하는 건 순리니까 죽는 걸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겠다. 그래 늙어 병든 부모가 귀찮다고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게 불효라고 힐난하는 것도 어쩜 당사자가 아닌 땜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엄마가 죽기를 바라는 듯싶은 그 자매의 경박함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임종 앞의 자매가 곧 우리들이고, 나도 식물인간이다시피 한 엄마에게 빨리 죽기를 바랄 건 자명할 터이니 말이다.
그런 비정한 불효는 내 죽음 앞에서 내 자식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죽음의 행복’이란 뭘까?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게 죽음 복이고 행복한 죽음일 것이다.
우리 셋은 귀로 차 속에서 그 자매를 두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입방아를 찧느라 열 올리고 있었다.
“그녀들이 희희낙락대며 달포를 머물고 있는 건 순전히 엄마의 유산 땜이야. 유산이 없다면 병수발하며 연병 떨겠냐? 자주 오지도 않는 것들이 돈독 올라서라고 친정동네 사람들한테 욕 먹을까봐 효녀시늉 내고 있는 거다.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려다가 단념한 걸 체면 땜이라고 했잖냐. 죽고 나서 네 것들끼리 서로 엄마한테 한 게 뭔데? 라며 따져들 때 좀이라도 자기 몫을 더 챙기려는 명분 쌓기 임종일 거다. 어설픈 유산 좀 남겼다간 자식들간에 상속싸움질 하게 만드는 꼴 된다.
긍께 거동할 때 재산 싹 처분하여 은행에 넣고 요양병원에서 살다죽어야 하는 디. 남은 유산은 사회에 환원시킨다고 유서 써놓고~! 재사는 누가 모시고? 유산 못 받아 재사 못 지낼 자식이람 기대 마라야지.
그나 그 여자들도 상당하더라. 어찌 그리 태연하게 지랄 떨 수가 있디야? 임종 지키다 온 여자가 바람피우다 들켜 쫓겨났다고 호들갑떠는 꼴 봐라. 쉰 살이라는 막내 보듬을 만 하겠드라 야. 글먼 대시 해보지 그랬냐? 임종얘기 나오기 전엔 그런 생각도 했었지.
그나저나 퍼먹기도 엄청 퍼먹데~. 우리 세시도 다 못 먹은 백숙을 싹 비운 것 안 봤니? 여자들이 원래 먹 탐이 쌔야. 그래도 용케 뚱뚱하진 않더라. 넌 막내에게 홀딱했구먼. 잘 엿고 있다가 초상났다하면 문상가거라. 임마, 원주 산다고 하디야.”
늙어 죽음을 호상이라 했다. 극락왕생하라고 비원하며 보내는 자의 변명이고 합리화며 자기위무일 터이다. 죽음이 있어야 태어남이 있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늘 새로워지고 발전하며 역사는 이어지는 것이다.
죽는 자가 할 일은, 내 몸뚱이가 죽을 때가지 사회에 어떤 일을 하여 보탬이 됐는지를 염하며 실천하는 것일 게다. 자식에겐 일체의 기대도 접고 따라서 남은 게 있담 사회에 기증하고~.
태릉댁과 원주댁의 어머님도 빨리 저승길 떠났으면 좋겠다. 그녀들도 엄마의 노예(?)에서 해방 돼 지 집에서 발 뻗고 자야 맘 편할 테다. 자식이 편하길 바라는 게 부모 맘 아니던가. 그래 엄마 죽어 줘.
2015.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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